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Portraits 02화

Portraits #2 <빌스택스>

늙지 않으려 애쓰는 게 아닌, 늙을 리 없는 태도.

by 신한진

“누가 말했지, 래퍼의 수명은 아무리 길어봤자 5년.”

이센스의 가사였고,

시대에 휩쓸려간 래퍼들을 봤을 때,

그 말은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인다.


힙합.

그 어떤 음악보다 빠르게 소모되고,

그 어떤 업계보다 더 빨리 트렌드가 바뀌는 장르.

흐름이 바뀌고, 플로우는 낡고, 이름은 지워진다.


그래서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래퍼는

대개 두 가지 중 하나가 된다.

자기 복제를 반복하거나,

이해 없이 따라가려다 민망한 퀄리티의 음악을 만들고 ‘구린 래퍼’가 되거나.


그런데 그는 이상하게도, 여전히 멋있다.

바스코에서 빌 스택스에 이르기까지

25년의 시간 동안,

그의 음악은 항상 젊고, 자유롭다.


‘Portraits’ 두 번째 주인공, 빌스택스.

그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그 방식이 음악 안에서 어떻게 드러났는지

지금부터, 차근히 들여다본다.



그저 재밌는 걸 할 뿐


빌스택스는 유행을 찾아서 쫓지 않는다.

그렇다고 유행과 거리를 두는 타입도 아니다.

그는 그냥, 지금 자기가 듣기에 가장 좋고,

재밌는 사운드를 택해 음악을 만든다.

놀라운 건, 그 귀가 언제나 낡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정 시대에 머무르지 않고,

한 흐름에 고여 있지도 않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늘 ‘지금’처럼 들린다.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게 뭐 대단한가?”

하지만 진짜로 그렇게 움직이는 플레이어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그걸 자신에게 적용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낀다.

지금 좋은 걸 만들면 금세 흉내가 되고,

버티기에는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하다.

그렇게 사라진다.


그와 비슷한 나이대의 OG들 대부분은,

오리지널리티에 트렌디한 요소를 조금씩 섞으며 변화를 이겨냈다.

하지만 빌 스택스의 경우는 달랐다.

늘 지금 좋은 걸 선택하면서도,

결국엔 오리지널리티로 남는다.

이 한 대조만으로도,

그의 방식의 예외성이 분명해진다.


바스코라는 감성


우선, 바스코 시절부터 짧게 되짚어보자면.

그 시기의 음악은 지금보다 훨씬 더 거칠고 과잉되어 있었다.

분노와 자조가 랩을 밀어붙였고,

감정이 앞서 나가는 순간도 많았다.

지금보다 감정의 밀도가 훨씬 짙었고, 에너지가 날것 그대로였다.


그는 이미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충분히 갖추고 있었고,

그 안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운드를 설계해나가고 있었다.

마초적인 감성으로, ‘The Genesis’로 시작해 ‘덤벼라 세상아’, ‘Guerrilla Muzik‘ 시리즈, ‘MADMAX’까지.

바스코라는 이름으로도 충분히 빼어난 앨범들을 남겼다.

특히 ’Guerrilla Muzik‘ 시리즈는, 지금 들어도 꽤 인상적이다


그리고 트랩이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하던 시점,

‘맨 위의 맨 위’, ‘말 달리자’ 같은 곡들로

‘바스코식 마초감성’을 트랩 비트 위에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하지만,

그가 돌연 새롭게 나타났다.


바스코 ‘Whoa ha’ 뮤직비디오


걸어온 길을 버리다


2016년 12월, 그는 바스코라는 이름을 버리고

‘BILL STAX’라는 새 이름을 만들었다.

단순한 개명이 아니었다.

“이제 그 이름에 가슴이 뛰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는 빌스택스가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걸어온 방식, 감정의 언어,

바스코라는 이름의 무게까지 함께 내려놓았다.


처음에는 다들 의아해했고,

뒤늦게 알려졌지만 당시 소속이었던

저스트뮤직의 동료들조차 반대했다고 한다.

그만한 리스크를 감수한 선택이었다.

이미 한 자리 잡은 이름을 버린다는 건,

그동안의 커리어 전체를 초기화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믹스테잎 ’Buffet‘가 발매되고,

물음표는 느낌표가 되었다.


바스코 시절의 마초적 감성은,

그가 아직 큰돈을 벌기 전,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던 시기엔 자연스러운 표현이었다.

하지만 2010년대 초중반, 음악적 성공과 경제적 안정을 이루며

그 감성과 삶 사이에 점점 괴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괴리를 이름을 바꿈으로써 정리했고,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어울리는

사운드와 가사를 펼쳐낼 수 있었다.

그 결과물이 ‘Buffet’였다.


그리고 이 앨범은, 그런 서사를 몰라도 충분히 강하다.

음악적 완성도만 따져도 ‘이만한 걸 왜 믹스테잎으로 냈지?’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누군가에게 수작, 혹은 명반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퀄리티였다.


‘Buffet’는 단지 이름을 바꾼 래퍼의 시도작이 아니었다.

그가 자기 안의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진짜 삶과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뱉어낸 앨범이었다.

그리고 이 앨범은,

그 이후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예고처럼도 들린다.


그냥 이게 나다


2018년, 빌스택스는 대마초 흡입 혐의로 적발되며 활동을 중단했다.

뉴스 헤드라인이 먼저 그의 이름을 불렀고,

그는 더 이상 음악이 아닌 사건으로 회자됐다.

커리어가 흔들리고, 이미지가 무너질 수 있는 순간.

대부분의 뮤지션이라면

입을 닫고 잠잠해지기를 택했을 시기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그 시간을 숨기지 않았고,

오히려 그대로 마주 보는 방식을 택했다.


’Buffet‘ 발매 직후, 씨잼, 제이 키드먼과의 합작 앨범이 예고돼 있었지만,

앞서 말한 적발 사건으로 무산된 바 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분명했다.

하지만 2년 뒤 그는, 누구도 꺼내지 않으려는 이야기를 그대로 꺼내놓았다.

국내 최초로 대마초를 정면에서 다룬 앨범 ‘Detox’.

그는 돌려 말하지 않았고, 굳이 해명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 앨범 안에,

“나는 떨쟁이고, 내가 진짜 트래퍼다”라는

선언을 적나라하게 담았다.

그저, 자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했다.

그 결과는 공백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다.


몇몇 피처링진은 빌스택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쉬운 인상을 남긴다.

벌스의 완성도 면에서 밀리는 순간들이 있고,

때로는 트랙의 흐름을 살짝 흐리는 지점도 있다.

하지만 그런 조합이 이상하게도,

이 앨범이 지닌 트랩 특유의 비일상적인 긴장감과는 묘하게 어울린다.

완벽하지 않은 구성이,

오히려 이 앨범의 질감과 방향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덧붙이자면, 나는 그의 대마초 흡입 행위나

그가 주장해 온 합법화의 메시지를 옹호하고자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그의 음악과 태도가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살피는 시선이다.


빌스택스 “DETOX” 앨범 커버


결론


그는 지금 자기가 재밌는 걸 하지 못하게 된다면,

이름까지 바꿔서라도 그 제약을 걷어내는 사람이다.

그게 빌스택스였다.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았고,

그렇다고 고집에 갇히지도 않았다.

그는 언제나 지금 듣기에 좋은 것을 선택했고,

그 결과는 이상하리만치 늘 ‘지금’ 같았다.


지금도 그는,

랍온어비트, 오이글리 같은 파트너들과 함께

‘SKRR GANG BUSINESS‘ 라는 이름 아래에서

여전히 자기 방식대로 지금을 살아간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그가 그 긴 커리어 동안

앨범 단위의 작업에서 기대를 배신한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럴 수 있었던 답은 어쩌면 단순하다.

그는 그저, 자기에게 진짜로 재밌는 걸 해왔을 뿐이다.

그리고 그 방식이 이상하리만치, 지금도 멋있다


Mnet 쇼미더머니3 中



마무리하며


힙합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그 자체를 불편하게 느끼는 이들에게

그의 음악과 행보는 충분히 낯설고,

때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다만, 나는 이 글을 통해

힙합이라는 장르 안에서 삶과 음악이 일관될 때,

얼마나 멋진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지 말하고 싶었다.


혹시 힙합이 궁금하다면,

그리고 한국에서 그것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알고 싶다면,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처음부터 차례로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2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힙합씬의 중심을 지나온 산증인이자,

지금도 여전히 ‘PRIME TIME’에 머물고 있는

예외적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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