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끝
정동원 콘서트를 방문하고 가장 놀랐던 점은 의자에 앉자마자 누군가가 건네준 책받침 같은 코팅지였다. 서로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곁에 있던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준다. 수능 시험 이후 처음이었다. 시험지를 맨 앞줄에서 받아 뒤로 넘기는 식으로 넘어왔다. 녹색에 코팅지는 앞면은 'JD1'이라고 적힌 문구와 뒷면은 '책임져' 이게 뭘까? 책임져?
채채채채책 책임져~ 내가 알고 있는 노래는 언타이틀에 책임져였다. 그런데 가사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때 그 노래를 리메이크한 것 같았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이 노래를 듣지 못했지만 유튜브를 뒤져보니 2024년 10월 12일에 발매되었다. 정동원만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소녀 같은 시절의 나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걸 준비해 온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었으나 자리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거 왜 만들어 오신 거예요?"
아마 뻔한 답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좋아해서요"
누군가를 좋아해서 행동을 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그런 열정이 부럽기만 하다. 응원봉도 최신형인 중앙제어시스템을 온전히 받는 그것과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를 만큼 큰 장바구니는 그녀의 팬심을 보여주는 것 같다. 다음에 만나면 한 번은 물어보리라 ㅎ
1부가 끝이 나는 듯하자 사람들은 급히 볼 일을 보는 분위기다. 무대에 불이 꺼지자. 너 나 할 것 없이. 물도 마시고 준비해 온 간식거리를 꺼내든다. 앞에서 누군가 먹는 '오징어 땅콩' 바사삭 거리는 그 소리. 한 입만 달라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 바사삭 거림은 너무 맛있어 보였다. 콘서트 장에서 왜 과자가 한 입 먹고 싶었을까? 의문이 들긴 하지만 내 앞에 '오징어 땅콩' 당신 광고 찍어도 되겠더라~
화면에는 정동원에 관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사람들은 영화관에 온 것처럼 가만히 앉아 이야기를 듣고 영상을 바라보고 있다. 정동원이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사람들은 웃음이 한가득 넘쳐난다. 언제 이렇게 웃어 봤을까? 생각이 든다. 콘서트에 다니는 이유가 맘껏 소리도 지르고 옆 사람과 함께 웃고 즐기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기운' 그 기운은 잊을 수가 없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동원 군은 각 구역마다 소리를 질러 보라며 외친다.
"1층"
"2층" 네. 네. 소리가 장내를 가득 채우면서 어수선한 분위기는 한순간에 정리됐다.
그리고 들려오는 진성의 보릿고개
첫 소절이 들리고 살짝 눈물이 났다. 바로 옆에 엄마와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함께 노래를 듣고 박수를 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옆에서 함께 있던 그녀는 없을 것이다란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눈물이 글썽글썽 거리는 걸 억지로 꾹 참았다. 보릿고개 노래를 들으면서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크리스마스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선물 줄 산타도 없고 아이도 아니지만 엄마에게 나는 언제나 어린아이이다.
음악은 왜 눈물이 나게 하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옆에 없는 것도 아닌데. 아마도 언젠가 이날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추억하겠지 이 노래를 듣는 순간이 찾아오면 언제든 어디서든 함께 손뼉 치며 떠들었던 이 순간을 말이다.
"아이야 우지 마라" 이 한 마디가 엄마가 나에게 건네는 위로인 것만 같다.
엄마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엄마 김치 좀 알려줘요"
김장철이 되면 늘 김장을 해서 우리 집부터 동생네 이모들 집까지 여기저기 다 챙긴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녀가 없다면 나는 그녀를 어떻게 추억할 것인가? 그리고 내린 결론 중 가장 큰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것은 그녀의 김치였다. 김장 김치는 초 겨울이 다가올 즘에 한번 담가놓으면 일 년을 먹는다. 처음에는 김치에 흰밥 만으로 행복하고 그게 지겨울 즘이면 김치를 볶아 먹고 씻어 먹고, 넉넉히 익으면 김치찌개까지. 일 년 내도록 김치로 반찬을 만들어도 된다.
그런 김치. 일 년 내도록 함께 하는 김치. 이걸 배워두면 엄마가 곁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존재는 사라져도 마음, 향기, 추억, 온기 등등 그녀를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면 보이지 않을 뿐 느낄 수는 있으리라 생각했다. 느낄 수 있다면.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어쨌든 보릿고개 한 곡에 눈물을 쏙 뺐다.
'이놈의 자식 괜히 눈물 흘리게 하고 말이야'
인생은 뒤돌아 보면 모든 것을 후회한다. 해도 안 해도 모든 것은 후회다. 살아가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후회의 크기를 줄이는 것뿐이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래에 추억 회상을 잘했냐고 물어보는 동원 군. 모두 우렁찬 대답으로 그 물음에 답을 한다. 앞으로의 가수 인생도 열심히 할 테니 응원해 달라는 동원 군에 말에 모두들 박수로 화답을 했다. 이제 분위기를 바꿔본다고 한다. 그래 여기서 더 슬픈 노래 나오면 질질 짤지도 모르니 얼른 넘어가자.
신나는 곡으로 추억 여행을 보내 준다는 동원 군. 그 말에 모두들 방금 전에 감동을 날려버리고 또다시 즐길 준비를 한다.
"자 즐길 준비되셨나요"
"네에~~~~~"
그녀들은 유치원 때보다 더 우렁차게 자신의 의지로 대답을 하고 있었다. 아마 동원 군이 콘서트에서 공부를 가르친다면 여기 있는 그녀들에 학업 성적이 쑥쑥 올라갈 것 같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난다 그랬는데 오늘의 콘서트는 단짠단짠이 왔다 갔다 했다. 엉덩이 털은 누가 잘라줄까 고민이다.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박수 소리와 응원봉을 흔드는 손길이 바빠진다.
후렴구에 같이 부르는 떼창. 이제 모두들 정동원의 '동화' 속에 각자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그런데 공연을 보면서 옛날 생각이 난다. 화려한 불빛 아래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나도 무대에 선 적이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20년 전. 그냥 20년 전으로 알자. 따지지는 말고.
아무튼 20년 전 설날이면 장기자랑이 펼쳐지고는 했다. 삥 둘러앉은 거실에서 누구 할 것 없이 장기자랑을 해야 했던 시절. 안 하면 용돈을 주지 않았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잠깐이면 되었다. 화려한 조명은 없었지만 거실 등이 있었고 수많은 관객은 없었지만 30명 정도 되는 가족들이 삥 둘러앉았다. 어떤 장기 자랑을 했는지 지금은 기억이 흐르지만 그때 나도 무대에 선 적이 있었다.
박수 소리와. 함성. 층간 소음도 따지지 않았던 그 시절. 그냥 그렇거니 했던 그 시간들이 생각난다.
이제 노래가 끝나면 모두들 아실 거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생겼다. 정동원. 잘생겼다. 정동원"
"잘생겼다. 정동원. 잘생겼다. 정동원"
누군가 편의점에서 500미리 생수통을 들고 물만 마셔도 응원을 할 것만 같다. 저절로 이 단어가 수시로 나올 것만 같고 내가 물만 마셔도 생각이 난다.
"잘생겼다. 향기남." ㅋㅋㅋ 죄송합니다.
신나는 리듬의 노래가 계속 흘러나왔다. 2부가 시작되고 감동을 찐하게 먹인 뒤에는 계속되는 흥겨움. 이 흥겨움 덕분에 콘서트를 즐기는 게 아닐까 싶다. 맘껏 소리치고. 누가 보든 신명 나는 어깨춤. 전신이 건강해지는 박수. 두 시간째 계속 이어지는 응원봉을 흔드는 팔운동. 건강을 저절로 챙길 수 있다.
잘생기면 오빠란 노래가 흘러나오고 동원 군의 목소리와 그녀들의 응원 구호가 함께 한다.
"잘 생기면 다 오빠 오빠 오빠야"
동원 군은 오빠가 맞다. 잘생겼으니까 말이다.
정말 신난다. 뭐 카페에서 앉아 마주 보며 대화를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콘서트에서 동원 군을 만났다는 사실 만으로 신이 났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도 목청껏 소리 지르며 다 날려 보낼 수 있다. 누구에게도 눈치 보지 않고 더 큰 목소리를 동원할 수 있는 이곳은 그녀들에게 천국이 아닐까 싶다. 비싼 돈 내고 왜 콘서트를 갈까 생각이 들지만 충분한 가치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소리 지르고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동원 군 덕분에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처음 백제문화제에서 만났을 땐 어린아이인 것만 같았는데 콘서트 무대에서 이렇게 만나보니 색다른 모습이었다. 이제 상남자를 향해가는 동원 군에 앞길이 늘 꽃길이길 응원한다. 좋은 노래와 좋은 사람들 좋은 기운이 함께 했다.
특별하고 색다른 하루였다. 많이 웃었고 소리 질렀다.
마지막 꽃받침과 함께 사진 한 장으로 아쉬움을 뒤로한다.
정동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