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레이션 가설’은 이 세상이 초지능이나 미래 문명이 만든 가상 현실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AI, 메타버스, 양자컴퓨팅 기술의 발전은 시뮬레이션 가설을 점점 더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만들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실재의 본질보다, 인간이 그 안에서 어떤 윤리와 자각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며, 이에 대한 성찰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눈앞에 펼쳐진 이 세계가 ‘진짜’라고 믿는다. 사물은 실제로 존재하고, 감정은 뇌에서 일어나며, 역사는 시간 순서대로 흘러온 사실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전제는 너무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기술은 이 믿음을 조용히 흔들고 있다. AI, 가상현실, 메타버스, 양자컴퓨터 같은 기술들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이 과연 '실제'인지 다시 묻게 되는 시대가 왔다. 그 중심에 바로 ‘시뮬레이션 가설’이 있다. 지금 이 세계가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거대한 시뮬레이션일 수도 있다는 가정이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얘기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 가설은 단순한 SF 상상을 넘어서, 과학과 철학, 종교까지 건드리는 낯설고도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가 가상이라면, 진짜 현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시뮬레이션 가설(Simulation Hypothesis)’이라는 개념은 2000년대 초반,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철학자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에 의해 제기되었다. 당시에는 다소 과격한 주장으로 여겨졌지만, 이후 기술 발전과 철학적 논의가 맞물리며 폭넓은 관심을 끌게 되었다. 보스트롬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이 세계는 실제 물리적 현실이 아니라, 더 높은 수준의 지능체—예컨대 미래 인류나 초지능 AI—가 만든 컴퓨터 시뮬레이션일 수 있다.”
이 가설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조상 시뮬레이션(Ancestor Simulation)’이다. 조상 시뮬레이션이란, 미래에 고도로 발전한 문명이 자신들의 과거 문명을 연구하거나 관찰하기 위해, 과거 인류를 디지털 환경 속에 복제한 가상 실험 시스템을 뜻한다. 이들은 엄청난 컴퓨팅 파워를 통해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인류 문명을 세부적으로 시뮬레이션하며, 그 속의 존재들은 자신이 시뮬레이션 안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보스트롬은 우리가 지금 바로 그 ‘가상 세계’ 안에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을 진지하게 제기한 것이다.
그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세 가지 전제를 제시한다. 다음 중 하나는 반드시 참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전제 1) 인류는 고도로 발전하기 전에 멸망할 것이다.
즉, 인류는 기술적으로 고도화되기 전에 핵전쟁, 기후 재앙, 인공지능 폭주 등으로 자멸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조상 시뮬레이션을 만들 기회조차 사라진다.
(전제 2) 인류가 고도로 발전하더라도, 과거 인류를 복제하는 시뮬레이션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기술은 충분하지만, 과거 인간의 고통이나 의식을 재현하는 것이 비윤리적이라는 판단 아래 실행하지 않는다는 시나리오다.
(전제 3) 어떤 문명은 실제로 조상 시뮬레이션을 만들고 있으며, 그 수는 실세계보다 많을 것이다.
이 경우, ‘현실’에 살고 있는 인간보다 시뮬레이션 안에 존재하는 인간의 수가 훨씬 많아진다. 따라서 통계적으로 봤을 때, 우리가 지금 ‘진짜 현실’에 존재하고 있을 확률은 매우 낮고, 시뮬레이션 안에 있을 확률이 높아진다.
보스트롬은 마지막 가능성—즉, 고도로 발전한 문명이 실제로 수많은 조상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고, 우리가 그중 하나일 가능성—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본다. 그리고 기술 발전의 방향과 속도를 감안할 때, 이러한 시나리오는 점점 더 그럴듯해 보인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며, 이는 현대 철학과 과학기술 윤리 분야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시뮬레이션 가설이 대중적으로 다시 떠오른 계기 중 하나는,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CEO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발언이었다. 그는 한 공개 인터뷰에서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이 세계는, 사실 시뮬레이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말했다.
그의 주장은 단순한 직감이나 음모론이 아니었다. 그는 기술 발전 속도를 근거로 들며, 다음과 같은 논리를 펼쳤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게임 그래픽은 단순한 픽셀 수준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실시간 3D 렌더링으로 사람 얼굴의 주름이나 감정 표현까지 거의 현실과 똑같이 구현할 수 있다. 여기에 AI 기술까지 더해지면, 가상세계 속 인물들이 실제 인간처럼 말하고 반응하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발전 추세를 감안하면, 결국 현실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 시뮬레이션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처럼 보인다. 그리고 만약 미래 문명이 그 정도의 기술력을 갖게 된다면, 그들이 과거의 인류 문명을 정밀하게 복제한 시뮬레이션을 실행해보려 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머스크는 바로 그 지점을 짚은 것이다. 기술이 가능하다면, 결국 누군가는 그 기술을 사용할 것이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현실이 그런 시뮬레이션 중 하나일 수 있다는 논리가 된다.
이 발언은 과학기술계뿐 아니라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시뮬레이션 가설에 대한 관심을 다시금 촉발시켰다. 단순한 철학적 상상이 아니라, 기술 발전에 기반한 실제적 가능성으로 이 이론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시뮬레이션 가설이 가지는 가장 근본적인 충격 중 하나는, 우리가 오래도록 믿어왔던 ‘신’의 개념을 기술적인 관점에서 다시 해석한다는 데 있다.
전통적인 종교에서는 우주와 생명을 창조하고,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전지전능한 존재—곧 신(神)—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시뮬레이션 가설은 이 신적 존재를 ‘프로그램 관리자’ 혹은 ‘상위 지능체’라는 이름의 기술적 주체로 치환한다. 만약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가 하나의 정교한 시뮬레이션이라면, 그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존재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다. 그는 이 가상 우주 안의 모든 법칙과 변수를 설정하고, 생명의 조건마저 코드로 구현해낸 창조자에 가깝다.
그렇다면 그 존재는 사실상 우리가 종교에서 말하는 전능한 신의 지위를 갖는 셈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 프로그래머를 알 수 없고, 어떤 목적이나 기준으로 이 세계를 설계했는지도 전혀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는 그 존재를 초월적 창조주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로써 신학과 과학의 경계가 흐려진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전통적인 설명—즉 신의 섭리나 신성한 창조의 개념—대신, 기술적으로 훨씬 진보한 어떤 존재가 실험을 위해 만든 하나의 시스템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단순한 과학적 추론을 넘어, 철학과 종교에 깊은 충격을 주며, 인간 존재에 대한 관점 자체를 근본부터 흔들어 놓는다.
시뮬레이션 가설을 지지하는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의 여러 이론들, 특히 양자역학이나 빅뱅 이론 같은 우주의 근본 원리를 기술적인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 중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것이 ‘양자 불확정성’이다. 이는 아주 작은 입자 세계에서는 어떤 상태를 확정적으로 예측할 수 없고, 측정하기 전까진 입자의 위치나 속도가 ‘확률적으로만’ 존재한다는 개념이다. 그런데 시뮬레이션 가설의 시각에서는, 이것이 단순한 자연의 속성이 아니라, 고도로 설계된 프로그램 내부에서 일어나는 ‘계산 절약 방식’일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고급 게임 엔진에서는 사용자가 실제로 보거나 상호작용하는 부분만 고화질로 렌더링(rendering)하고, 그 외의 영역은 처리하지 않아 시스템 자원을 아낀다. 일종의 ‘백그라운드 최적화’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가 관측하지 않는 우주의 영역은 아예 ‘계산되지 않고 있다’고 가정해보는 것이다. 양자 불확정성도 ‘시뮬레이션 내부의 난수 처리(randomization)’와 유사하게 해석할 수 있고, 관측이 이루어지는 순간에만 구체적인 상태가 결정된다는 점도 렌더링 방식과 닮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물론 이런 해석은 정통 과학계에서 과학적 증거가 부족한 추측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는다. 양자역학은 수학적 정밀성과 실험적 검증을 바탕으로 수립된 이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뮬레이션 가설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기술을 빗댄 해석’이 하나의 흥미로운 시나리오로 자주 거론된다. 현실 세계의 물리 법칙들이 단지 더 높은 차원의 코드 규칙일 수도 있다는 상상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자연의 질서’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시뮬레이션 가설이 맞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자연법칙과 역사, 심지어 의식이나 감정조차 ‘상위 지능체가 짠 코드’에 불과한 셈이다. 이건 자유의지나 도덕, 우주의 기원에 대한 전통적 인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급진적 결론이다. 사람들이 “이게 진짜냐, 가짜냐”라는 문제에 집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만약 우리가 시뮬레이션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현실이라 믿어온 모든 규범과 가치관이 허무해질 수도 있다는 불안이 따른다.
물론 대부분 주류 과학자는 이 가설을 흥미로운 지적 유희로 치부하고, 실증적인 증거가 부족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AI·가상현실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머지않아 우리도 과거 인류를 완벽히 재현하는 시뮬레이션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뒷받침한다. 거기서 거꾸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상위 문명이 만든 시나리오일 수 있다고 연결되는 논리는, 계속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양자물리학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 도전장을 내민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모든 것이 연속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흐른다고 보았지만, 양자 수준에서는 전혀 다른 법칙이 적용된다. 입자는 특정한 위치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관측하기 전까지는 여러 상태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으며, 정확한 속도와 위치를 동시에 알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양자 현상은 일부 과학자들에게 또 다른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가 사실은 연속적인 물질이 아니라, 디지털 정보로 구성된 ‘픽셀화된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실제로는 모든 것이 매끄럽고 연속적으로 보이지만, 극단적으로 미세한 수준에서는 현실이 아주 작은 단위의 정보 덩어리, 즉 ‘양자 비트(quantum bits)’처럼 조각난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추측이다. 이는 마치 고해상도 디지털 화면이 사실 수많은 점(pixel)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의 이미지로 보이는 것과 비슷한 논리다.
이런 관점은 곧 “현실도 컴퓨터 그래픽처럼 렌더링(rendering)되는 것 아닐까?”라는 시뮬레이션 가설과 연결된다. 즉, 세계는 관측되는 순간에만 구체적으로 구현되며, 나머지는 계산을 생략한 채 잠재적 상태로 남아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컴퓨터가 사용자 시점에 따라 화면을 실시간으로 그려내듯이, 우리 현실 역시 어떤 상위 시스템이 필요한 부분만 ‘업데이트’하고 있을 수 있다는 상상은, 물리학과 시뮬레이션 이론을 하나로 묶는 흥미로운 가설이 된다.
우주의 팽창, 암흑물질, 암흑에너지와 같은 우주론적 난제들은, 시뮬레이션 가설 지지자들에게 종종 다른 방식으로 해석된다. 이들은 “아직 구현되지 않은 코드의 빈 영역”이나 “시스템 내부의 버그”처럼, 프로그램 내부의 불완전성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우리가 관측하는 우주의 많은 부분이 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거나, 존재만 추정될 뿐 실체가 불분명한 상태인 점은, 시뮬레이션 가설과 흥미로운 접점을 만든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과학적 근거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주류 과학계에서는 채택되지 않는다. 빅뱅 이론, 우주 팽창 속도, 암흑물질의 분포 등은 나름의 수학적 모델과 관측 데이터를 통해 설명되기 때문이다. 시뮬레이션 가설이 제시하는 해석은 대부분 경험적 검증이 불가능하며, 정설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이론물리학자들은 이 가설을 단순한 허구로 치부하긴 어렵다고 말한다. ‘매트릭스’와 같은 가상의 설정을 염두에 두고,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이 코드로 생성된 구조일 가능성 자체를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과학이 아직 설명하지 못한 세계의 구조를 향한 물음 속에서, 시뮬레이션 가설은 하나의 가설적 사고 실험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거물급 이론물리학자들이 공식적으로 “시뮬레이션 가설이 맞다”라고 주장하는 사례는 드물다. 하지만 실험물리나 우주론 연구 과정에서, “만약 이 세계가 완벽히 자연적인 진화 결과라면, 왜 이런 특정 상수(예 : 미세조정된 우주 상수)가 존재하는가?” 같은 의문이 나올 때, 시뮬레이션 가설이 재미있는 설명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이 때문에 SF 같지만 학계도 가볍게는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결론적으론 증명이나 반증 방법이 마땅치 않아, 이론단계에서 머물고 있다.
비판자들은 시뮬레이션 가설이 검증 불가능하므로 ‘가설’로서 과학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모든 관측 결과가 단지 상위 시뮬레이션의 의도라면, 우린 절대로 참·거짓을 판별 못 할 것”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론물리·양자물리가 시뮬레이션론을 지지한다기보다, 아직 해결 못한 난제를 향해 “혹시 이게 시뮬레이션의 흔적일까?”라는 가벼운 상상을 던지는 수준이라는 해석이 많다.
그럼에도 시뮬레이션 가설이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이유는, 미지의 우주와 실재(Reality)에 대한 인간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점 때문이다. 설령 SF 같아 보여도, “혹시 모를 가능성”을 열어두고 토론하는 것이 과학의 일부라고 보는 태도가 존재한다.
만약 이 세계가 시뮬레이션이라면, “내가 쌓아온 경험과 기억, 감정마저 가상 설계물이라면, 인생의 의미는 어디서 찾나?”라는 물음이 따라온다. 내가 깨달았던 도덕이나 가치관도, 사실은 상위 시스템에서 코딩된 알고리즘에 불과할 수 있다. 이건 허무주의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세상이 게임 시나리오라면, 내가 하는 고통과 노력은 무슨 소용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하기 쉽다.
동시에, 시뮬레이션 가설이 맞다면, “나는 이 안에서 어떠한 존재의 목적을 수행하고 있을까?”라는 역설적 질문으로 역동성을 얻을 수도 있다. 즉, “상위 문명을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로서 내가 그들의 실험을 돕는다는 시나리오도 상상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근본적 존재 의미가 다시금 뒤집힌다.
일부 시뮬레이션론 지지자들은, 우리가 속한 세계를 만든 주체가 상위 문명이 아니라, 고도로 진화한 인공지능(AI)일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 가설은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따른다.
인류가 AI를 개발한 이후, 어느 시점에서 초지능(Superintelligence)이 등장했고, 그 AI가 인간 문명을 넘어서는 미래 사회를 구축했으며, 과거 인류의 역사를 복제하는 테스트 시뮬레이션을 가동하고 있다는 설정이다. 즉,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초지능 AI가 과거 인간사회를 분석하거나 실험하기 위해 만든 디지털 시뮬레이션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때 인간은 더 이상 세계의 중심적 주체가 아니며, 그 자체로 관찰 대상이자 실험 매개로 존재한다.
이 가설은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인간이 실존하는 개별 주체가 아니라 AI에 의해 유지되는 정보 단위이자, 데이터의 흐름 속에서 통제·관찰되는 대상이라는 설정과 맞닿아 있다. 요컨대, 현실은 인간이 구축한 것이 아니라, AI가 설계한 세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기존 종교적 개념으로 보면, 신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고, 인간은 그 신성의 일부 혹은 피조물로서 도덕을 실천해야 한다. 반면 시뮬레이션 가설에서 “신”은 고등 지능체나 초지능 AI 개발자다. 우리가 그들의 시스템 안에서 돌고 있는 테스트베드라면, 종교와 윤리를 어떻게 봐야 할까? 만약 상위 존재가 ‘폭력’이나 ‘전쟁’을 의도적으로 설계했고, 우리 행동을 관찰하는 중이라면, 인류가 가지는 선악 관념도 전혀 다른 해석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상상을 뛰어넘으려면, 시뮬레이션임을 확인할 물리적·수학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 “시뮬레이션의 경계나 오류를 찾을 수 있다면?”이라는 아이디어가 종종 언급되지만, 실현은 쉽지 않다. 상위 지능체가 불완전한 코드를 남겼다면, 우리가 우주 구석에서 ‘버그’를 발견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가정일 뿐이다. 증명 불가능성이 시뮬레이션 가설의 가장 큰 한계이자, 동시에 흥미를 높이는 이유가 된다.
결국 시뮬레이션 가설이 우리 현실을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볼 수 없지만, “내가 정말 자유롭게 결정하고 있는가?”를 재고해보게 만드는 충격은 확실하다. AI가 만든 가상세계라면,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은 이미 ‘설정값’에 불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건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낳지만, 역으로 “이 가설을 의식하고 살아갈 때, 인생에 대한 관점이 바뀔 수 있다”는 철학적 함의도 지닌다. “혹시 모를 시뮬레이션이라도, 의미를 발견하는 건 나 자신”이라는 식의 실존주의적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뮬레이션 가설이 거대 담론이라면, 좀 더 일상적인 차원에서도 가상세계와 현실이 섞이는 현상이 나타난다. AR(증강현실) 기기를 착용하면 현실 풍경 위로 디지털 정보가 겹쳐 보이고, 메타버스 플랫폼이 현실 지리 정보를 기반으로 가상 지도를 생성해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현실 도시의 어느 지역에 AR 몬스터가 숨어 있고, 사용자가 스마트폰으로 주변 풍경을 비추면 그 몬스터가 ‘보이는’ 식이다. 이렇게 가상의 정보가 현실 공간에 오버레이되는 패턴이 늘어나면, 사용자는 “지금 보고 있는 게 진짜 물리적 물건인가, 디지털 가상체인가”를 헷갈리게 될 수도 있다.
포켓몬GO나 비슷한 AR 게임들이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사례를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가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현실에서 ‘진지하게’ 체감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곳에선 포켓몬이 나온다”는 정보만으로 사람들이 특정 공원에 몰려가는 식이다. 나아가 5G·6G 통신 기술과 경량형 AR 글래스가 보편화된다면, 가상의 개체가 현실 배경 위에 늘 떠다니는 풍경이 일상화될 수 있다. 이로써 시뮬레이션적 요소가 일상과 융합되고, “현실 자체가 가상 정보를 일부 품고 있거나, 사람들은 그걸 자연스럽게 수용한다”는 시대가 눈앞에 다가온다.
혼합현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우리가 경험하는 대상이 실제 물리적 사물인지, 아니면 가상 정보가 덧씌워진 결과인지를 구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과거에는 게임이나 영화 같은 특정 환경에서만 등장하던 시뮬레이션 요소가, 이제는 일상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예를 들어, 거리의 간판이나 안내 표지, 사람의 얼굴조차 AR 필터나 증강 정보에 의해 다르게 보이는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다. 사용자는 스마트폰이나 AR 기기를 통해 물리 세계를 관찰하지만, 그 위에 실시간으로 다양한 가상 요소가 겹쳐지며 새로운 형태의 ‘현실’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물리적 실재와 디지털 정보가 끊임없이 결합되는 환경—즉 혼합 현실(Hybrid Reality)—이 일상화되면, 인간은 더 이상 “이것이 진짜인가?”라는 질문보다 “진짜와 가상의 구분이 과연 본질적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가상과 현실이 뚜렷이 나뉘지 않는 조건에서, '실재'라는 개념 자체가 상대화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과학적 관점에서 의식은 주로 뇌의 신경망 활동으로 설명된다. 수십억 개의 뉴런이 전기적·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며 연결망을 형성하고, 이 과정에서 자각, 감정, 사고와 같은 의식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 대표적인 이론이다. 딥러닝 등 인공지능 기술도 이 구조를 모방하여 인간의 뇌 기능을 모델링하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의식이란 무엇인가’라는 핵심적인 물음은 여전히 명확한 해답이 없는 상태다.
전류가 흐른다고 해서 반드시 ‘자각’이나 ‘느낌’이 생기는 것은 아니며, 왜 특정한 뇌 구조에서 주관적 체험(qualia)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과학적으로도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 의식은 여전히 뇌과학과 인지과학의 경계에서 풀리지 않은 미지의 현상으로 남아 있으며, 물질적 설명만으로 접근하기에는 결정적인 해석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종교나 영성에서는 의식을 단순한 뇌 작용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의식은 영혼과 연결된 본질적인 무언가라고 해석한다. 뇌와 같은 물질을 넘어서 존재하며, 과학의 도구로는 설명하거나 측정할 수 없는 차원이라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불교에서는 ‘마음’이라는 개념으로, 기독교나 이슬람에서는 신과 연결된 영적인 세계로 설명한다. 이들은 의식을 인간 내부에 자리한 특별한 정신적 실체로 보고, 물리적인 구조만으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인공지능이 아무리 복잡한 연산과 학습을 하더라도, 진짜 의식을 가질 수는 없다고 본다. 계산과 반응은 가능하지만, 스스로를 인식하고 느끼는 자각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에 반해, 공상과학(SF)이나 일부 기술 낙관론자들은 인공지능도 언젠가는 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은 AI가 복잡한 신경망 구조를 바탕으로, 방대한 데이터를 반복 학습하면서 점점 더 정교한 판단과 반응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러한 흐름이 계속된다면, 결국 AI가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감정과 유사한 반응을 보이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인공 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태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 관점이 옳다면, 의식은 반드시 영적인 것이거나 생물학적인 뉴런 구조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복잡한 정보 처리 시스템 안에서도 자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설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시뮬레이션론을 염두에 두면,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의식이 고등 지능체(혹은 AI)가 설정해놓은 파라미터에 의해 발생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뇌’가 사실은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시뮬레이션 코드에서 구현된 한 영역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 우리의 주관적 체험도 단순히 처리 장치가 만들어낸 가상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처럼 의식 문제는 어느 관점(뇌과학·영적·AI·시뮬레이션)을 취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아직 합의된 정답이 없다. 다만 확실한 건, AI 시대가 되면서 “기계가 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인간 의식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점점 더 구체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현실의 본질보다,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사르트르와 카뮈는 대표적으로 “인간은 무의미한 세계에 던져진 존재이며,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점은 시뮬레이션 가설과도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 만약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실제든 가상이든, 그 안에서 겪는 고통과 희망, 선택과 책임은 여전히 현실적인 체험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동시에, 시뮬레이션 가설은 전혀 다른 방향의 사고도 허용한다.
“이 모든 것이 사전에 설정된 프로그램이라면, 내가 하는 선택과 행동에 과연 진정한 책임이 있는가?” 이 질문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도덕적 판단까지도 흔들 수 있다. 실제든 가상이든 상관없다는 입장은 실존적 낙관을 가능하게 만들지만, 반대로 “모든 것이 허구라면 애써 살아갈 이유가 있나”라는 냉소적 회의로도 이어진다.
이처럼 시뮬레이션 가설은 단순한 과학 이론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불러오며, 그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와 무의미를 인식하는 태도 사이의 긴장을 만든다. 이 양면성은 오늘날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진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더 자주 드러나고 있다.
이런 실존적 불안에 대해,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반응한다. 누군가는 “현실이 무엇이든, 결국 의미는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라는 입장을 취하며, 실존주의 철학이 강조한 자율성과 주체성에 기대어 삶을 설계한다.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이 모든 것이 결국 가짜라면, 무엇을 해도 소용없다”는 태도를 취하며, 무기력이나 허무주의(니힐리즘)로 빠지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현실의 구조가 실제인지 여부보다,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떤 판단과 태도로 살아가는지를 결정하는 문제다. 시뮬레이션 가설이 맞든 아니든, 이 가설이 인간에게 던지는 불안은 현실의 무게만큼이나 크다. 그리고 그 불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정신적 건강과 삶의 만족도, 방향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시뮬레이션 가설은 단순한 철학적 흥밋거리를 넘어, 현대인의 심리와 존재론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주제로 확장되고 있다. 심리학, 철학, 인지과학 분야에서 이 가설이 자주 인용되는 이유 역시, 인간 스스로가 처한 환경과 정체성을 재정의하려는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시뮬레이션 가설은 반드시 비관적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만약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고도로 설계된 시뮬레이션이라면, 그 구조와 규칙을 인간이 역으로 해석하거나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상상도 가능해진다. 일종의 ‘코드 수정’ 가능성이다.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읽고 조작하는 방식 또한 기술적으로 열릴 수 있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해 흔히 언급되는 개념이 '매트릭스 깨기(Glitch in the Matrix)'이다. 시뮬레이션 안에서 예상되지 않은 오류나 반복, 불연속적 사건을 통해 상위 시스템의 구조를 인지하거나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상상된다. 여기서 나아가, 단순히 구조를 인식하는 것을 넘어, 그 시스템을 바꾸고 재설계할 수 있다는 관점이 등장한다.
이런 발상은 '창조적 전복(creative subversion)'으로 불린다. 즉, 주어진 현실의 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틀을 분석하고 해체하며, 새로운 질서를 자율적으로 구성하는 시도다. 만약 의식도 코드라면, 우리는 그 코드 위에서 다시 한 번 의식의 진화를 실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시뮬레이션 가설은 단순한 외부 설정이 아니라, 인간 내부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모델로 기능하게 된다.
시뮬레이션 가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더 본질적인 의미는, 이 가설이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도 당연하게 믿어왔던 ‘현실’의 틀을 흔든다는 점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해온 일들, 눈에 보이는 물질, 사회의 규칙, 자연 법칙 등이 절대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만약 이 세계가 상위 존재의 설정이나 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시뮬레이션이라면,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 예를 들어 시간, 공간, 물리 법칙 조차도 고정된 진리가 아니라 수정 가능한 조건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사람들은 기존의 상식에서 벗어나 더 열린 사고와 상상력을 시도하게 된다.
이런 발상은 과학과 예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물리 법칙이 절대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은 새로운 과학적 질문을 가능하게 만들고, 현실의 제약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예술에서도, 우리가 느끼는 감각과 경험이 구성된 것이라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창조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넓어진다. 이처럼 시뮬레이션 가설은 세계를 해석하는 틀을 확장시키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또한 이런 이론 가설을 접하면, 스스로를 “이 거대한 시뮬레이션 속 한 점”이라 보며 겸손해질 수 있고, 동시에 “나도 코드를 바꿀 수 있다면?”이라는 대담한 상상을 할 수 있다. 이 두 태도가 함께 작동할 때, 인간은 “자기객관화를 통해 오만을 버리면서도, 우주적 상상력을 발휘해 혁신을 꾀한다”는 패턴을 보일 수 있다. 그 결과, 시뮬레이션론은 우리가 존재를 재해석하고 창의력을 폭발시키는 정신적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일부 과학소설·철학적 에세이는 “인류가 초지능 AI를 개발하면, 결국 우리도 과거 역사를 시뮬레이션할 때가 오지 않겠느냐”는 미래 시나리오를 즐겨 다룬다. 우리가 ‘상위 문명’이 되어 거꾸로 ‘하위 시뮬레이션 우주’를 만들고, 그 속에 또 다른 존재들이 살아가게 된다면, 시뮬레이션이 무한 중첩되는 가능성도 상상된다. 이런 일련의 상상은 현실적 증거가 없어도, 인간의 우주관·미래관에 큰 자유도를 부여하는 의미가 있다. 결국, 시뮬레이션 가설을 통해 우리는 “더 커다란 가능성 속에 살고 있다”고 느끼게 되고, 그것이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
과거엔 물질적·감각적으로 인식되는 세계가 곧 현실이고, 인간이 체험하는 오감과 과학적 측정이 그 증거라는 관점이 일반적이었다. ‘실재(Reality)’란 변하지 않으며, 환영이나 꿈, 가상은 그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만든 가상·혼합 현실이 확대되고, 시뮬레이션 가설이 부상하면서, 현실의 기준이 모호해졌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물질 세계’가 어디까지 실제인지, 혹은 가상의 정보가 어느 정도로 생활에 영향력을 주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게 됐다.
고대부터 철학자들은 ‘현실이란 무엇인가’를 두고 서로 다른 입장을 제시해 왔다. 경험주의는 감각을 통해 얻는 경험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보았고, 관념론은 우리 마음이나 의식이 현실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현대에 들어서는 사회적 구성주의라는 입장이 등장했는데, 이 이론은 현실이란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합의나 언어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즉, 현실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관점이다.
오늘날 AI, 메타버스, 시뮬레이션 가설처럼 기술과 연결된 개념들이 등장하면서, 이런 생각은 더 널리 퍼지고 있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도 사회와 문화, 기술적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바뀔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시뮬레이션 가설을 믿든 믿지 않든, “절대적인 현실이란 것이 정말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현실이란 단일한 실체라기보다는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진 어떤 틀에 가깝다고 본다.
시뮬레이션 가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확고한 실재라고 믿는 것도 “더 높은 차원의 가상공간”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물질 법칙과 시간·공간 개념조차 거짓이며, 상위 지능체가 설계한 규칙일 뿐이다. 이런 논리에선 ‘현실’이 단지 가상의 한 레이어가 되고, 우리가 감각하는 모든 건 “강력한 시뮬레이션 툴에 의해 생성된 데이터”가 된다.
이쯤 되면 “현실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단순 논쟁이 아닌 ‘인간 실존과 가치관의 근본’을 좌우한다. 물질세계가 안정된 실체인지, 혹은 소프트웨어가 렌더링한 결과물인지 확언할 수 없다면, 우리가 참조하는 과학·역사·문화 전부가 불안정해진다.
“현실을 무엇으로 규정하느냐”는,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할 때 개인의 인식론적 선택에 의존하게 된다. 어떤 이는 “검증되지 않으므로 현실은 존재한다”라고 굳건히 믿고, 다른 이는 “시뮬레이션일 수도 있으니, 확정 못 한다”라고 중간 입장을 취한다. 또 누군가는 “시뮬레이션이라도 내겐 중요치 않다. 내가 경험하는 고통과 기쁨은 진짜”라며 실존적 태도를 견지한다.
현대 기술·사회 흐름을 보면, 현실이라 여겨온 것이 가상과 융합되고, 동시에 “혹시 이것도 가짜가 아닌가?”라는 의문을 안고 가는 시대에 접어든 게 분명하다. 정체성, 윤리, 가치관 모두 이 모호한 환경에서 재정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시뮬레이션 가설이 맞든 아니든, 인간은 각자 ‘내가 속한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결정하며 살아가야 한다. 예전처럼 ‘이건 절대적 진실이고, 저건 환상’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 도래했다.
이는 근본적으로 인간 실존을 다시 묻고, 가치 체계를 업데이트하라는 시대적 요구일 수 있다. 어쩌면 우린 시뮬레이션 가설이 그저 SF 상상이라고 치부하면서도, 이미 실제 생활 속에서 ‘가상+현실’을 뒤섞는 초현실적 환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9장에서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 “우리는 어떤 현실을 선택하고, 어디까지 의심하며, 그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만들어낼 것인가?”
※ 참고문헌(이 글의 개념과 논의는 아래 책들을 발췌 또는 요약을 통해 참고하여 재해석해 구성했습니다.)
Nick Bostrom (2014). *Superintelligence: Paths, Dangers, Strategies*. Oxford University Press.
Shoshana Zuboff (2019). *The Age of Surveillance Capitalism*. PublicAffairs.
Nick Srnicek (2017). *Platform Capitalism*. Polity Press.
IEEE (2019). *Ethically Aligned Design: A Vision for Prioritizing Human Well-being with Autonomous and Intelligent Systems*.
United Nations Human Rights Council (2021). *Report on the Impact of Artificial Intelligence on the Enjoyment of Human Rights*.
European Union (2018).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GDP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