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야간 조의 불빛이 새어 나오는 작은 공장. 컨베이어벨트는 멈추지 않고 돌아가며, 창고에는 포장된 제품이 차곡차곡 쌓인다. 겉으로 보기엔 활기차 보이지만, 대표의 표정은 굳어 있다. “이번 달 이자도 또 못 넘을 것 같아요.”
즉, 매출은 꾸준히 발생하고 현장도 살아 있는데, 본업에서 남는 돈이 이자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바로 ‘좀비기업(Zombie Firms)’이라 불리는 존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기업 성장생태계 진단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좀비기업 비중은 2024년 17.1%로 역대 최고 수준에 도달하였다. 10년 전인 2014년(14.4%)보다 높고, 코로나 이전(13.6%)보다도 악화되었다. 같은 시기 기업당 평균 종업원 수는 43명에서 40.7명으로 줄었으며, 50명 ~ 299명 규모의 ‘중간허리’ 기업도 2014년 1만 60개에서 2023년 9,508개로 감소하였다.
이 숫자들이 말해주는 것은 단순한 불황이 아니다. 한국 기업 생태계의 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시그널이다. 이제 문제는 ‘누가 살아남느냐’보다 ‘누가 계속 살아만 있느냐’로 바뀌었다.
좀비기업의 정의는 생각보다 명료하다. 이자보상배율(ICR, Interest Coverage Ratio) = 영업이익 ÷ 이자비용, 이 값이 3년 연속 1 미만이면 좀비기업으로 분류된다. 즉,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상태가 3년 넘게 지속되는 기업이다. 단순한 적자 기업이 아니다. ‘이익보다 부채 부담이 더 크고, 개선 가능성마저 희박한 상태’에 놓인 회사들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기업이 늘어나는가? 첫째, 저금리의 후유증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넘게 이어진 초저금리와 확장적 통화정책은 부실기업의 ‘퇴출 기한’을 미뤄왔다. 은행권의 ‘에버그리닝(부실대출 연장)’ 관행까지 겹치면서, 좀비기업은 서서히 시스템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둘째, 금리 정상화의 충격이다. 2022년 이후 금리가 빠르게 오르며 이자비용이 늘었지만, 기업의 영업이익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매출이 늘어났음에도 남는 돈이 없고, 이익이 늘어도 부채가 더 빠르게 늘어난다.
셋째, 성장 사다리의 붕괴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해야 생태계가 순환한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규모가 커질수록 지원은 끊기고 규제는 늘어난다. “중간허리” 기업들이 사라지면, 하단의 스타트업도 위로 올라갈 계단을 잃는다.
이 현상은 곧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 한국은행과 OECD의 분석에 따르면, 한계기업의 노동생산성은 정상기업의 절반(48%) 수준에 불과하다. 자본·인력·기술이 비효율적인 곳에 묶여 버리면, 건강한 기업의 투자·고용·혁신이 줄고 산업 전체의 총요소생산성은 하락한다.
실제로 한국의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은 2016년 ~ 2018년 평균 2.1%에서 2020년 ~ 2022년 0.9%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OECD 평균은 0.5%에서 1.7%로 상승하였다. 즉, 한국은 세계와 반대로 가고 있는 셈이다.
좀비기업은 단지 경영 실패의 결과가 아니라, 정책·금융·시장 구조의 왜곡된 결과물이다. 퇴출이 아닌 연명 중심의 구조, 규모별 지원 중심의 정책, 부채보다 혁신을 평가하지 못하는 금융 시스템이 모두 그 원인이다.
대한상의는 이에 대해 세 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첫째, 지원 체계를 기업 규모별이 아닌 ‘산업 생태계별’로 전환해야 한다. 산업별 가치사슬 안에서 협력·경쟁이 순환해야 생산성이 살아난다. 둘째, 중소기업 정책자금의 방향을 ‘성장성과 혁신성 기반 선별지원’으로 바꾸어야 한다. 단순히 어려운 기업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기업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셋째, 민간 자본과 AI·데이터 기술을 결합한 생산성 혁신이 필요하다.
기업이 현장형 AI 자동화와 데이터 기반 이자보상배율(ICR) 관리 체계를 도입하면, 영업이익과 이자방어력을 실시간으로 점검할 수 있다. 이는 ‘좀비화’의 초기를 잡아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살려야 할 것은 모든 기업이 아니다. 살려야 할 것은 ‘살아 움직이는 생산성 생태계’다. 정책은 재배치, 금융은 선별, 기업은 현금흐름 경영이라는 세 축이 맞물릴 때,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공장은 다시 이익의 불빛으로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