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 전부처럼 보였지만, 전부일 리 없는.
처음부터 완벽했다.
데뷔곡이 본토 아티스트와의 협업이었고,
목소리는 낯설 만큼 차가웠으며,
사운드는 국내 어느 R&B와도 닮아 있지 않았다.
그의 등장은 신인의 시작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하나의 ‘장르’처럼 보였다.
너무 감각적이고, 너무 정제된 사운드.
그 어떤 흐름에도 기대지 않고도
모든 걸 다 갖춘 사람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 완성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갑작스레 멈췄고,
질문만 남긴 채 사라지다시피 했다.
’Portraits‘ 세 번째 주인공, 딘.
이 글은 그의 정점에 관한 기록이 아니다.
그가 왜 그렇게 충격적으로 등장했고,
왜 아직도 그 이름이 유효한지를 되짚어보려는 시도다.
2016년 3월, 딘은 데뷔 EP “130 mood : TRBL”을 발매한다.
일곱 트랙. 그 짧은 러닝타임 안에 그는 자신이 어떤 아티스트인지를 정확하게 설계해 낸다.
이건 시작을 알리는 소개장이 아니었다.
정점처럼 보이는 하나의 완결이었다.
보컬은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고, 오히려 공간을 남긴 채 부유한다.
비트는 R&B에 기반하지만, 명확한 트랩 요소를 품고 있으며,
후렴은 선율보다 톤으로 기억된다.
전통적인 구조가 아니라, 감각 중심으로 설계된 음악.
그건 국내 대중음악 씬에서는 유례가 드문 방식이었다.
“풀어”에선 취한 듯 낮게 깔린 딘의 톤과
느슨하고도 타이트한 지코의 랩이 맞물린다.
잔뜩 여유로운 무드 속에서,
딘은 보컬로 끌고 가지 않고 공간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곡을 지배한다.
“What 2 Do”에선 크러쉬, 제프 버넷과 함께한 구성임에도
가장 선명하게 남는 건 딘의 미끄러지는 보컬과 간결한 훅이다.
그리고 “Bonnie & Clyde”는 확실한 리듬이 없이도
딘이라는 사람이 곡 전체를 어떻게 장악하는지를 보여주는 곡이다.
그는 한 장의 EP로
자신의 목소리, 프로덕션 감각, 감정선의 리듬까지
모두 구축해 버렸다.
당시 한국 R&B가 감성 중심의 보컬, 발라드적 서사 구조를 따르고 있었다면,
딘은 사운드의 조율과 여백, 그리고 질감으로 감정을 조형하는 방식이었다.
“130 mood : TRBL”은 정규 앨범이 아니었지만,
당시 누구보다 완성된 구조를 갖춘 하나의 세계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다음을 기대했지만,
아직까지 그의 앨범단위 작업물은 발표되지 않았다.
EP “130 mood : TRBL” 이후, 그는 몇 곡의 싱글을 발표했다.
그중 “instagram”과 팬시차일드 활동은
대중과 매니아층 모두에게 고르게 호평을 받았고,
딘의 음악은 그만큼 더 넓은 청중에게 도달했다.
그러나 2019년 5월 31일, “Howlin’ 404”를 마지막으로
그는 2023년까지 긴 시간 동안 멈춰 있었다.
그 곡은 난해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웠고,
딘은 이전보다 더 멀어진 듯 느껴졌다.
그러나 곡이 발매된 직후,
그의 인스타그램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Howlin’ 404”는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미래를 배경으로 한 곡이었다.
그가 설정한 가상의 시점은 2084년,
감정이 통제되고, 존재가 감시되며,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 자체가 금기시된 시대였다.
『1984』는 전체주의가 극단에 이른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빅 브라더’라는 절대 권력이
모든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세계.
개인의 자유는 철저히 억압되고,
언어는 감정을 제거한 채 정제되며,
사랑조차 반역으로 취급된다.
그리고 그 소설의 마지막,
주인공 윈스턴은 결국 철저히 세뇌당한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포기하고,
진심으로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된다.
인간의 내면마저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순간.
그 결말은, 더 이상 저항도, 울음도, 고통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이어진다.
딘은 바로 그 이후를 상상한다.
사랑도 분노도 사라진 지 100년이 흐른 세상.
그 안에서 울고 있는 한 존재,
그러나 그 울음은 응답받지 못한다.
404.
인터넷상에서 ‘Not Found’를 의미하는 이 숫자는,
『1984』의 결말 이후 남은 인간의 감정과도 겹쳐진다.
느끼는 자는 있지만, 들어주는 자는 없다.
그리고 딘이 이 곡에 붙인 404는,
애초에 이 외침이 어디에도 닿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알고 있었던 신호였다.
애당초 무의미할 외침이라는 자각.
즉, 딘은 이 곡에서 말하고 있다.
자신의 하울링—
그림자가,
즉 빅 브라더가 자신을 삼켜버리기 전에,
함께할 누군가를 찾기 위해 외쳐보지만,
그 외침조차 결국 의미 없을 것임을 알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4년간 사라졌다.
4년 6개월 만이었다.
그는 싱글 “DIE 4 YOU”로 돌아왔다.
워낙 긴 공백 끝이라, 단 한 곡만의 귀환은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그 아쉬움을 채우듯,
그의 퀄리티는 여전히 유효했다.
단순히 이별한 연인을 그리워하는 곡으로도 들릴 수 있다.
하지만 “Howlin’ 404”를 아는 우리는,
그의 울음이 그렇게 단순한 감정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또 1년 뒤.
2024년 11월, 새 싱글 “3:33”이 발매되었다.
첫 트랙 “NASA”까지.
그의 하울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번 편은 유독 쓰기 어려웠다.
몇 번이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어딘가 급하게 마무리되는 감이 있지만,
지금은 이렇게 끝내는 것이 맞다고 느낀다.
“Howlin’ 404”부터 “DIE 4 YOU”, “NASA”까지.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떠오르는 장면은 분명히 있다.
원한다면 글로 풀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가 말하려는 바를 내가 해석해서 글로 적는 순간,
그 자체가 오히려 그의 의도에서 벗어나는,
어쩌면 그림자, 혹은 빅 브라더와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 글은 설명보다,
그의 음악을 직접 들어보고 느껴보기를 권하는 마음에 더 가깝다.
물론,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만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내 글 역시 그러한 무게를 갖고 있진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저 그의 다음 앨범이, 외침이 어떻게 완성될지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이 모든 해석과 감상의 여지는, 이제 여러분에게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