한 번에 이루어질 수 없는 엄마의 꿈
며칠 전 브런치스토리 팝업전시회에 글이 전시될 거라는 메시지와 VIP티켓이 도착했다. 처음에는 얼떨떨했고 그다음에는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100명을 선정했다는 말이 꼭 '너는 100등이야'처럼 들렸고, 신청하신 작가님들이 많지 않아 운 좋게 뽑힌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혹은 구색을 맞추기 위해 구독자수가 많지 않은 나 같은 초보작가에게도 기회를 준 것 같기도 했다. 기쁨보다는 뭔가 불안함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마땅히 자랑할 곳도 없었다. 아직 가족들이나 지인들에게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도 알리지 않았고, 이제 와서 알리는 것도 부끄러웠다.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내 글을 구독해 주시고 라이킷에 댓글까지 정성스레 달아주시는 작가님들에게나마 쑥스럽게 소식을 알려야지 했다. 얼렁뚱땅 글을 올리고 나서 작가님들의 축하메시지를 받으니 조금 실감이 나고 이게 좋은 일이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은 학기 중이고 한국에 들어가기도 어려운 시기라서 팝업 전시회에 가고 싶어도 가 볼 수가 없다. 나 대신 마땅히 가서 봐 줄 사람도 없다. 생각해 보니 좀 쓸쓸했다. 서울 사는 조카에게라도 좀 가보라고 해볼까.
저녁나절 큰 아들 개미(닉네임)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 끝나고 시간이 되어서 전화를 했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조심스레 브런치스토리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가 하나 고백할 게 있다고, 큰 아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는 거라며, 브런치스토리에서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또 엄마의 글이 <작가의 꿈> 공모에서 100인의 작가에 선정되어 브런치팝업전시회에 전시된다는 이야기도 했다.
미국에서 직장 생활하고 있는 큰 아이가 가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엄마도 나름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큰 아이의 반응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엄마, 나는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닌데. 나는 엄마가 글 잘 쓰는 거 알고 있었어. 엄마가 예전에 페이스북에 쓴 글 나도 읽었거든. 어쨌든 잘 됐구먼. 그렇게 계속 글을 쓰면 좋겠네."
나는 아이들이 내 글을 읽고 있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작년에 내 페이스북이 해킹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그 일로 그동안 사용했던 모든 글과 사진이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게 되면서 페이스북에는 더 이상 글을 올리지 않는다. 그런데 큰아이가 예전에 엄마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들을 읽고 있었다니.
그래서 늘 지나가는 말로 엄마도 나중에 책 한 권 내면 좋겠다고 말해 준 건가?
아이들이 엄마 페이스북을 보고 있었다니. 내 글을 읽었다 하더라도 엄마가 쓴 글을 읽고 이해할 정도의 한국어 수준이 될까 싶었는데 뜻밖의 대답이었다. 그렇게 말하면서 개미는 내심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개미는 동생 밤톨이까지 대학을 가면서 외롭게 남아 힘들어할 엄마를 늘 걱정했었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자주 전화하려고 애를 쓴다. 차를 타고 가면서, 일하는 중간 점심시간에도 전화를 한다. 그리고 늘 일이 많은 엄마를 걱정한다.
"엄마, 너무 일만 많이 하지 말고 엄마가 하고 싶은 것 좀 해. 운동도 하고. 건강해야 즐겁게 살지."
큰 아이가 나와 통화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하는 잔소리이다. 지금까지는 말로만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최근 들어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큰일 나겠다 싶어 운동을 시작했다.
"개미야, 걱정 마. 엄마는 요즘 아침에 운동도 가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해금도 배우고, 그렇게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어"
"잘했어. 엄마~. 엄마도 그렇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보내. 나중에 일 그만두게 되면 글도 더 많이 쓰고, 해금도 더 배우고, 시간 되면 나하고 여행도 가고, 그러면 좋겠네."
일이 많아 늘 힘들어 보이는 엄마가 새로운 것들을 시작한다는 말에 개미는 안심이 된 것 같았다.
큰 아이의 말에 마음이 뿌듯해졌다. 속 깊은 큰 아이가 바라는 엄마의 모습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해야지 하는 마음도 들었다. 결국 부모의 건강한 삶이 아이들의 걱정을 덜어주는 일이기도 하니까.
"엄마는 서두르지 않으려고 해. 앞으로 천천히 글공부도 하고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쓰면서 준비해서, 나중에라도 기회가 되면 그때 책 한 권 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 엄마, 좋은 생각이네. 꾸준히 잘해 보셔~~~ 그렇게 되면 좋겠네"
아들을 걱정해야 할 엄마에게 개미는 늘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하긴 이제 나이가 스물여섯 살이니 철이 들었나 싶기도 하다.
살다 보니, 무슨 일이든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는 걸 알게 된다. 한 편의 글로 모든 작가들을 판단할 수 없듯이, 한 번의 좋은 결과로 글 잘 쓰는 작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어쩌다 선정이 되긴 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작가임은 부정할 수 없다. 나는 건강한 작가가 되고 싶다. 인기 있는 글들을 써내며 하루아침에 유명한 작가가 되는 것도 좋겠지만, 매일 먹는 영양제처럼 우리 삶에 영양이 되어줄 글들을 자주 써내는 건강한 작가가 되고 싶다.
우리는 한 번에 건강해질 수 없고, 한 번에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꾸준한 노력과 습관이 필요하다. 어쩌면 피나는 노력보다도 꾸준한 노력이 더욱 필요한 나이일지도 모르겠다. 꾸준한 노력으로 습관을 만드는 일조차도 쉽지는 않겠지만, 다시 한번 시도해 보려고 한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강한 엄마가 되기 위해. 그리고 아이들에게 걱정 끼치는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