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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Noseless

겨울이 왔음을 실감하게 하는 것들

by 윤이나



짧디 짧았던 가을이 지나가고 초겨울에 진입한 요즘, 코 끝이 시릴 만큼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낙엽이 모두 떨어져 맨 몸을 드러낸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차디찬 바람에 폭닥폭닥한 질감의 겨울 옷을 꺼내 입었다. 겨울 옷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섬유유연제 냄새'를 맡으며 겨울이 왔음을 실감한다.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골목 사이사이에 숨어서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군고구마, 붕어빵, 국화빵!

겨울에만 만날 수 있는 '겨울 간식들의 냄새'를 맡으며 군침을 흘려본다. 겨우내 내 뱃살을 찌우는 맛있는 간식들! 왜 이 간식들은 겨울에 먹어야만 그 진가를 발휘할까? 팥앙금의 달콤함과 고구마 특유의 단맛 덕분에 겨울만 되면 토실토실해진다.


차디찬 공기를 가르며 빠른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

집 문을 열자마자 따뜻한 공기가 밀려들면서 '우리 집 냄새'가 내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보일러를 켜서 뜨끈뜨끈한 방바닥과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우리 집 강아지, 낮시간동안 열심히 갖고 놀았는지 이곳저곳 흩어져있는 강아지 장난감들. 겨울 옷의 부피만큼 빠르게 쌓이는 빨래와 털갈이 시즌이라 날아다니는 강아지 털까지. 여름과 비슷한 풍경이지만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뜨끈하고 포근한 느낌 때문인지, 유독 겨울에 '우리 집 냄새'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집에 빨리 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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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 함은 바야흐로 뜨개질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취미는 뜨개질로 시간만 있으면 실을 잡고 이것저것 떠보려고 노력한다. 털실에서 나는 '실뭉치 냄새'를 맡으며 뜨개질을 하는 게 내 취미이다. 뜨개질을 하다 보면 엉켜있는 내 인생도 이렇게 엮었다 풀었다 하면서 별거 아니라는 듯이 지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뜨개질이 좋다. 요즘에는 한창 유행이라는 슬리퍼를 뜨고 있는데, 쉽지 않다. 떴다 풀었다를 반복하지만 끝까지 떠서 완성해내는 것처럼, 이번 겨울에 내가 목표했던 것들이 생각만큼 잘 되지 않더라도 끝까지 해보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해본다.


사계절 중 겨울을 가장 좋아하지 않는다.

해가 짧아서 힘이 나지 않고(나는 주변이 밝아야 에너지를 받는 타입이다), 추위를 많이 타는지라 하루 종일 덜덜 떨고 있는 것도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크리스마스'때문이다.

나는 성당에 다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때는 보통 성당에서 미사를 보곤 한다. 때때로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성당 특유의 오래된 나무 냄새와 이런저런 섬유유연제가 섞인 폭닥한 냄새,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서로에게 덕담을 건네는 분위기, 따뜻한 눈빛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어딘지 모르게 설레는 그 분위기에 평소에는 질색하는, 눈이 내릴 것 같은 꾸리꾸리한 하늘도 좋게만 느껴진다.


올해에도 나는 성당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예정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그 밤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계획이다.

그리고 다음날이 밝으면 강아지와 나란히 앉아서 해리포터를 보며 뜨개질을 하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보는 이번 겨울이 나는 조금은 기다려지기도 한다.

이렇게 채우다 보면 어느 순간 겨울도 좋아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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