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도 남는 게 없다고 느끼는 이들이 있다. 정말 그런 걸까.
성장에 대한 욕심이 있고,
책을 읽으려는 욕심이 있는 사람일수록
"책이 잘 안 읽힌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혹은 과거에 책을 읽고 깨달음을 얻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집중력이 예전 같지 않다거나,
요즘엔 읽어도 남는 게 없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독서력이 떨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 걸까.
많은 경우 문제는 독서력이 아니라
책을 읽고 나서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과도한 기대다.
깊이 있는 책을 읽으면 인생이 정리될 것 같고,
막힌 부분이 뚫릴 것 같고,
생각이 깊어질 것 같고,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 말이다.
독서는 그렇게 즉각적인 변화를 주지 않는다.
즉각적인 변화가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것은 즉각적인 것이 아니라, 무의식이 독서라는 트리거를 통해 발현한 것이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는 경험은, 독서에 빠진 초기에 얻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무의식 중에 내가 열망했던 것이나 잠재된 창의성이 몇 번 깨어나면,
그 뒤로 독서로 무언가를 얻는 것이 더뎌진다는 뜻일까?
그렇지 않다.
독서를 통해 통찰과 지혜, 혹은 내면의 성숙을 차근차근 쌓다 보면
필요한 순간에 나타난다.
독서를 통해 얻는 통찰은, 즉각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지연된 이해'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고
"별로 남는 게 없는 것 같다"라고 느껴진다면
그건 실패가 아니라 정상이다.
생각은 천천히 숙성되는 법이다.
책이 어려워서 이해되는 것이 없고,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난 후 그 책을 다시 들여다보면, 처음 읽는 듯한 기분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처음 읽을 때'와는 다를 것이다.
조금은 더 이해가 되는 느낌이 들 것이다.
분명히 책에서 얻은 것이 없다고 느끼지만,
그 책에서 얻은 통찰은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순간 '전혀 다른 분야'에서 발휘되는 법이다.
책을 읽고도 똑똑해지는 느낌을 못 느끼고,
다 읽고 나서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절반 이상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자신의 기준에서 어려운 책에 도전할수록, 독서력이 늘어나는 법이다.
똑똑해지는 느낌보다, 머릿속에 질문이 남을수록 독서력이 늘어나는 법이다.
독서력이 떨어졌다고 느낀다면,
오히려 독서력이 오르고 있는 시기일 수 있다.
모든 진보는 나선형으로 이뤄지는 법이니,
성장이 막혔다고 생각되는 그 느낌을 그냥 자연스레 받아들이길 바란다.
씨앗을 심는 기간에는 자라나는 생명이 느껴지지 않겠지만,
조급하게 씨앗을 쳐다보고 있어도 바뀌는 것은 없다.
씨앗을 심는 것은 생명의 탄생을 위한 것임이 틀림없으니
흙을 덮어놓고 봤을 때 무덤처럼 느껴진다 해도 결코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씨앗을 심지 않는다면,
아무런 변화도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