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시장은 긴 잠에 든 듯 고요하다. 휴가가 끝나고 개학이 시작되면 발길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여기저기서 상인들의 앓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번이 제일 힘들다'는 한숨이 전염병처럼 번진다.
정오의 문을 열자마자 싱가포르 손님이 마수걸이를 해준다. 맛있게 먹었다며 친구들을 데려와 세 박스를 더 사가는 뒷모습에,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설렘으로 재무장된다 어제 다녀간 러시아 커플 중 그녀가 다시 찾아와 웃음을 건넨다. 함께 흥얼거렸던 '백만 송이 장미'의 멜로디가 텅 빈 시장 골목에 환청처럼 감돈다.
평소보다 손님은 적지만 마음은 잔잔하다. 처음 온 이와는 눈을 맞추고, 아이 손님과는 농담을 나누며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즐긴다.
그러다 문득 옆 가게로 시선이 머문다. 텅 빈 의자, 주인장의 울상. 다른 곳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 순간, 고요하던 마음 바닥에서 묘한 감정이 솟구친다.
같이 힘든 날인데, 내 가게에만 손님이 이어진다는 사실이 비겁한 안도감을 준다. 미안함보다 앞서는 이 기분 좋은 고양감. 나는 괜찮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기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