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정체성의 혼란 : 가상세계와 다중 자아

by 동쟌


[ 소중한 시간을 아껴친절한 요약 ]

인간은 디지털 시대에 아바타, 메타버스 등 다양한 가상 자아를 통해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게 되었다.

다중 자아는 자기표현의 자유를 넓히지만, 정체성 혼란과 사회적 신뢰 약화를 초래할 위험도 크다.

미래에는 다양한 자아 속 자기 일관성과 책임 의식을 유지하는 균형 잡기가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 본문 ]


우리는 더 이상 하나의 얼굴, 하나의 이름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SNS, 메타버스, 게임, 커뮤니티 등 다양한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각기 다른 모습의 자신을 만들어낸다. 현실 세계의 나는 조용할 수 있지만, 온라인에서는 열정적인 창작자나 활발한 사회참여자로 활동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여가를 즐기는 차원을 넘어 인간 존재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인간에게 표현의 자유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었지만, 동시에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자아 분열의 위험도 키우고 있다. 가상의 나와 현실의 나 사이의 간극은 점점 커지고 있으며, 때로는 현실의 나보다 가상의 나를 더 진짜처럼 느끼게 되는 현상도 나타난다.

또한, 메타버스와 디지털 트윈 기술, 더 나아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와 같은 기술들은 인간과 기계, 현실과 가상, 물리적 신체와 디지털 존재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제 우리는 오프라인 공간에만 머물지 않고, 가상 세계에서도 경제활동을 하고, 인간관계를 맺고,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번 장에서는 아바타와 페르소나, 메타버스, BCI, 디지털 트윈 같은 새로운 기술과 사회현상이 인간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차근차근 짚어보고자 한다. 다가오는 시대는 더 많은 가능성과 더 많은 혼란을 동시에 안겨줄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중심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8.1) 아바타·SNS 페르소나


온라인의 ‘나’와 오프라인의 ‘나’

현대인의 일상에서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는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 됐다. 사람들은 여기서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며, 자신의 관심사와 감정을 표현한다. 종종 우리는 본래 모습과는 다른, 좀 더 세련되고 매력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욕망을 느낀다. 인물사진 보정 앱을 활용하거나, SNS상에서 자신이 선망하던 라이프스타일을 과장해서 연출한다. 이런 디지털 페르소나는 현실의 나를 개선한 버전이기도 하고, 때론 완전히 별개의 인물이기도 하다.


아바타의 세계 : 무한한 가능성과 불안

게임이나 가상세계에서 우리는 ‘아바타’를 만들어 활동한다. 성별·나이를 뒤바꾸거나, 현실에선 불가능한 외형을 갖출 수도 있다. 이런 가상의 ‘나’를 통해 상상 속 삶을 체험하는 건 흥미로운 경험이다. 현실에서 느끼던 제한이나 열등감을 잠시 잊고, 자유롭게 관계를 맺으며 즐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아바타가 자꾸 늘어날수록, 오프라인 정체성과 혼동이 커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누군가는 게임 속 캐릭터나 SNS 페르소나를 주인공으로 삼아 ‘현실의 나’를 뒷전으로 밀쳐두고 싶어 하기도 한다.


관심과 인정 욕구

SNS 페르소나를 가꾸고 아바타를 꾸미는 행위 뒤에는, 대개 인정 욕구가 자리한다. 좋아요 수나 팔로워를 늘리려는 욕망, 혹은 “더 멋지다” “잘 산다”는 평판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촉매제가 된다. 이런 긍정적 반응이 빠르고 강력하게 돌아오는 구조가, 오프라인 삶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예컨대 현실에선 한 명의 칭찬을 듣기 어려워도, SNS에 근사한 사진을 올리면 수십~수백 명이 ‘좋아요’를 보낸다. 하지만 이 ‘온라인 인정’은 일시적일 수 있으며, 실제 인간관계나 자기 존중감과 연결되지 않을 때 허무함을 남긴다.


정체성 분화가 낳는 긴장

하나의 개인이 SNS·커뮤니티·게임 등에서 서로 다른 별명과 캐릭터로 활동하면, ‘다중 페르소나’ 상태가 된다. 회사원 A가 메타에서는 사진기 애호가로, 트위터에서는 정치 논객으로, 유튜브에서는 뷰티 크리에이터로 활약할 수 있다. 이는 자신을 다채롭게 표현하는 방식이지만, 오프라인 삶과 충돌하거나 과도한 정신적 피로로 이어질 위험도 크다. 혹은 SNS상의 이미지와 실제 모습이 너무 다르면, 주위 사람들이 실망하거나 “너는 누구냐”라고 따질 수도 있다. 이렇게 온라인 페르소나가 확장되면서, 우리는 스스로가 여러 개의 ‘나’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수용과 균형의 관건

결국 아바타·SNS 페르소나는 현대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실험하고 표현하는 새로운 장을 제공한다. 현실의 한계를 보완해 더 나은 자아를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작용도 분명히 있다. 문제는 “이것이 어느 순간부터 현실과 분리돼 혼란을 야기하진 않는가?”라는 것이다. 바람직한 방향은, 온라인 페르소나를 현실의 나와 적절히 연결해 시너지를 내는 것일 텐데, 그렇지 못하면 자칫 서로 다른 인격이 충돌하거나,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지나쳐 불안을 키울 수 있다. 나름의 경계와 원칙을 세워, 가상의 내가 현실의 나를 부정하지 않도록 조율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8.2) 메타버스, 또 다른 세계


메타버스의 등장과 의미

‘메타버스(Metaverse)’는 가상을 뜻하는 Meta와 우주를 뜻하는 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을 뛰어넘는 가상세계”를 가리킨다. 게임·SNS·온라인 커뮤니티가 결합한 형태로, 아바타를 통해 활동하고, 디지털 자산을 사고팔며, 심지어 일하거나 공부할 수도 있다. 이전에도 가상 세계 개념은 존재했지만, 최근 인터넷 인프라와 VR·AR 기술, 그리고 블록체인 같은 분산 원장이 결합해 훨씬 실감 나고 안정적인 ‘메타버스 생태계’를 구현하려는 시도가 활발해졌다. 어떤 기업은 “인터넷 다음은 메타버스”라며, 하루 일과 대부분을 이 가상공간에서 처리하는 시대가 올 거라 전망한다.


가상의 교류·경제·자산

메타버스에서는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만나 대화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가상 회의를 열 수 있다. 음악 공연을 즐기거나 부동산을 사들이는 일도 가능하다. 이미 일부 플랫폼에서 디지털 토지나 건물을 NFT(대체 불가능 토큰) 형태로 판매해 거액을 벌어들이는 사례가 나왔다. 가상 땅에 쇼핑몰을 건설하고, 사용자들이 아바타 상태로 몰려와 쇼핑을 하는 식이다. 이처럼 현실 경제 모델이 가상세계로 복제돼, 그 안에서 디지털 자산을 사고팔면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 메타버스의 특징 중 하나다.


현실과 구별 어려워지는 경험

VR 헤드셋이나 AR 글라스가 제공하는 몰입감이 늘어날수록, 메타버스에서의 체험이 매우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게임처럼 일시적 놀이가 아니라, “이 세계에서도 내가 살아가고, 인간관계를 맺고, 재산을 늘리거나 잃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소셜 활동 역시 아바타끼리 대화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때론 현실 친구보다 더 자주 만나고 더 깊은 교류를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자연스럽게 “여기가 가상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흐릿해지고, 사용자는 메타버스 속 자아에 더 애착을 느낄 수도 있다.


정체성 혼란과 몰입의 양면성

메타버스가 발전할수록, 인간은 오프라인 실체 외에도 ‘메타버스 속 자아’를 운영하게 된다. 아바타를 꾸미고, 디지털 재산을 소유하며, 가상 직업을 갖고, 가상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이 일상화된다. 이 과정에서 “본래 내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릴 위험도 제기된다. 가상의 세계에서 얻는 성취와 인정이 강렬하면, 현실 삶을 등한시하거나, 현실의 어려움을 회피하고자 메타버스에만 머무르게 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한편으론, 원격으로 만나 협업하며 국경을 초월한 경제·문화 교류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도 있다.


법적·윤리적 과제

메타버스 내 자산이 현실 재화와 연동되면, 법적 문제가 복잡해진다. 사기·불법 복제·저작권 문제나 세금·사유재산 개념 등이 어떻게 적용돼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아바타가 범죄를 저지르면 현실 세계에서 처벌해야 할까, 아니면 가상 세계 내부에서만 제재하면 되나? 여러 국가와 플랫폼이 규범을 마련 중이지만, 범용적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게다가 청소년 보호나 사생활 침해 문제도 크다. 메타버스에서 아바타를 통해 얼굴이나 음성, 행동 패턴까지 수집 가능하니, 개인정보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


‘또 다른 세계’의 미래적 가능성

비관적 관점에선, 메타버스는 인간을 현실로부터 소외시키고 정체성 혼란을 일으키는 위험한 허상이라고 본다. 반면 낙관적 입장에선, 재택근무·원격 협업·가상 교육 등을 통해 시공간 제약을 극복하는 혁신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예술가들은 메타버스에서 전시·공연을 열고, 상점들은 오프라인 없이도 세계 시장에 접근한다. 아바타끼리 거래하고 가상화폐로 대금을 치르는 모습이 이미 현실이 됐다.

결국 메타버스는 단순 ‘게임’이나 ‘SNS’의 확장이 아니라, 현실과 분리하기 어려운 제2의 생활공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인간의 존재 방식을 근본부터 재정의한다. 내가 물리적으로는 방에 앉아 있어도, 가상 회의실에서 여러 사람과 소통하며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다. 이 가상 생활이 불러올 정체성 영향과 사회 변화는 아직 완전히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건, “메타버스가 상상 속에만 머무는 개념이 아니라 실제 인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체성과 경계 재설정

메타버스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무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새로운 자아를 부여한다. 인간은 오프라인 육체를 지닌 존재이자, 메타버스 아바타로 활동하는 디지털 존재가 된다. 이런 다층적 자아는 흥미와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동시에 “진짜 나”는 무엇이며, “가상의 나”가 현실에 어떻게 귀속되는지 혼란을 부를 수 있다. 존재(Being)란 과연 물리적 신체로만 규정되는가, 아니면 디지털 신체(아바타)도 동일한 실재성을 지니는가라는 질문이 새롭게 대두된다.




(8.3)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시대


BCI란 무엇인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는 인간의 뇌파나 신경신호를 직접 기계가 읽고, 반대로 기계 신호를 뇌로 전달하는 기술을 일컫는다. 단순 뇌파 측정을 넘어, 미세 전극을 뇌에 삽입해 더 정확하게 신호를 포착하고, 인공지능 분석으로 이를 해석하는 방식도 연구 중이다. SF 영화에서 보이던 “생각만으로 로봇을 움직이고, 기계를 통제한다”는 장면이 결코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손·발을 잃은 환자가 로봇 팔을 BCI로 조종하거나, 컴퓨터 커서를 생각만으로 이동시키는 시범 사례가 발표되고 있다.


기술이 열어줄 새로운 문

BCI가 발전하면, 손상된 신경을 대체해 “인공 시각”을 되살리거나, “마비 환자가 생각으로 의사를 표현”하게 만들 수 있다. 뇌졸중·척추 손상 환자가 다시 보행 로봇을 움직이는 꿈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게임·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도 뇌파로 캐릭터를 조작하거나, AR/VR 기기와 결합해 감각 입력을 뇌로 바로 전달하는 흥미로운 시도가 이뤄질 수 있다. 이처럼 BCI는 재활의학에서부터 가상체험까지 폭넓은 응용처를 갖춰, ‘인간 능력 확장’이라는 희망 섞인 수식어를 받기도 한다.


인간의 경계를 허무는 위험

그러나 뇌와 기계가 직접 연결되면, 우리가 전통적으로 믿어온 ‘신체·정신의 경계’가 무너진다. 단지 환자 치유만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이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고자 뇌를 보강하는 형태(트랜스휴머니즘)가 본격화될 수 있다. 두뇌에 칩을 심어 학습 속도를 가속하거나, 기억 증강 장치를 달아 단기간에 언어·기술을 습득하는 식의 시나리오는 이미 SF 소설을 넘어 실험 단계에 진입 중이다. 이런 기술이 보편화된다면 인간 사이에서 능력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질 위험이 있다. 부유층이 BCI로 지적 능력을 극대화하면, 교육·취업에서 우위를 독점할 수도 있다.


뇌 신호 해킹과 사생활 침해

BCI가 정교해질수록, ‘생각 그 자체’가 데이터화되어 외부로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사적이고 은밀한 상상이나 감정마저 기계가 해독할 수 있다면, 프라이버시 개념이 완전히 붕괴될 공산이 크다. 해커가 뇌 신호를 가로채거나 변조해,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암울한 미래도 상상할 만하다. 예컨대 게임에서만 쓰려던 BCI 헤드셋이 정부나 대형 기업에 의해 악용된다면, 개인의 생각을 실시간 감시하거나 조작하는 악몽 같은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계 → 뇌로의 데이터 쓰기

BCI가 한 방향(뇌 → 기계)만 지향하는 건 아니다. 기계가 뇌에 신호를 ‘입력’하는 방식도 연구된다. 간단한 전기 자극으로 특정 시각·촉각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고, 더 발전하면 복잡한 감각이나 감정을 뇌에 직접 심을 수도 있다는 가설이 제기된다. 만약 이것이 가능해진다면, “가상 세계의 체험을 현실처럼 느끼게 만드는” 일이 가능해진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처럼, 인공신호로 현실 감각을 대체하는 단계가 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선 누구나 “이건 정말 실재인가, 가짜인가”를 구분하기 힘들다는 거대한 존재론적 혼란이 따라온다.


윤리와 책임의 딜레마

실험 단계의 BCI는 주로 의학적 재활 목적이지만, 상용화되면 규범적으로 다뤄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뇌에 전극을 심거나 착용형 BCI 기기를 사용할 때, 오작동으로 인해 신체나 정신이 손상되면 누가 책임질까? 또, 한 인간의 사적 생각에 접근하는 권한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까? 국가나 기업이 “국익과 기업 효율을 위해 BCI 정보를 수집한다”라고 하면 어떻게 막아야 하나? 이런 질문들은 신체불가침과 정신자유를 근간으로 했던 기존 윤리·법 체계를 크게 흔들어댄다.


인간의 정체성 재해석

BCI가 가져올 미래를 낙관적으로 본다면, 질병과 장애 극복이 훨씬 빨라지고, 인간이 더 창의적이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비관적으로 보면, 뇌가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감시·조정당하는 디스토피아가 될 위험이 있다. 어떤 시나리오이든, “인간의 몸과 정신은 불가침이다”라는 믿음이 흔들리면서, 우리가 존재를 정의해 온 근본 틀(육체적 경계, 개인적 사유)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실험실에서는 일부가 실현 중이고, 상용화까지는 몇십 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언젠가 대중화된다면 전례 없는 정체성 혼란을 불러올 게 자명하다.


BCI 시대를 대비하는 자세

결국 BCI는 뇌 활동을 직접 기계와 연결함으로써, 인간과 AI가 융합하는 가장 극단적 형태를 가시화한다. 이 기술을 어떻게 규제하고 윤리 기준을 세울지는, “인간다움”을 어디까지 지킬 것인가와 직결된다. 뇌 신호가 단순 데이터로 치부될지, 신성한 정신 영역으로 보호될지, 이는 우리 사회가 어떤 미래를 희망하고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지에 달렸다. BCI가 열어줄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인간 존재는 한층 더 깊은 갈림길에 서게 된다.




(8.4) 다중 정체성의 부작용


캐릭터·부계정·가명 운영

온라인 게임이나 SNS, 메신저 앱 등에서 여러 계정을 동시 운영하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한쪽 계정에서는 활달하고 사교적인 인물로, 다른 쪽에선 정치적 주장을 펼치는 논객으로, 또 다른 곳에선 평범한 친구 모임 전용 계정으로 활용하는 식이다. 이렇게 ‘나’를 여러 버전으로 나누어 표현하는 행위가 쉽게 이뤄지다 보니, 한 개인이 너무 많은 가명·아이디를 보유하게 된다.


자아 통합의 필요성

다중 정체성 자체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자기표현의 여러 면모를 탐색하고, 특정 캐릭터나 필명으로 마음의 짐 없이 활동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는 긍정적 요소도 있다. 하지만 이게 지나치면, 어떤 정체성이 진짜 자신인지 불분명해진다. “내가 오프라인에서 내성적인데, 온라인에서 외향성을 즐기다 보니 이제 진짜 나는 무엇인가?” 같은 고민이 발생한다. 필연적으로 자아 통합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스스로가 여러 ‘나’ 중 어느 정도까지 각 채널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지 의식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사회적 신뢰와 규범

또 한 가지는 사회적 신뢰 문제다. 다중 계정 운영이 활성화되면, 악용 사례—가짜뉴스 전파나 폭언, 스토킹—가 빈번해질 수 있다. 익명성 뒤에 숨어 공격적 언행을 일삼거나 사기를 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플랫폼 운영자들이 ‘1인 1계정’을 권장하거나 본인 인증을 강화하려는 것도 이런 남용을 막기 위함이다. 그러나 본인 인증이 너무 강해지면 프라이버시가 침해되고,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는 반발도 생긴다.

결국, 다중 정체성은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과 다양한 캐릭터 실험을 허용함과 동시에, 자칫 거짓과 혼란을 키워 사회적 불신을 야기할 수 있다는 양면성을 갖는다.




(8.5)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전적 질문 재등장


고전적 정체성 물음의 의미

서양 철학 전통에서 “나는 누구인가?”는 데카르트의 코기토(“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 이르기까지 인간 존재를 정의하는 근본 질문이었다. 동양 사상에서도 자아는 육신과 영혼, 혹은 연기된 관계 속의 존재로 다루어져 왔다. 결국 이 고전적 물음은 “내가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가”를 묻는 근원적 난제다. 과거에는 이를 신체·의식·기억·도덕성 등으로 풀이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온라인상의 ‘나’”나 “확장된 자아” 같은 새로운 변수가 등장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AI·가상세계가 불러온 혼란

메타버스, SNS, 다중 계정, 디지털 트윈 등 한 사람을 복수의 페르소나로 분할하는 현상이 만연하다. 거기다 자율주행차나 AI 비서가 내 결정을 보조하거나 대체하는 상황에서, 과연 ‘진짜 나’는 어디까지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는지 불투명해진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가 활성화되면, 더더욱 내 생각과 기계 신호가 뒤섞여 “무엇이 나의 의지인지” 모호해질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누구인가?”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철학적·심리학적 접근

철학자들은 개인 정체성을 기억·의식 연속성으로 해석하거나, 물리적 신체로 연결된 단일 주체로 설명하려 시도해 왔다. 하지만 디지털 다중 페르소나나 가상 신체(아바타) 개념이 들어서면, “의식이 여러 곳에 분산”되는 듯한 상황이 생긴다. 심리학에서는 “역할 이론(Role Theory)” 등으로 사람의 여러 사회적 위치와 행동 양식을 설명했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그 역할이 지나치게 늘어나면 자기 인식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점이 새롭게 대두된다. 자칫하면 “이 역할은 내가 진심으로 원한 것인가, 단지 SNS 캐릭터 설정인가?” 하는 식의 불안이 커진다.


정체성 위기와 자아 탐색

이 질문이 단순한 학술 토론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정체성 위기가 개인의 심리적·정서적 어려움을 낳기 때문이다. 삶의 방향이나 가치관을 설정하기 위해선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나?”라는 자기 이해가 필수적인데, 온라인·오프라인·가상·현실에서 다른 면모를 보일수록 자기 일관성을 느끼기 어려워질 수 있다. SNS에서 한 말과 현실에서의 행동이 어긋나거나, 게임 아바타에 몰입해 현실 생활이 뒷전으로 밀리면, 주위 사람들도 헷갈려하고 당사자 스스로도 정체성을 흔들릴 수 있다.


새로운 방향과 과제

결국, AI 시대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선, “하나로 고정된 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영역에서 상호작용하는 ‘복합적 나’”로 재정의하는 흐름이 유력하다. 내가 직장인·가족·온라인 커뮤니티 구성원·가상세계 아바타 등 다양한 역할을 가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중요한 핵심 가치나 원칙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다시 말해 ‘자아 통합’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상의 나와 현실의 나가 반드시 충돌하는 게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방안이 부상한다. 철학·심리학·사회학은 이런 문제에 접근하면서, 인간이 디지털 시대에도 자아를 “유연하고도 안정적으로” 유지할 방법을 계속 연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8.6) 디지털 트윈 : AI가 복제한 ‘또 다른 나’


개인 데이터로 만들어진 가상 모델

‘디지털 트윈’은 원래 공장이나 건물 설비 같은 물리적 시스템을 가상 환경에 동일하게 재현해, 시뮬레이션·예측을 수행하는 개념으로 시작됐다. 그런데 이 개념이 인간에게 확장되면, 한 사람의 신체·행동·취향 데이터를 AI가 학습해 가상 모델을 만드는 형태가 가능해진다. 이를테면 나의 건강 데이터, SNS 이력, 소비 패턴, 심지어 목소리·얼굴 정보를 통합해 ‘디지털 트윈’을 구축하면, 그 모델이 나 대신 여러 상황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예컨대 “내가 이 음식을 먹었을 때 어떤 건강 반응이 나올지”를 디지털 트윈이 미리 계산해 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예측 가능성과 편리함

만약 디지털 트윈이 계속 업데이트되면서 내 상태를 정확히 반영한다면, 미래의 행동이나 의사결정을 ‘가상 나’에게 실험해 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2주간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식단을 이렇게 바꾼다면 체중이 얼마나 줄까?” 같은 시뮬레이션을 돌릴 수 있다. 금융·보험 분야에서도 “이 고객의 행동 패턴상, 미래에 어떤 위험이 있을까?”를 디지털 트윈으로 추정한다. 언뜻 보면 개인화된 편의성과 맞춤 솔루션을 제공하는 혁신처럼 보인다.


사생활 침해와 조작 우려

하지만 디지털 트윈을 만들려면, 사람이 가진 데이터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 유전자·건강 기록뿐 아니라, 위치 정보, SNS 포스팅, 심지어 대화 내용까지 수집해 정확도를 높이려 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렇게 방대하게 모인 데이터가 기업이나 정부에 넘어갈 때, “누가 통제하며 어떻게 사용하느냐”를 관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또, 가상의 ‘나’를 제멋대로 조작해 “내가 하지 않을 일”을 시키는 식의 악용 사례도 상상할 수 있다. 이 가짜 ‘나’가 온라인에서 글을 쓰거나 영상을 찍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피싱을 시도할 수도 있다.


정체성 혼란

철학적으로도 “만약 디지털 트윈이 내 행동을 90% 이상 일치하게 재현한다면, 그건 나랑 얼마나 같은 존재인가?”라는 질문이 불거진다. 의료·상담 영역에서 “디지털 트윈과 대화하며 정신 상태를 점검한다”는 시나리오도 나올 텐데, 자신을 자신이 상대하는 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가상 나”가 실제 나보다 더 나은 선택이나 조언을 해준다면, “내가 굳이 노력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자아 의문의 단계에 이를지도 모른다.

결국 디지털 트윈은 단순 효율 향상을 넘어서, 인간 정체성의 정의를 바꾸는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공장·도시 수준에서 디지털 트윈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으니, 개인 영역에서도 이런 흐름이 확산될 건 자명하다. 편의와 위험이 극단적으로 교차하는 이 기술이, 개인을 어떻게 이롭게 하거나 상처 입힐지 결정하는 건 사회가 어떤 규범과 원칙을 세우느냐에 달렸다. ‘또 다른 나’를 가진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진짜 ‘나’를 계속 확인할지, 누구도 선뜻 명쾌한 답을 내놓기 쉽지 않다.




(8.7) 인간관계·사회 문화에 미치는 영향


가상세계 우선 세대의 등장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온라인 게임, SNS, 메타버스에서 만난 인맥과 친밀도를 높게 느낀다. 현실에서 자주 만나기 어려운 사람보다, 매일 게임 파티나 채팅방에서 대화하는 친구가 훨씬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현실 친구 ↔ 가상 친구”라는 구분 자체가 희미해지고, 심지어 가상 친구와 인연이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지거나, 해외 거주자를 원격으로 만나며 국제적 교류를 하기도 한다.


가상의 관계가 오히려 깊을 수도

어떤 이들은 익명성이나 아바타라는 방패 뒤에서 더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해, 현실보다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예컨대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SNS 커뮤니티나 게임 길드에서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위로받으며, 현실 지인들보다 친밀해지는 상황이 흔하다. ‘현실보다 진한 교류’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물론 그만큼 상처를 주고받는 갈등도 생길 수 있다.

가상의 관계가 더 소중해진다면, 오프라인 인간관계나 가족 모임을 뒤로 미루게 될 우려도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가상세계 속 유대가 과연 얼마나 진실된 감정인가?”라며 경계하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은 현실 친구보다 온라인 지인에게 더 많이 의존하며 안정감을 느낀다.


사회 문화의 재편

문화 행사나 팬덤 활동도 오프라인을 넘어 디지털에서 대규모로 진행되면서, ‘덕질’이나 ‘밈 문화’가 폭넓게 퍼진다. 가상 공연장에 모여 실시간 응원 메시지를 보내거나, 댓글·이모티콘 문화를 통해 전 세계인이 한순간에 교감하기도 한다. 이는 전통적 지역·국가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집단 정체성을 만든다.

결과적으로 인간관계와 사회 문화가 “가상세계 우선”으로 바뀌는 흐름은 계속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현상은 인간이 직접 만나 혈육·이웃과 관계 맺던 시대와 결이 다르다. 이제는 취향·목적 중심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나”의 친구·동료가 되고, 현실보다 가상의 인연이 더욱 가까워질 수도 있다. 이런 전환은 기존 가족제도나 지역 공동체보다 새로운 커뮤니티를 더 중요하게 만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8.8) 자아 통합 vs. 분열의 갈림길


다중 자아 시대

지금까지 살핀 것처럼, 온라인·가상세계가 발달하면서 개인은 여러 페르소나를 생성하고 다양한 캐릭터로 살아간다. SNS 아바타·메타버스 아바타·게임 캐릭터·서브 계정 등 적게 잡아도 서너 개 이상의 자아가 공존할 수 있다. 각각의 공간에서 맺는 인간관계도 다르고, 표현 양식도 상이하다. 이건 흥미로운 자유를 제공하는 동시에, “어떤 ‘나’가 진짜인가?”라는 궁극적 고민을 안긴다.


자아 통합의 필요성

심리학에서는 사람이 여러 역할을 수행하더라도, 근본적 정체성과 일관된 가치가 있어야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캐릭터가 달라도 중심축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여러 면모를 조화롭게 운영할 수 있다. 예컨대 회사에서는 논리적 태도를 취하고, 게임 속 친구들에겐 쾌활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근본적 가치관이나 성격이 일관되면 큰 무리가 없다. 반면, 전혀 다른 인격을 사용하며 서로를 부정하기까지 한다면 자아분열적 현상이 일어날 위험이 커진다. 행동이 일치하지 않아 스스로 혼란을 느끼거나, 주변인들이 해당 인물의 신뢰도를 의심할 수 있다.


분열로 치달을 때의 문제

자아가 심각하게 분리되면, 한 계정에서 했던 발언이나 약속을 잊고 다른 정체성에서 전혀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식의 충돌이 생긴다. 때론 심리적 부작용(불안, 우울, 방어적 태도)으로 이어져 현실 생활이 엉망이 되거나, 대인관계가 무너질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가상 아바타 속 비현실적 캐릭터에 지나치게 몰입해, 실제 자신을 무가치하게 느끼는 ‘현실 이탈’을 겪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 정신적 병리로 이어지는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균형 잡기와 사회적 규범

이와 달리 ‘자아 통합’을 유지하는 이들은 다양한 페르소나를 즐기면서도, 각 영역에서의 행동이 본질적 자기와 연결됨을 인식한다. “지금은 게임 캐릭터 역할이지만, 기본적인 예의나 윤리는 지키겠다” 같은 태도를 통해, 어느 정도 일관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사회 전반에서도 “다중 정체성은 허용하지만, 최소한의 책임·배려는 지키자”는 식의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대두된다. 만약 사람마다 자아가 무제한으로 분산돼서, 실명 책임이 약해지고 거짓 정보나 분열적 행동이 많아진다면 공동체 안정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다중 자아가 더욱 흔해질 건 자명하다. 메타버스 아바타, 로봇과의 동시 협업, 디지털 트윈, 가상 팬덤 등 환경이 계속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만의 중심축을 어떻게 잡아둘지 고민해야 한다. 완전한 분열은 자신도 고통받고, 주변도 혼란스럽게 만든다. 미래 사회에서 “다중 자아를 용인하되,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개인적·사회적으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8.9) 앞으로 더 심화될 ‘다중 자아 시대’


가상·현실 경계가 더욱 흐려진다

앞으로 VR·AR 기기, 메타버스 플랫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등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가상세계를 활발히 오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각기 다른 역할과 본인을 대변하는 캐릭터를 무수히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이미 SNS와 게임 영역에서 다수 계정을 운영하던 흐름이, 메타버스 시대에는 더욱 일상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다중 자아가 보편적 현상이 될 수도

이렇게 되면 ‘나’라는 존재가 특정 이름과 얼굴을 가진 유일한 실체라는 관념이 옅어지고, 누구나 여러 페르소나를 동시에 관리하는 형태가 보편화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이는 직장·가족·취미 커뮤니티마다 전혀 다른 캐릭터로 활동하고, 그중 일부가 가상현실 아바타로도 확장되는 식이다. 이 현상이 자연스러워진다면, 과거에 말하던 ‘이중생활’은 오히려 평범한 수준에 머물고, ‘다중생활’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기회와 위험이 교차

‘다중 자아 시대’는 개인에게 다양한 자기실현 기회를 줄 수 있다. 여러 취향·재능을 병행하며 살 수 있고, 기존 사회적 역할을 깨고 새 정체성을 탐색하기도 쉽다. 그러나 위험도 따른다. 자아 혼란이 커지고, 사회적 책임이 분산돼 무책임한 행동이 늘어날 수 있다. 가짜 계정 남용이 심화돼 허위 정보 유포나 사기가 만연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 흐름을 되돌리긴 어렵다. 결국 사회와 개인이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가 관건이다.

결국, ‘다중 자아’는 디지털 전환이 촉발한 정체성 혁명의 단면이다. 8장에서 다룬 아바타·메타버스·뇌-컴퓨터 인터페이스·디지털 트윈 등은 모두 인간이 여러 버전의 ‘나’를 운영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우리는 “이것이 인간 실존을 풍요롭게 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분열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마주칠 것이다. 선택과 제도적 보완을 통해, 다양한 자아가 어우러지되 기본적인 자기 일관성과 사회적 책임을 유지하는 길을 찾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 참고문헌(이 글의 개념과 논의는 아래 책들을 발췌 또는 요약을 통해 참고하여 재해석해 구성했습니다.)

Nick Bostrom (2014). *Superintelligence: Paths, Dangers, Strategies*. Oxford University Press.

Shoshana Zuboff (2019). *The Age of Surveillance Capitalism*. PublicAffairs.

Nick Srnicek (2017). *Platform Capitalism*. Polity Press.

IEEE (2019). *Ethically Aligned Design: A Vision for Prioritizing Human Well-being with Autonomous and Intelligent Systems*.

United Nations Human Rights Council (2021). *Report on the Impact of Artificial Intelligence on the Enjoyment of Human Rights*.

European Union (2018).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GD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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