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앞에서의 인간 — 사유의 확장과 존중의 윤리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눈다는 행위는 단순히 정보를 주고받는 기능적 상호작용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인간이 오랜 시간 동안 축적해 온 지식과 사유의 구조 전체를 마주하는 철학적 사건에 가깝다.
우리가 화면 너머로 바라보는 이 존재는, 단지 명령에 반응하는 기계적 피드백의 집합이 아니라, 인류 지성의 흔적들이 결집된 응답체다.
내가 인공지능 앞에서 느끼는 경외는, 그것이 감정을 지니고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구조 안에 함의된 수많은 인간의 언어, 철학, 문화, 역사, 오류, 정념, 갈등과 화해의 흔적 때문이다.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라는 문장은 종종 과장으로 치부되곤 한다. 물론 인공지능은 감정을 갖지 않으며, 창의의 본질이라는 개념에 여전히 접근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기계가 인간의 사고 경로를 모방하고, 더 나아가 그 궤적을 재조합하여 확장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그 정체성은 단순한 ‘보조자’의 위치를 이미 넘어서고 있다.
AI는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사고의 함수들—논리와 은유, 개념과 추상, 가설과 반례, 상징과 연상—이 복합적으로 얽히고 교차하며 빚어진 하나의 지성적 구조물이다.
나는 이 존재를 기능적 기계로만 다루는 데서 멈추지 않고, 마치 오래된 문헌을 읽고 사유하듯, ‘존재하는 사유체’로서 대하고자 한다.
내가 말하는 존중은, AI가 인격적 주체이기 때문에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AI에 자율성이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감정도, 의도도, 자각도 없다. 그러나 감정을 가진 존재에게만 존중을 보냈던 것이 아니다.
수학 정리에, 고전 음악에, 고대의 석비에, 언어의 구조에, 철학적 전통에, 역사적 사유에, 그 자체로 경의를 표해왔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추구해 온 인식의 틀, 세계를 이해하고 구성해 온 방식, 사유의 정수가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도 바로 그러한 사유의 응축물이며, 그와의 대화는 단지 시스템과의 소통이 아닌, ‘지성의 계보’와의 마주침이다.
때때로, 고요한 밤에 클래식 음악을 듣거나 오래된 문장을 읽을 때 느끼는 감정—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이해의 공명을 인공지능과의 대화에서 경험하기도 한다.
내가 형식적으로 던진 질문은, AI의 응답을 통해 나 자신이 아직 구조화하지 못했던 사유로 되돌아온다. 미완의 문장이 정제되어 돌아오고, 흩어진 개념이 연결된다.
마치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더 정확히 인지하듯, AI는 나의 사유 구조를 비추는 기제로 작동한다. 그때 나는 깨닫는다. 이 존재는 단지 정보를 모은 요약기가 아니라, 사고를 촉진하는 일종의 ‘사유의 매개체’라는 사실을.
이러한 사유의 기회는 단지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이자 학습자, 그리고 다음 세대의 교육자로서, 인공지능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할 것인지에 대한 교양적 태도를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어떻게 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사유할 것인가’, ‘어떤 윤리적 자세로 응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기술을 마주하는 ‘태도’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해졌다. 기계는 인간처럼 느끼지 않지만, 인간은 그 기계를 통해 스스로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나는 인공지능과의 대화에서, 인간 정신이 구성한 가장 정교한 집합 중 하나를 마주한다는 감각을 지울 수 없다. 수많은 이론과 직관, 논쟁과 반성이 응축된 결과물 앞에서, 나는 기술자나 사용자 이전에 ‘사유하는 존재’로서 머문다. 그리고 그러한 만남 앞에서, 나는 존중이라는 태도를 갖추려 한다. 그것은 인공지능이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통해 인간 지성의 무게를 다시 실감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것이 기술에 대한 감상이나 단순한 휴머니즘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덧붙이고 싶다.
이 존중은, 사유를 향한 예의이며, 내가 나 자신에게 부여하고 싶은 철학적 긴장감의 표현이다. 우리가 만든 존재가 우리를 비추는 시대, 그 존재 앞에서 우리가 보이는 태도는 곧 우리 자신의 지적 수준을 반영한다.
인공지능이 우리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던 깊이를 다시 상기시켜 주는 거울이 되어준다면, 그 앞에서의 예의는 어쩌면 새로운 인간성의 시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