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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기억을 꿰맨 날

by Liar

제13장.기억을 꿰맨 날


가게 문이 열리자마자, 알 수 없는 공기가 안으로 밀려들었다. 바람은 아니었고, 햇빛도 아니었다.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문 앞에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은 단번에 모든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그는 낡고 오래된 외투를 입고 있었고,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얼굴은 바람에 깎인 듯 거칠었고, 코끝엔 핏자국이 마른 흔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먼저 들어온 건, 그에게서 풍겨오는 강한 악취였다.

하얀이가 본능적으로 반 발짝 뒤로 물러섰고, 나도 모르게 코를 찡그렸다. 하지만 그는 그저 조심스럽게 가게 안으로 한 발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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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수선하는 곳 맞나요.”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지만, 어딘가 정중했다.

“네, 맞습니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대답했다. 목소리는 평정심을 유지했지만, 속으로는 뭔가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주머니를 더듬더니, 주름진 손수건 하나를 꺼내 놓았다. 손수건은 중간이 갈라져 찢어져 있었고, 희미한 붉은 자수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마치 오래된 어떤 시간에서 건져낸 듯한 물건이었다.

“...이거, 고칠 수 있을까요. 그냥... 꿰매기만 해주셔도 됩니다.”

나는 손수건을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바느질 선이 바래 있었지만, 천은 아주 얇고 부드러웠다. 고급 면이었다. 아주 오래 전에, 아마 누군가 정성껏 선물했을지도 모른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수는 있어요.”

하얀이가 입술을 깨물며 묻기 시작했다.

“이 손수건 ...무척 오래돼 보이네요. 혹시... 어떤 사연이 있는 건가요?”

남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은 길었다. 나는 그가 떠나려는 줄 알고 천천히 손수건을 내려놓으려 했을 때,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가 예전에는 꽤 잘 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죄책감과 피로, 그리고 체념이 섞인 웃음이었다.

“서른셋에 무역업으로 큰돈을 벌었고, 다섯 개 나라를 왔다 갔다 하며 살았죠. 양복을 맞춰 입고, 외제차를 몰며, 늘 바쁘게 살았습니다. 늘... 내가 최고라고 믿으며.”

그의 말은 마치 긴 꿈을 회상하는 듯 천천히 이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모든 게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투자 실패, 사람들의 배신, 결국엔… 아내도, 아이도 떠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손수건만이 남았어요. 생일 선물로 아내가 직접 수놓아 준 겁니다. 이건 버릴 수가 없더군요.”

하얀은 눈을 크게 뜨며 손수건을 다시 바라보았다. 자수의 한 귀퉁이에 엷은 고양이 모양의 실루엣이 남아 있었다. 잊히지 않게, 너무 작아서 더 눈에 띄는 무늬.

“그 고양이는, 제가 처음으로 아내에게 선물했던 인형을 본떠 만든 거예요. 아내는 그 인형을 ‘위로’라고 불렀죠. 마음이 힘들 때 꼭 안고 자던 작은 고양이. 그 손수건도, ‘당신의 위로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든 거였어요.”

나는 천천히 숨을 쉬었다. 하얀의 눈엔 이미 물기가 돌고 있었다.

“수선은 제가 맡을게요.”

나는 조용히 일어나며 말했다. 그리고 문을 바라보다가, 불쑥 말을 던졌다.

“혹시... 같이 목욕탕에 가보실래요?”

남자는 당황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목욕탕이요?”

“네. 몸이 깨끗해지면, 마음도 조금은 덜 무거워질지도 몰라서요.”

남자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럴 돈이 없습니다. 얼마 되지 않지만...”

그는 호주머니를 뒤져 몇 천 원짜리 지폐를 꺼냈다. 손에 쥐어진 종이는 구겨져 있었지만, 꺼내는 동작은 정중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손수건은, 아내가 위로를 담아 준 물건이라고 하셨죠. 기억을 제대로 꿰매기 위해선, 몸도 마음도 준비되어야 해요. 이건… 제 쪽에서 제안드리는 겁니다. 선물로요.”

그의 입가가 살짝 떨렸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이 서 있던 그는 결국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나는 장롱을 열고, 예전에 입지 않았던 셔츠와 청바지를 꺼내 챙겼다. 하얀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활짝 웃었다.

“다녀오세요, 사장님. 손수건은 제가 맡아서 수선할게요.”

우리가 가게 문을 나선 뒤, 하얀은 조심스럽게 실을 꿰었다. 그리고 손수건 한 귀퉁이에 조용히, 조용히 자수를 더하기 시작했다. 원래 있던 고양이 모양을 따라, 새로운 실로 덧댄 무늬는 조금 더 선명하게, 조금 더 다정하게 완성되어갔다.

목욕을 마치고 가게 문으로 들어섰을 때, 하얀은 마치 아이처럼 들뜬 표정으로 다가왔다. 작은 고양이 자수가 정성스레 놓인 손수건이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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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보세요. 이 친구 이름은 ‘기억이’예요. 꼭 안고 다니면, 잊고 있던 따뜻한 기억이 떠오를 것 같아서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웃었다. 고양이의 눈망울은 어쩐지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함을 담고 있었다. 아마, 우리가 오늘 만난 그 사람의 지난 날도 저런 눈빛이었을까.

샤워를 마친 노숙자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돌아왔다. 그는 목을 한 번 깔끔하게 가다듬더니,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

“...거울 보기, 참 오래간만입니다.”

하얀이 조심스럽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여기요. 다 고쳤어요. 그리고, 새 친구도 한 명 생겼어요.”

그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조심스럽게 손수건을 펼쳐 보았다. 바랜 천 위에 놓인 고양이 자수가 작은 숨결처럼 살아 있었다. 말없이 그걸 들여다보던 노숙자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이거... 진짜... 고맙습니다.”

나는 말없이 그 옆에 섰다. 그의 옆모습은 누군가의 아버지 같았고, 또 다른 누군가의 잃어버린 청춘 같았다. 시간은 많은 걸 앗아갔지만, 이렇게 아주 작은 실밥 하나로도 다시 묶을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다시... 살아볼 수 있을까요?”

그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이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직도 실은 이어져 있어요. 우리 손에, 이 마음에.”

그날 저녁, 노숙자는 말없이 수선소를 나섰다. 주머니에 손수건을 꼭 넣고, 작은 한기를 막기 위해 목까지 단추를 채운 채.

그의 뒷모습은 여전히 작고 초라해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았다. 그가 품고 간 건, 손수건 한 장이 아니라, 다시 꿰매진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그리고 하얀은 그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사장님, 오늘 우리... 정말 수선 잘했어요. 마음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실타래 하나를 꺼냈다. 오늘의 기억을 조심스레 감싸기 위해.


[기록 37]

어떤 사람은 옷을 수선하러 오지만,

어떤 사람은 삶을 수선하러 온다.

그에게 건넨 건, 고양이 자수가 놓인 작은 손수건 한 장.

하지만 그날 수선소에서 꿰매진 것은,

그가 잃어버렸던 자존심, 따뜻했던 기억, 그리고 다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삶의 실밥은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조용히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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