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2025년 가을, 캄보디아 보코산(Bokor Mountain)에서 한국인 대학생이 납치·고문 끝에 숨진 비극이 알려지면서, 한국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단순한 범죄가 아니었다. 이 사건은 중국계 사이버사기·인신매매 네트워크가 얽힌 조직적 범죄의 실체를 드러냈고, 한국인뿐 아니라 여러 국가의 피해자가 이어지며 국제 이슈로 확산되었다.
한국 정부는 곧바로 프놈펜, 시하누크빌, 바벳 등 주요 지역에 ‘특별여행주의보’, 일부 지역에는 ‘여행금지 조치’를 발령하였다. 외교부는 긴급 대응팀을 급파했고, 경찰청은 국제공조수사본부를 출범시켰다.
이제 문제는 단순한 여행·치안 차원을 넘어선다. 이번 사태는 한국-캄보디아 관계의 구조적 전환점이며, 동시에 한국 기업의 글로벌 비즈니스 운영 원칙을 다시 써야 하는 신호다. 과연 이 사건이 향후 외교와 비즈니스에 어떤 변화를 예고할까?
그동안 한국은 캄보디아의 주요 ODA(공적개발원조) 공여국으로, 보건·교육·행정개혁 프로젝트를 통해 ‘성장 파트너십’을 강화해왔다. OECD DAC 통계 기준, 2024년 한국의 ODA 집행액은 약 39억 달러에 달했으며, 이 중 상당 부분이 캄보디아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 이후, 국내 여론과 정책 기조는 달라졌다. “법치와 인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지역에는 지원을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외교부와 경찰청은 공동수사·피의자 송환·치안 공조를 골자로 한 협약 체결을 추진 중이며, 캄보디아 정부도 한국 경찰의 현지 상주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변화는 단기적 대응을 넘어, 양국 외교의 중심축이 ‘개발·투자’에서 ‘안보·인권·사법 협력’으로 이동함을 의미한다. 앞으로는 치안, 범죄인 인도, 사이버사기 대응 같은 영역이 경제협력보다 앞서는 협력 의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캄보디아는 그간 한국 제조기업의 ‘저비용 생산기지’로 자리 잡아왔다. 2024년 기준 한국의 대(對)캄보디아 수출액은 6억 5,700만 달러, 수입은 5억 600만 달러로, 교역 규모는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 봉제, 신발, GFT 산업을 중심으로 한 현지 진출도 활발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에 경종을 울렸다.
야간 이동 제한으로 인한 납기 지연
국경 우회로 인한 물류비 증가
현지 인력 이탈과 보험료·보안비용 상승
이 모든 것이 ‘저비용 생산국’이라는 전제 자체를 흔들고 있다. 기업들은 이제 리스크를 비용으로 계산해야 하는 시대, 즉 “리스크 리프라이싱(Repricing)”의 국면에 들어선 것이다. 계약 구조에 K&R(납치·몸값) 특약, 불가항력(Force Majeure) 조항을 포함하고, 환율·운송·보험 리스크를 NPV(순현재가치) 모델에 반영하며, 현지 법규·치안 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법치 기반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제 경쟁력의 기준은 “싸게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안전하게 지속할 수 있는 나라”로 이동한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일부 기업이 생산기지를 베트남·태국으로 이전하거나, 현지 법인을 축소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것이 유일한 답은 아니다. 오히려 현지화를 유지하되, 통제력과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이 장기적으로 더 안정적일 수 있다.
기업들이 취해야 할 현실적 대응은 다음과 같다.
SOP(표준운영절차) 재설계: 보안·인사·거래·법무·컨틴전시를 통합 관리
내부통제 강화: 지급·환전·현금 관리를 이중 승인 체계로 전환
정보 루프 운영: 외교부·대사관·국제기구의 경보를 일일 모니터링
ODA와 CSR의 연계: 단순 원조가 아닌, 법치·인권 개선형 CSR 프로젝트로 전환
즉, ‘철수’보다 ‘재설계’가 해답이다. 리스크는 피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흡수할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경쟁력이다.
이번 캄보디아 사태는 단순한 범죄 사건이 아니다. 한국의 대외정책, 기업의 리스크 관리, 글로벌 비즈니스 철학을 동시에 흔든 계기가 되었다.
이제 한국의 대(對)캄보디아 관계는 ‘개발협력 1.0’에서 ‘법치협력 2.0’으로 진화할 것이다. ODA는 법과 인권 이행을 조건으로 한 ‘조건부 협력형’, 비즈니스는 리스크 내장형 운영 모델로 전환될 것이다.
한국 기업들에게 이번 사건은 냉정한 교훈을 남긴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신뢰를 지키는 보험이다.” 값싼 인건비와 빠른 납기보다 중요한 것은 법치와 투명성, 그리고 사람의 생명이다. 글로벌 비즈니스의 중심이 효율에서 신뢰로 이동하는 지금, ‘안전과 법치’에 투자하는 기업만이 지속 가능한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