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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Noseless

여름의 기적

by 윤이나



나에게 여름은 '악취, 초조함, 병원냄새, 기쁨, 기적' 이다.

전혀 어우러지지 않는 이 키워드들의 조합은 내 강아지 '쿠키'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 강아지는 유기견 출신이다.

언젠가 강아지를 키워야지 생각만 하던 찰나에, 남양주 보호소에서 안락사 당하기 직전인 강아지 사진을 보게 되었다. 저렇게 귀여운 강아지가 안락사라니? 라는 생각과 함께 정말 갑자기 강아지의 입양이 결정되었다.

여름을 관통하는 7월, 그렇게 우리는 남양주의 보호소에서 처음 마주했다.


처음 마주한 강아지는 길거리 생활을 얼마나 오래했는지, 마구잡이로 엉킨 털에 오물이 잔뜩 묻어 있는 상태였다. 강아지를 품에 안는 순간 악취가 코를 찔러서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게 내가 '쿠키'와 처음 마주한 순간의 기억이다. 차를 타고 집으로 이동하는 순간에도 차에 악취가 진동을 했다. 그 때 든 생각은 '아,, 차에 냄새 배겠다.' 였다. 당시에는 강아지에 대한 상식이 무지 했으므로, 강아지의 안위보다는 '냄새'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다.


KakaoTalk_Photo_2025-05-15-20-48-34.jpeg 악취가 심하게 나던 쿠키


집에 도착해, 강아지의 기본 검진을 하러 병원에 갔다가 쿠키가 홍역에 걸린걸 알게 되었다.

홍역에 걸린 강아지는 치사율이 70~90%로, 병원비도 아주 많이 들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안락사를 권유했다. 세상에, 오늘 처음 만났는데 안락사라니. 돈이 많이 들더라도 일단은 이 강아지에게 최선을 다해보는게 맞지 않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홍역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해 바로 입원을 시켰다. 약 10일 정도의 입원 생활을 끝으로 쿠키가 홍역을 이겨내고 드디어 집으로 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사람을 무서워 하면서도 내가 궁금해 조심조심 다가오던 모습, 치료를 마치고 악취를 내뿜던 털을 모조리 밀어서 벌거숭이가 된 모습, 처음 산책을 했을 때 즐거워하던 모습...

나와 함께 '처음'을 마주하는 그 모든 순간들이 너무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7월, 여름은 나에게 기적이 되었다.


그래서 여름이 주는 청량함과 봄의 따스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오늘 같은 날, 쿠키와 함께 산책하는 걸 정말 좋아한다. 길어진 낮시간 덕분에 퇴근 후에도 북적이는 거리, 노점에서 나는 각종 음식 냄새, 플라터너스 나무 사이로 비치는 후덥지근한 햇살과 그 사이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KakaoTalk_Photo_2025-05-15-21-02-20.jpeg 산책 좋아 강아지


나와 눈을 마주치고, 내 발걸음에 맞춰서 걸어주는 쿠키가 기적이 아니면 뭘까?

보고있어도 보고싶은 내 강아지 쿠키 :)

빨리 집으로 돌아가 껴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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