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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Noseless

어느새 겨울 냄새

오늘 새벽부터 지금까지,

by 안테나맨

어젯밤 환기를 위해 살짝 열어둔 창문의 좁은 틈새로 들어오는 한기가 온집을 차갑게 만들고 있었다. 이불 밖이 너무 차갑다 싶어 몸을 일으켜 창문을 닫고, 일어난 김에 냉장고로 향했다. 쌀쌀한 느낌은 너무 싫지만, 이 건조한 겨울밤의 갈증해소는 시원한 냉수로 하고 다시 따뜻한 이불에 몸을 파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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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늦잠을 잘 수 있는 일요일 아침이지만, 게으름은 조금만 피우기로 했다. 내 아이폰의 마이크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전화를 할때마다 상대방이 지지직 거린다며 불편하다고 몇명이나 알려주었다. 이미 3주쯤 된 증상이라 더이상 미룰 수 없었다. 오늘이라도 수리를 하러 가기로 마음 먹었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자유롭게 무언가 할 수 없는게 종종 있는데 이번이 그런 일중 하나다. 그래서 주말에도 수리 서비스를 하는 사설 업체에 방문 예약을 해두고 방문하기로 했다.


집을 나설때 창문 사이로 느껴지던 쌀쌀함, 그 비슷한게 느껴졌다. 겨울냄새다. 오늘은 기온이 높다고는 하지만 오늘 처음 맞는바람은 역시나 시리다. 해는 떠있지만 어디서 왔는지 모를 미세먼지가 햇볕을 차갑게 만들고 있다. 차를 타면 밤새 차가워진 차 안의 공기가 또 한번 나를 시리게 만든다. 그래, 이게 겨울이지. 얼마 전 차의 보조배터리가 방전되어 약속 시간을 못맞춘 기억이 떠올랐다. 겨울엔 조심해야할 게 참 많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당산역의 수리센터로 향했다. 신호가 걸렸을 떄 아이폰의 케이스를 미리 벗겨두었다. 금속재질로 된 베젤이 차갑다. 알루미늄으로 만든다고 했었나? 케이스를 벗고 드러난 차갑고도 각진 아이폰이 문득 엄청 이쁘게 보인다. 학생 때부터 폰을 좀 험하게 써오던 나는 내 나름의 방책으로 늘 말랑말랑한 케이스를 씌우고 다니며 수리 비용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그래서 이런 맨몸의 아이폰은 새삼 낯설다. 몇 년째 쓰고 있는 12미니지만 새 것의 느낌이다.


작은 산업센터의 한켠에 위치한 수리센터에 도착하여 내 오랜 아이폰을 맡기고 증상을 설명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도 물어보지 않고 밥을 먹고 오겠다하고 나왔다. 금방 될 줄 알았으나 밥을 느긋하게 먹고 다시 올라갔을 때에도 여전히 수리 중이셨다. 얌체같이 밥을 홀랑 먹고 올라온게 조금 민망했지만 그것도 잠시, 그 작은 공간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난로에 몸과 눈이 녹아서 금새 잠이 쏟아졌다.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 앉아 벽에 기대서 어느새 꾸벅꾸벅댔다. 한참을 기다려 아이폰을 다시 받았다. 시계을 보니 약 1시간쯤 걸린 것 같다. 겨울에는 정신을 놓으면 시간이 빨리가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 다짐했다. 흘러가는 이 소중한 주말의 시간이 아쉬워서 커피를 얼른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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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고 따뜻한 것을 오갈 수 밖에 없는 계절. 나는 8월에 여름냄새에 대한 글을 쓸 때도 습함과 시원함을 오가는 것, 그 사이의 변화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적었더라. 겨울 냄새도 적다보니 차갑고 따뜻함을 오가는 것 사이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때에 느낄 수 있는 것을 즐기는 것. 그게 내가 세상을 대하는 자세인가보다. 다만 겨울에는 조금더 정신차려야겠다. 해가 짧아진 만큼 소중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버릴 것만 같다. 더 소중히 여겨야지. 이 시간들을 더 감사히 여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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