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Portraits 01화

Portraits #1 <태연>

호소하지 않고도, 마음을 뒤흔드는.

by 신한진

‘보컬리스트’라는 단어는 종종 기술적인 탁월함이나

폭발적인 감정 표현을 기준 삼아 평가되곤 한다.

음역대, 호소력, 창법의 개성 같은 요소들이 쉽게 언급되고,

그런 기준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는 ‘노래를 잘한다’는 말로 단순화되기 일쑤다.


그녀 또한, 그 전통적인 기준 안에서 부족함 없는 기량을 갖춘 보컬리스트다.

안정적인 발성과 넓은 음역, 장르를 넘나드는 적응력까지,

‘잘 부른다’는 기준에서조차 그녀는 결코 가볍게 평가될 수 없는 실력자다.


하지만 그녀를 진짜 흥미롭게 만드는 지점은,

그러한 기량을 과시하거나 드러내는 방식이 아닌,

감정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중심에 세우기보다,

곡의 흐름 안에 녹여내며

오히려 그 절제가 더 깊은 정서적 여운을 남긴다.


‘Portraits’ 시리즈의 첫 번째 주인공, 태연.

그녀를 단순한 아이돌 보컬이 아닌, 감정을 설계하고 정서를 구축해 온 목소리로 바라보려 한다.


보컬리스트로서의 표현 체계와 감정 조형 방식


태연은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보컬리스트를 넘어,

감정 해석과 표현, 그리고 곡 안에서의 보컬 배치까지 세심하게 조형하는 아티스트다.


그녀의 목소리는 곡의 중심에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하나의 악기처럼 곡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정서의 흐름을 만들어간다.

이러한 방식은 때때로 감정을 과하게 분출하기보다는,

절제된 거리감과 여백을 통해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Rain’, ‘사계’, ‘To. X’ 같은 곡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그 절제는 섬세한 곡에서만 발휘되는 방식이 아니다.

‘U R’이나 ‘Blur’처럼 높은 테크닉을 요하는 곡에서도,

그녀는 테크닉을 강조하기보다 곡의 흐름 안에 기술을 조율해 넣어, 감정선을 해치지 않는다.


이러한 절제는 감정의 결핍도, 기술의 부족도 아니다.

그 기반에는 정서와 기술, 양쪽 모두에 대한 깊은 통찰이 깔려 있다.


SM ent. 태연 “INVU" 티저 이미지


제작 시스템 안의 예술가적 주체성


SM은 기획 중심의 정밀한 제작 시스템을 갖춘 회사다.

그럼에도 태연은 단순히 이 시스템 안에서 주어진 곡을 소화하는 보컬리스트가 아니라,

자신의 감각과 해석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해석자’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왔다.


곡 선정이나 보컬 디렉팅, 믹싱과 같은 제작 과정에서

태연이 적극적인 의견을 반영하고 있는 점은 꾸준히 확인되어 왔고,

그러한 점은 단일 곡의 완성도를 넘어

앨범 전체, 나아가 디스코그래피의 유기성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는 그녀가 단지 노래를 부르는 위치를 넘어,

작품의 구성과 정서의 흐름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예술가임을 시사한다.


결국 그녀의 음악은 ‘기획의 산물’이라기보다,

‘해석과 구현’의 결과물에 가깝다 볼 수 있다


시스템 속 독자성, 평가절하의 시선과 그 반박


그녀의 커리어를 바라보는 일부 시선은 여전히

그 성취를 ‘오로지 SM 시스템의 힘’ 혹은 ‘안정된 환경의 결과’로만 환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평가는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놓친다.

태연은 다양한 장르, 콘셉트, 프로듀서와 작업하면서도

자신만의 정서적 해석 방식과 감정 어법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그렇기에, 그녀는 단순히 주어진 곡을 잘 소화하는 보컬리스트를 넘어,

감정과 곡의 질서를 재구성해내는 ‘표현자’에 가깝다.


이를 더욱 분명히 보여주는 비교 대상은

SM 내의 다른 솔로 아티스트들이다.

태연만큼의 음악적 완성도와 대중적 성공을 동시에

이룬 인물은, 사실상 보아 정도가 유일하다.


하지만 보아는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한 사운드 구성과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외향적인 기획을 기반으로 커리어를 전개해 왔으며,

태연처럼 ‘보컬 기반의 감정 설계’를 중심에 둔 음악적 접근과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


같은 시기 솔로로 데뷔한 백현, 태민, 도영, 태용 등의 사례 역시

각자의 색깔을 드러내긴 했지만,

앨범 단위로 감정의 흐름을 설계하고, 서사를 유지한 케이스는 드물다.


결국 태연의 성취는 단순히 ‘밀어주기’의 시스템적 결과가 아니다.

같은 조건에서도 쉽게 나오기 힘든 결과라는 점에서,

그녀는 시스템 안에서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과 자신만의 언어를 모두 입증해 낸, 예외적인 인물이다.


창작 없이 구축된 감정 미학, 동시대 음악사적 의의


이처럼 시스템 안에서의 독자성을 증명한 태연은,

더 나아가 직접적인 창작 활동 없이도 자신만의 감정 미학을 구축해 온 보기 드문 사례다.

많은 보컬리스트들이 감정을 강하게 분출하며

테크닉적 기량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직접 곡을 쓰며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해 왔다면,

태연은 해석과 표현, 감정의 설계를 통해

'자신만의 정서'를 구축해 왔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창작을 병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음악이 창작자 못지않은 감정적

설득력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감정을 잘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감정의 구조와 색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그 결과, 그녀의 음악은 어느 순간부터

'태연스럽다'는 말로 설명되는 고유한 정서와

표현 체계를 갖게 되었다.

이는 단지 이미지나 스타일이 아니라,

곡을 해석하고 감정을 재배열하는 방식에 기반한 예술적 언어다.


이처럼 기획 기반 시스템 속 보컬리스트로서.

감정 조형의 미학을 독자적으로 완성해 낸 사례는 동시대 대중음악사 속에서도 보기 드물며, 태연은 그 이례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SM ent. 태연 “Letter to Myself" 티저 이미지


완벽하지 않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을 병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녀의 독자성은 아이유나 백예린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써 내려가는 아티스트들에 비해

선명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어쩌면, 나는 'Portraits'의 첫 번째 인물로 태연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선명하지 않을지언정, 그 감정의 언어는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자신만의 독자성을 구축해 왔다.


디스코그래피 전체가 완벽하다는 건 아니다.

기획 중심의 한계가 드러나는 지점도 있고, 팬으로서는 반갑고 즐겁지만,

비평적 시선으로 봤을 때는 '너무 연속적으로 무난한

거 아닌가?' 싶은 순간들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지점들마저도 그녀 특유의 감정선과 해석 방식이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게 만들며,

결국 ‘태연다움'을 지속적으로 구축해 왔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미 있는 궤적이라 할 수 있다.


결론


앞서 살펴본 것처럼, 태연은 SM이라는 체계적이고 기 획 중심적인 시스템 안에서 활동해 왔지만,

그 안에서 단순한 실행자가 아닌, 자신만의 해석으로 음악에 개입해 온 아티스트다.


그녀는 곡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는, 곡 안에서 정서의 흐름 안에 자신을 섬세하게 녹여내며 보컬이라는 악기를 정제된 감정으로 조율해 왔다.


그 결과, '아이돌 출신 보컬'이라는 프레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궤적을 만들어냈고,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음악의 중심을 부드럽게 장악하는 방식으로

오늘날 가장 섬세하게 감정을 설계하는 목소리로 자리

매김 했다.


태연의 음악은 어느 순간부터, 단지 잘 부른 노래가 아 니라

'태연의 노래'로 기억되는 고유한 정서로 남게 되었고, 그러한 구조를 직접적인 창작 없이도 구축해 냈다는 점에서

그녀는 동시대 대중음악사 속에서 보기 드문 예외적

성취를 이뤄낸 보컬리스트라 할 수 있다.


SM ent. 태연 “Purpose" 티저 이미지


마무리하며


나 역시 한때는 장르 음악만을 소비하고,

팝 음악은 가볍다고 여기며 들어보지도 않고 무시했던 적이 있었다.

'음악적 선민의식'이라 부를 수 있는 그 태도는,

돌이켜보면 음악을 나만의 잣대로 단정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도 그 태도를 전적으로 부정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음악을 향한 개별적 선호는 때로,

누군가에겐 세상을 견디게 해주는 리듬이고,

누군가에겐 삶을 관통하는 취향의 결이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한,

그것 또한 하나의 건강한 리스닝 포인트일 수 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단 한 번도 태연의 음악을

온전히 들어볼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다면,

그건 조금은 아쉬운 일이 아닐까.


혹시 흘러나온 히트곡들로만 그녀를 알고 있다면,

‘아이돌 출신’이라는 색안경에 가려

그녀를 높이 사지 않고 있다면,

그녀의 앨범을 단 한 번, 편견 없이 들어보기를 권한다.


그 안에서 당신은,

곡보다 앞서지 않으면서도 곡을 주도하는,

드러나지 않지만 가장 분명한 존재감을 가진

우리 시대의 목소리를,

조용히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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