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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둘째 아들은 그녀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첫째 아들에게 가져다주려고 모아 놓았던 검은 비닐봉지를 뒤졌다. 그 속에 든 과자와 음료수를 멋대로 꺼내 먹어 치웠다. 그리고 그녀에게 돈을 달라고 했다.
김 할머니는 아들의 손에 지폐를 한 장씩 쥐어 주게 되었다. 천 원짜리가 대부분이었지만 가끔 만 원짜리도 있었다. 아들은 그제야 다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녀를 내버려 두고 밖으로 나갔다. 밤늦게 술에 취해 다시 돌아와 멋대로 아무 곳에 드러누워 잠이 들었다.
세월이 조금 더 흘렀다. 김 할머니는 여전히 리어카를 끌 수 있었다. 다만 나날이 힘에 부쳤다.
평범한 아침이었다. 최근 몇 달 사이에 둘째 아들의 건강이 많이 나빠진 것 같았다. 얼굴이 퉁퉁 부었다. 피부가 누르스름하게 변했다.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었고 밥을 잘 먹지 못했다. 배가 조금 나온 것 같기도 했다.
그의 아침밥을 챙겨놓고 늘 그렇듯 외출준비를 서둘렀다. 둘째 아들이 말을 걸었다. ‘엄마, 오늘 안 나가면 안 돼?’
김 할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들의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부어 있는 것 같았다. 자신보다 어린데도 벌써 앞니가 하나 빠지고 없었다. 아무리 미운 자식이었지만 볼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무튼 오늘은 좀 바빴다.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을 찾고 공과금을 납부하기 위해 은행에도 꼭 들러야 한다. 금방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려는데 이상하게 멈칫했다. 뒤를 돌아보니 아들이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늘 보는 얼굴이다. 아들도 이제 나이를 제법 먹은 티가 났다. 그래도 내 자식이다. 지 아비를 닮았든 아니든.
‘뭐 좀 사다 줄까?’
김 할머니가 물었다. 아들은 고개를 저었다. 뒤돌아 현관문 손잡이를 당겼다. 오늘 오는 길에 삼겹살이나 좀 사 와야겠다, 그녀는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들이 쓰러져 있었다.
119 대원들이 그를 병원으로 옮겼다. 응급실에서 간단한 검사를 받았다. 당직 의사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가 다른 의사들을 불러 모았다.
간암 말기였다.
8.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다.
둘째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할 수 없다.
김 할머니는 아들의 영정 사진을 장롱 깊숙한 곳에 밀어 넣었다.
9.
김 할머니는 여전히 리어카를 끌고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그녀의 둘째 아들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자살을 했다고도 했다. 누군가 그녀에게 아들의 소식을 물었다.
‘우리 아들 둘 다 미국 갔어.’
잔인한 농담이 뒤따랐다. ‘할매요, 할매는 미국 가봤는교?’
김 할머니는 못 들은 척 지나쳤다.
10.
어느 날 김 할머니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방송국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들은 김 할머니의 사연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그들은 몇 번 다시 찾아왔다. 그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김 할머니의 삶이 하나의 기록으로 담기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든 몇몇 사람들이 그녀의 하루를 관찰하며 따라다녔다. 누군가 옆에서 무엇을 부지런히 적어댔다. 김 할머니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김 할머니의 ‘고급 빌라’도 구경하고 싶어 했다. 처음엔 약간 망설였다. 그러나 김 할머니는 자랑스럽게 빌라 문을 열어 주었다. 모두들 놀라워했다. 뿌듯했다.
김 할머니는 약간 신이 났다.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자기 아들들은 둘 다 미국에 갔다고 말했다. 이곳은 내 큰아들을 위해 마련한 신혼집이다, 이 그릇들은 내가 며느라기를 위해서 마련한 신혼살림이다. 나는 가난한 집 여식이라 시집가서 고생을 엄청나게 했다, 자신은 절대 같은 시어머니가 되지 않으려고 이것들을 마련했다면서.
방송국에서 나온 사람들이 돌아갔다. 이후로 며칠 뒤에 그들이 다시 김 할머니를 찾았다. 이번에는 손님이 더 늘었다. 그가 자신의 직업을 의사라고 소개했다. 그는 김 할머니와 조금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청했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녀는 이제 리어카를 끄는 것이 나날이 힘들었고 방송국에서 건넨 봉투 안에 들어 있던 현금은 제법 액수가 컸다.
그들은 김 할머니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자신의 아들과 닮은 듯 다른 하얀색 옷을 입은 의사가 김 할머니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대화가 오고 갔다. 의사는 무엇인가 기록으로 남기고 자판을 두들겼다.
약 봉투를 하나 받아 들고 김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이 말했다. 꼭 이 약을 먹어야 한다고. 이 약을 먹어야 할머니는 건강도 되찾고 아들과 다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김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떤가 공짜인데. 먹고 죽기야 할까.
11.
김 할머니는 병원에서 준 약을 부지런히 먹었다. 한 달 뒤 병원을 다시 찾았다. 의사가 또 약을 한 달 치 더 주었다.
그녀는 더 이상 폐지를 줍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지 못했다. 하루 종일 잠이 쏟아졌다. 그 동시에 어디선가 마음 깊이 슬픈 생각이 밀려왔다. 고통스러웠다. 이 약을 먹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해진다고 의사가 말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미국 간 아들에게 전화를 할까? 잠깐 전화번호가 몇 번이더라, 아니 내 아들이 미국에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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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할머니는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았다. 병원에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 남아 있던 약도 전부 버렸다. 그리고 다시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줍기 위해 거리로 다시 나왔다. 마음이 편했다. 미국에 간 내 아들들도 나의 결정을 옳다고 생각하겠지. 아무튼 의사 놈들, 그저 약이나 팔아 처먹을 궁리를 한다니깐.
첫째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기뻤다. 왜 미국에서 돌아온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그런 말은 캐묻지 않았다. 아무튼 집으로 오고 싶다고 했다. 아들과 다시 살아갈 수 있다. 사랑하는 내 첫째 아들, 나의 희망.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 맞춰 그녀는 삼겹살을 좀 샀다. 첫째가 가장 좋아했고 둘째도 좋아했던 음식. 그러나 둘째 아들이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는 이것을 사 먹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둘째 아들? 내가 둘째 아들이 있었나?
아무튼 김 할머니는 간만에 큰마음을 먹었다. 묵직한 검은 봉지를 받아 들고 집에 돌아왔다. 싱크대 위에 그것을 펼쳤다. 생각보다 양이 많은 것 같았다. 잠시 망설였다. 이것을 조금 남겨 놓을까?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이것을 아껴 국을 끓이면 일주일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들이 학교 갔다 오면 출출할 테니까 미리 국을 좀 끓여 놓아야지. 큰아이는 지금 사법고시를 준비 중이니까 영양 보충을 좀 시켜야겠다.
12.
첫째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김 할머니는 반갑게 맞이했다.
‘학교 갔다 이제 왔구나. 내 고기도 구워놓고 국도 끓여 놨다. 빨리 밥 묵고 도서관 가라.’
김 할머니를 바라보는 아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아들은 들고 온 여행 가방을 옆에 내려놓았다. 그는 김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김 할머니는 영문을 몰랐다. ‘다 큰 자식이 와 우노. 와, 니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나?’
13.
세월이 더 흘렀다. 김 할머니는 이제 정말 리어카를 더는 끌 수 없었다. 아들도 그녀를 말렸다. 그러나 김 할머니는 대답도 하지 않고 멋대로 밖에 나갔다. 어디 가서 작은 손수레를 끌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장바구니 대신 쓰는 자그마한 철제 손수레였다.
김 할머니는 이제 그것을 끌고 외출을 했다. 그의 아들이 그녀와 종종 동행했다. 아들이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둘이 지나가는 것을 본 시장 상인들이 말을 걸었다.
‘어머, 김 할머니요, 아들이 미국에서 왔는가베요?’
김 할머니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응. 우리 아들 이제 곧 결혼할 거야. 이제 같이 가서 신혼집 보여주려고.’
상인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그녀의 곁에 선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들은 쑥스럽게 웃었다. ‘하이고, 니 니네 어무이한테 잘 하그라.’ 상인들은 딱하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씩 했다. 결혼은 무슨, 상인들도 알고 당연히 그도 알았다.
14.
김 할머니는 이제 리어카가 아니라 손수레를 끌고 시장을 돌아다녔다. 손수레에는 예전만큼 많은 폐지를 실을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힘겨웠고 그녀에게 벅찼다.
‘하이고 할매요, 그 집 좀 팔아 뿌리지.’
누군가 옆에서 거든다.
‘할매 아들 미국서 다 돌아왔다믄서요? 아들 보고 이제 할매 좀 책임지라 카이소.’
김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불쑥 대꾸한다.
‘신혼집을 우얘 파노. 우리 아들 며느리 이제 거기서 곧 살끼라. 좀 있으면 손주도 하나 태어날낀데.’
상인들은 할 말을 잃고 김 할머니를 쳐다본다. 누군가는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훔친다. 누군가는 모른 체한다. 누군가는 말없이 그녀에게 음료수를 한 병 건넨다. 그녀를 중심으로 공기가 가라앉는다.
김 할머니는 이제 아들을 위해 폐지를 줍는 것이 아니다. 그의 아들은 미국에서 무사히 돌아왔다. 며느리는 그녀를 잘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손주가 곧 태어날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김 할머니는 기꺼이 아기를 돌봐 줄 참이었다. 아이가 자라면 과자도 사 주고, 같이 손을 잡고 시장 구경도 시켜 주고 해야지. 그녀는 작은 손수레를 다시 고쳐 움켜쥐었다. 리어카는 이제 힘들다. 그래서 이것도 리어카나 마찬가지다.
15.
세월이 조금 더 흘렀다.
그녀의 아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이제는 가야 할 곳이 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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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할머니는 이제 정말 손수레도 끌 수 없을 만큼 나이가 들었다. 그의 첫째 아들은 작은 회사에 일자리를 구했다. 낮에는 요양 보호사가 와서 그녀 대신 살림을 좀 거들었다.
그녀의 정신은 점차 그녀의 육신처럼 하루하루 희미해져 갔다. 어느 날 그녀가 사라졌다.
회사에 있는 그의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경찰서였다.
김 할머니는 놀이터에 혼자 앉아 있었다고 했다. 어떤 아이 엄마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그 놀이터를 찾았다. 둘은 같이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아이 엄마는 화장실이 급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김 할머니에게 잠시 아이를 봐 달라고 했단다.
그런데 김 할머니가 아이 손을 잡고 사라졌다. 아이 엄마가 난리가 났다.
둘은 그 놀이터에서 조금 떨어진 주차장에서 발견되었다.
경찰은 아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CCTV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절대 어머니를 혼자 내보내지 말라고 말했다. 아들은 거듭 고개 숙여 죄송하다고 말했다. 몇 시간 후에 둘은 경찰서를 나올 수 있었다.
아들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온 김 할머니는 그를 나무랐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고, 자꾸 늙은 애미 곁에서 시간 보내지 말라고. 나중에 원망 사지 말고 처한테 잘해야 한다고. 그리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면서.
첫째 아들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웃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자기 아내는 마음이 곱고 착해서 그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대꾸했다.
김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래, 며느라기가 참 착하고 곱다고, 손주 녀석 과자 좀 사 줄 걸 돈을 안 갖고 나왔다고 중얼중얼했다.
16.
어느 날 직장에서 돌아온 그의 아들이 말했다. 할머니의 ‘고급 빌라’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신혼집은 자기 내외가 살기에는 너무 크고 비싸니까 그것을 팔아 우리 같이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자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자리에 누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너한테 해줄 게 그것뿐이 없다. 그 집은 꼭 갖고 있어래이.’
김 할머니는 나날이 쇠약해졌다. 이제 그녀는 아들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가끔 헛소리를 했고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흐린 눈을 하고 때때로 중얼거렸다.
‘내 아들, 내 아들, 그날 집에 있어야 했는데.’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나지 않아 김 할머니는 눈을 감았다. 그녀의 아들은 이제 그 작은 임대 아파트에 홀로 남겨졌다.
그는 종종 자신의 어머니가 리어카를 끌고 돌아다녔던 그 시장을 찾았다. 남자 혼자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반찬을 조금 사고 과일 따위를 조금 샀다. 상인들이 알아보면 인사를 꾸벅했다. 누군가 그에게 다른 가족은 혹시 없냐고 혼자 지내기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그는 쓸쓸히 웃으며 대답했다.
‘힘들면 미국 가야지요, 뭐.’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고요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몇 개월 뒤 그가 자신의 빌라를 부동산에 매물로 내놓았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것이 팔렸다는 이야기도 뒤따랐다. 그 이후로 더는 그 누구도 그의 소식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