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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추구하는 감량법은 최종적으로 올바른 식습관을 체득하는 일이다. 자신이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어느 정도의 양을 먹어야 하는지, 어느 정도의 빈도수를 가지고 먹어야 하는지 ‘알맞은지’를 알고 실천하는 일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기 위해서 그저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것이다. 터무니없는 양을 먹으며 배를 곪지 않을 것이고, 좋아하는 간식도 함께 챙겨 먹을 것이다. 살을 빼기 위해 얼마나 먹을지 고민하는 게 아닌, 자신에게 맞는 양을 먹으며, 지겹게 찾아올 수많은 식사시간을 매번 행복하게 보내게 될 것이다.
떡볶이도? 라면도? 피자도? 치킨도? 케이크도? 도넛도? 과자도?
그렇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먹을 것이다. 안 되는 것은 없다.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먹을 것이다. 한 달 뒤도 아니고 일주일 뒤도 아니고, 주말도 아니고 평일에 매 식사 끼니마다, 원하는 음식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감량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갈망하던 그 음식들을 먹으며 포만감을 느낄 것이다. 몇 가지 규칙을 지키며, 음식에 대한 자유를 느낄 것이고, 자기 조절능력을 키우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흐름을 만들어낼 것이다.
새롭게 만들어질 식습관에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던 입맛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생각보다 적은 양을 먹으며 살게 될지도 모르고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음식이 그저 그런 음식으로 전락할 수 있다.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음식을 좋아하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고,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식생활을 즐기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식습관을 잡기에 앞서해야 할 일이 있다.
일 인분이라고 하면, 아마 아주 제각각의 기준을 떠올릴 것이다. 식당에서 나오는 1인분을 생각할 수도 있고, 편의점 도시락 한 판을 떠올릴 수도 있다. 푸짐하게 차려진 집밥을 떠올릴 수도 있고, 때에 따라 날씬한 이들이 먹는 한 끼를 말하는 것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정답은, ‘땡!’이다. 전부 틀렸다.
진정한 의미의 1인분은, 내가 포만감을 느끼기 시작한 뒤, ‘4시간 동안 배고픔 없이 버틸 수 있는 양’이다. 식사가 끝난 뒤 4시간 안에 소화를 전부 시키고 꼬르륵 소리와 함께 ‘위가 전부 빈 상태’를 뜻하며, 절대 허전한 마음이 들어 간식이 당기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 끼니때까지 버틴다는 의욕 넘치는 분량이 되어서는 안 되며 음식이 턱 끝까지 차서 다음 끼니를 내다 버려도 버티는 그런 양이되어서는 안 된다. 한두 시간 있다가 전부 꺼질 터무니없는 양이되어서도 안되고, 충분하고 넉넉한 양을 먹어 포만감을 느낀 뒤, 4시간 동안 소화시켜 위장을 비울 수 있는 정도의 양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첫 번째 의문이 들 것이다. 대체 포만감의 기준이 뭐지?
그렇다. 우리는 포만감에 대한 확실한 정의 또한 모르고 있다. 누군가는 위가 가득 차다 못해 음식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상태를 포만감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저 허기가 가신 정도의 상태를 포만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마다 ‘배부르다!’라는 선언 시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대상이 자신이 아니더라도, 텔레비전을 보며 누구나 한 번쯤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벌써 배부르다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누구도 그 기준을 제대로 정해준 적이 없고, 저마다의 기준으로 살았을 테니 말이다. 이 책에서 앞으로 말할 포만감은 바로, ‘배고픔을 잃은 기점에서, 30% 정도 모자람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후식을 먹는다거나 또 다른 음식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아닌, 같은 음식으로 음식을 더 먹을 때, 30% 정도 음식을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배부름이 느껴질 때이다.
그렇다. 소아비만인 우리가 턱밑까지 음식을 넣고 배부르다며 아이스크림으로 후식을 해치우는 사이, 그들은 이러한 상태에서 배부르다며 음식에 손을 떼고 있었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이 편안한 상태를 자연스럽게 익혀왔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조절을 해오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익혀하던 일을, 지금부터 배울 것이다. 이 포만감을 기본으로 둔 상태에서 ‘4시간’을 꼬르륵 없이 보낼 음식의 ‘양‘을 찾아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이어트를 핑계로 먹던 식품군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며, 식사가 되는 일상적인 음식’을 먹어야 한다. 제한 없는 음식 종류를 즐기는 동시에, 개인의 소화력과 음식 종류에 따라 알맞은 1인분의 양을 찾을 것이다.
모든 음식에 1인분을 찾을 필요도 없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식품군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을 확률이 99%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복된 훈련으로 비슷한 식품군에서 눈대중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식당의 기준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기준도 아닌, 자신이 볼 때 이 정도의 양이 딱 좋겠구나! 하는 감이 생기게 될 것이다. 음식을 낭비 없이 먹을 수 있게 될 것이고, 속이 더부룩한 일도 식곤증에 쓰러지듯 잠이 드는 일도 무거운 몸에 늘어지는 날도 없어질 것이다.
우리는 이 안에서 오늘 먹은 맛있는 음식을 내일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언제든 원하는 날에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정해진 기한에 특정 음식을 금지하는 터무니없는 짓을 하면 안 된다.
원하는 음식은 먹지 못한다는 것. 더군다나 기한을 정해 조이는 일은 강제 입원시킨 알코올 중독자와 다를 게 없다. 강제로 입원시킨 환자는 대게 술에 깨게 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된다. 많은 경우 병원 안에서 고치려고 노력을 하고, 밖에 나가서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고통스럽게 치료과정을 견디고 훌륭하리만큼 기간을 잘 소화해 낸다.
하지만 그렇게 애를 쓰며 노력한 알코올중독자에게 퇴원하는 때에 손에 소주병을 쥐어주면 어떻게 될까. 매일 아침, 점심, 밤 끊임없이 음식점과 편의점, 술집 앞을 다니게 하고 함께 먹자며 종용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우리는 이런 고통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내지 않아야 한다. 옳은 방법으로 좋아하는 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음식은 살아있는 동시에 외면할 수 없는 존재이고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존재이다. 필수적이면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엄청난 존재이다.
저울을 들고 다니며 정확히 무게를 잰다거나 열량을 계산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강박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결국 아무런 쓸데가 없다. 어떤 음식이든 눈으로 양을 확인하고, 눈으로 줄어가는 모습을 보며 위장의 포화 상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포만감이 든 상태에서 1인분을 넘어 계속 음식물을 먹는 건, 단순히 습관적인 일일 수도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먹지 못한 것이라는 불만족에서 나올 수 있다.
우리는 멍청한 뇌에게 그런 음식의 갈망을 계속해서 주지 않을 것이다. 끊임없이 알맞은 양의 좋아하는 음식을 공급할 것이고, 언제든 원하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또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반복적으로 심어줄 것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자신의 1인분만 찾으면 된다. 이 1인분을 찾아낸다면, 당신의 다이어트는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1인분을 찾아내는 동안 체중 감량은 알아서 될 것이고, 그저 남은 에너지는 온전히 자신의 꿈을 좇는 일에 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무작정 뛰어든다면, 수많은 어려움을 겪을 게 분명하다. 다행인 점은 내가 이 1인분을 찾아내는 과정을 보다 쉽게 할 수 있는 팁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핵심이 될 팁들을 알기 전, 우리는 반드시 실수를 겪게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수많은 준비를 함에도 생각과 다르게 실수를 할 것이다.
우리는 1인분을 찾아내는 과정 속에서 생각보다 적은 양을 먹을 수도, 많은 양을 먹는 실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는 실수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건 자책할 일이 아닌 다음에 조금 더 편하게 상황을 맞이할 지표를 만든 일이니 오히려 기뻐하여야 한다. 우리는 이런 실수를 통해서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고 결국 자신이 몰랐던 자신을 알아가는 신비한 경험까지 하게 될 것이니까.
그러면 이럴 땐, 어떻게 대체해야 할까?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꼬르륵 소리와 배고픔을 느꼈다면 당황할 필요 없이 음식을 먹어주면 된다. 그 기준은 1인분이 아닌 다음 식사까지 남은 시간이 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다음 식사까지 2시간이 남은 상황에선 0.5인분을 먹어주면 된다는 것이다.
만약 시간을 채우고도 꼬르륵거리는 것을 느끼지 못하거나 배가 고프지 않다면? 그땐 그저 정해진 식사 시간에 식사를 하되, 1인분보다 적은 양을 먹으면 된다.
스스로에게 맞는 1인분의 식사량을 알고 음식을 먹는 이 단순한 일은, 사실 비만이 아닌 이들이 자신도 깨닫지 못한 사이 지키고 있는 루틴이다. 놀랍지만 그들은 다양한 경험과 교육으로 무의식 중에 이 일을 해내고 있었다. 우리는 알지 못하고 그저 눈앞에 있는 양을 전부 먹어치우거나 습관적으로 음식을 먹는 중에 말이다.
오늘은 더 많이 움직였으니까 많이 먹을 거야!
벌써부터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하지 말자. 우리는 이제 알맞은 1인분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원하는 것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한 달 뒤에도 먹어도 되는 이런 상황에서 그런 목표는 그저 욕심에 불과하다. 부족함은 부족할 때 채우는 것이다. 꽉 찬 양동이에 물을 들이붓는 멍청한 일은 벌이지 말자. 우리는 이미 가득 차고도 넘쳐버린 포화 상태의 양동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