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 전업맘의 두 자격증과 다섯 번의 사이드 프로젝트
전업주부로 살아온 지난 3년.
낮엔 아기를 보고, 밤엔 아기 사진을 정리하고,
그 틈에 뭔가를 ‘시도’해보는 시간이 쌓였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하루일 수 있지만,
나에겐 꽤 많은 생각과 움직임이 오고 갔던 시간이다.
돌이켜보면 참 여러 가지에 손을 댔다.
두 개의 자격증을 땄고, 사람을 만나 수업을 했고,
카메라를 들고 유튜버 흉내도 냈다.
대부분은 수익보다 열정이 앞섰고,
그 열정은 대체로 빠르게 식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나는 지금도 뭔가를 또 구상 중이다.
한류의 물결, 그 안의 K-뷰티.
‘지금이라면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몰라!’
이런 다소 순진한 확신으로
나는 인천의 뷰티학원에 등록했고,
매일 두 시간씩 실습과 수업에 몰두했다.
그 결과, 한 달 만에 메이크업 자격증을 취득.
내 인생의 첫 자격증이었다.
싱가포르로 돌아와 화장품을 꾸리려다
배보다 배꼽이라는 말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세포라의 고가 제품들 앞에서 멈칫했고,
나는 결국 로드샵 제품으로 나만의 키트를 구성했다.
그리고 마침내 첫 손님.
같은 콘도에 사는 엄마가 딸의 프롬파티 메이크업을 맡기고 싶다고 연락을 주었다.
긴장한 나는 40불이라는 당당한 가격을 불렀고, 그녀는 승낙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옆에서 뚫어져라 지켜보는 엄마의 시선과, 내 손끝의 떨림.
헤어까지 부탁받아 다이슨 에어랩을 들었지만,
똥손이었던 나는 컬을 제대로 말지 못했고,
미안한 마음에 속눈썹은 ‘서비스’로 붙여주었다.
그날 이후,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꿈은 조용히 접었다.
비닐처럼 접히는 소리도 없이.
‘한국 사람이 한국어 가르치는데 뭐가 어렵겠어?’
그렇게 시작된 두 번째 도전.
중고거래 플랫폼 Carousell에 1:1 한국어 회화 수업을 올렸고,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한때는 7그룹을 일주일 2회씩 가르칠 정도로
나름 바쁘고 성실한 선생님이었다.
수업료는 한 시간에 40불.
크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나에게는 자존감이었다.
그래서 아예 정식 자격증까지 따보기로 했다.
2년 동안 한국어 교원 양성과정을 수강했고,
시험도 치르고 과제도 내며 드디어 두 번째 자격증을 품에 안았다.
하지만 타이밍이란 게 늘 완벽할 수는 없다.
자격증이 나오자마자, 임신도 함께 찾아왔다.
심한 입덧으로 수업 중간에 토를 하던 날,
나는 이 일을 당분간 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쉬는 시간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중이다.
'육아 유튜브면 성장 기록도 되고, 수익화도 될 수 있지 않을까?’
남편을 설득해 카메라를 사고,
내 아이의 웃는 모습과 뒤뚱거리는 발걸음을 찍었다.
밤마다 편집해서 올린 영상은 총 7개.
구독자도 20명 넘게 모였다.
그중 6명은 아마 내 가족이었을 거다.
편집은 은근히 재밌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꾸준함'이라는 덕목이 나에겐 없었다.
그 열정은 업로드 7편 즈음에서 조용히 식었다.
요즘 나의 열정은 김밥에 쏠려 있다.
일주일에 20줄씩 김밥을 싸는 내 실력을
이제는 수익화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콘도 주민을 대상으로 판매하면
배달료도 아끼고 접근성도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용기와 로고, 인스타 계정, 스티커까지 만들었다.
채칼이 도착하면, 그때가 나의 4차 도전의 서막이 될지도 모른다.
이번엔 제발, 오래 갔으면.
적어도 내 딸에게 “엄마가 이건 해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은.
쓰다 보니, 나 정말 이것저것 많이 해봤다.
단단하게 붙잡은 것도, 가볍게 놓아버린 것도 많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또 다른 무언가를 구상 중이다.
맞다. 나는 지금,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혹시 이게 또 하나의 ‘시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도전은 계속되고 있고, 저도 여전히 구상 중입니다.
혹시 비슷한 마음을 가진 분이 있다면… 우리, 친구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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