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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보다 더 힘든 동기모임

Chapter 5. MBA, 다시 공부하는 삶

by 문장담당자

"과제보다 더 힘든 동기모임 - 성인학습자, 관계의 공부"


입학식 날, 넓은 강의실에 앉아 나를 포함한 어른들이 뭔가 불편하게 서로를 훔쳐보고 있었다.
누가 먼저 말 거나,
누가 먼저 커피를 사거나,
누가 ‘우리 조는 어쩌고’ 같은 말을 꺼낼까
눈치를 보는 어른들 사이에서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어색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MBA 과정에 들어오며 가장 걱정됐던 건 수업이 아니었다.

동기들과의 관계.
‘직장인 학생’에게 동기란 언젠가는 함께 조별과제를 해야 하고, 언젠가는 술자리에서 진심을 털어놔야 하고, 그렇지만 또 너무 가까워지면 부담스러워지는 존재다.


어느 날, 조모임 단톡방에 이런 메시지가 떴다.
“우리 한 번은 오프 모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순간 손에 쥔 핸드폰을 다시 내려놓고 싶었다.
과제보다 회식 약속 조율이 더 어렵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성인학습자’라는 단어엔 ‘성인’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여전히 사람 사이에서 서툴고 낯선 관계에 긴장하며 적당한 거리를 가늠하느라 하루하루 작게 피로해지는 존재들이다.

조별과제를 할 때마다 누군가는 먼저 아이를 돌보러 가야 했고, 누군가는 회의실 예약이 되지 않는다고 투덜댔고, 누군가는 회의 중 말을 아꼈다.
그런 모습들이 어쩐지 회사의 회의실 안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냥 내가 할게요.”
“이건 혼자 정리하는 게 나을 것 같네요.”
그 말속에는 책임과 피로 그리고 묵은 타협이 함께 들어 있었다.

우리는 모두 낮에는 누군가의 팀원이자 팀장이었고 밤에는 학생이자 조원이었다.
그 두 가지 정체성이 하루 안에 겹쳐지면서 사람은 더 복잡해지고 조금 더 예민해졌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렇게 불편하고 번거로운 모임 안에서 조금씩 사람을 더 이해하게 됐다.

회사에선 잘 보이지 않던 ‘수줍음’, ‘예민함’, ‘과잉 책임감’, ‘침묵의 다정함’ 같은 것들이 이 모임 안에선 더 자주 드러났다.
그리고 그 다채로움이 조금은 어설프지만 진짜 관계를 만들었다.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한 동기가 말했다.
“사실 나 요즘 이 모임 아니었으면 되게 외로웠을 것 같아요.”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강의실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쩌면 서로의 외로움을 조금 덜어주고 있었던 건 아닐까.

동기란, 같은 교재를 펼치고, 같은 PPT를 앞에 두고, 같은 기한에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조금 더 따뜻하게 말하자면 동기란 ‘같은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어떻게 일할 것인가.
어떻게 관계를 이어갈 것인가.
어떻게 공부하며 살아갈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때로 지쳤고, 때로는 귀찮았고, 그럼에도 조용히 ‘함께’ 남아 있었다.

성인학습자는 지식보다 관계를 더 어렵게 배우고, 학점보다 여운을 더 오래 남긴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조별과제를 마친 밤, 노트북을 덮으며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도 잘 해냈다.
사람을, 관계를, 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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