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품 재활용하기

10화. 육체 잊지 않기

by 아름다운 옥돌

Recycle my life


마음의 전쟁을 끝내니 육체가 고통스러워하는 게 이제야 눈에 보였다. 마음의 절망 속에서 고통스럽게 버티는 육체의 감각을 믿어줘야 했다. 그래야 사라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산책을 하고 어깨를 피는 운동을 하고 생각과 마음의 번뇌를 달아내는 시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 무작정 뛰기까지 했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하기엔 사람의 장벽이 컸다. 오랫동안 만나왔던 친구조차 만나기 힘든 상태였으니 말이다. 친구들이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내가 나를 싫어하고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친구들의 도움에 기대서 도망치면 다시는 나 혼자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좋은 어른이 되어줄 것이고, 좋은 환경이 되어줄 수 있다고 기대하게 만들었다가 곤두박질치게 만든 상처가 남아있었기에 사람과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밖에 나가는 게 두려워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에게 운동을 시도하던 게 좋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는 더 이상 꾸준함이라는 것에 닿지 못해서 속상했다. 성장의 기회는 역시 사람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운동을 위한 환경을 세팅했다. 감정이라는 어린아이도 클 수 있고, 이성이라는 어른도 엄격하지 않게 감정을 데리고 현실을 키워가는 연습을 하자라는 생각과 함께 나 자신과의 약속을 하며 큰 맘을 먹고 헬스장을 등록했다.

상담을 예약하고 간 헬스장에 나에게 관심을 주고 도와주고 인사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 공간에서 하염없이 새로운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내가 떨리고, 무서웠지만, 여기서 큰 맘을 철회할 수 없어서 다른 곳으로 갔다. 그래서, 떨리고 긴장됐지만 이성의 어른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어 생각해 봤다. 왠지 오늘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내일 온다면, 헬스장에 등록해도 매일매일 내일을 외치며 영영 시작이 두려워질 것만 같았다. 그럼 불안만이 나를 움직이게 했던 때와 같아지기에 눈 딱 감고 새로운 환경에 다시 나를 던졌다.

다행히도 사람을 잘 대할 줄 알고, 신뢰를 주는 사람을 만나는 행운이 있었다. 예를 들어서, ’무서워요..‘라고 하면 ‘그냥 하세요’가 아니라 자신이 처음 운동하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공감과 믿음을 주는 말을 내뱉고, 머리가 과부하가 되어서 이해 못 해도 아는 척하는 나를 딱 알아채고 그러지 말라고 하고, 호흡 타이밍이 어려운 나를 위해서 테스트도 봐주고, 적절한 질문과 상태 체크 등 내 몸과 마음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심지어는 힘들다는 말이 마음이 아파서인지 몸이 아파서인지 구분할 줄도 알았다. 거짓말을 잘 못하기도 하지만, 굳이 말 안 해도 이렇게까지 이해를 받는 게 처음이라 신기했다. 내 상태가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되기에 말을 못 하는 순간에 ‘왜 말을 못 하냐’며 다그치는 언어들 속에서 더 상처받아서 말이 안 나온 아픔들이 생생하게 나를 짓누르고 있었기에 더 크게 보였다.

처음 시작할 때 부족한 나의 모습에 수치심이 드는 게 큰데 그건 당연한 거라며 위로도 해줬다. 그 말을 내 좌절 속에서 들었으면 덜 아팠을지도 모른다. 아니, 내 옆에 있던 사람들도 그런 말들을 건네주었지만 나라고 착각하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이성의 힘을 잃어버린 나를 한심하게 보는 말로 밀어버렸었다. 그게 당연해져 누구에게도 아프다고, 힘들다고 말할 수 없어 썩어갔던 마음들이 왜 세상을 혼자 사냐며 나를 탓하는 더 아픈 말로 돌아왔다. 그 아픔이 이렇게 믿음을 주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기 위한 선물로 돌아오려고 아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는 나에게 다시 사람으로 치유받는 순간을 기대하게 만들었고, 내가 죄책감과 아픔에 대한 보상심리로 꾸역꾸역 무리해서 천국의 계단을 엄청 오랫동안 하거나 폭식으로 토하고 다시 운동하려 하는 것을 막아주기도 했다.

또한, 먹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클 때 무작정 먹지 말라는 게 아니라 먹을 거면 행복하게 먹으라고 해주고 운동할 때 하기 싫어하면 먹고 싶어 하는 것들을 떠올리게도 해주고, 잠도 잘 못 잘 때 잘 자야 한다면서 건강하지 못한 생활들을 하나씩 짚어나가게 다시 도와줬다.

비록 여전히 잠은 잘 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팠던 시간들을 충분히 아파하는 시간대를 지나왔다. 이제는 그 아픈 시간대에 놓인 나를 안아주고 그를 대변해 주는 말들을 스스로에게 들려주며 상처를 받을지라도 내가 이렇게 치유해 줄 거고,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로부터 스스로가 지켜줄 수 있으며 그는 내 존재를 헤칠 때까지 옆에 둘 수 없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단단한 다짐을 해나가고 있기에 생긴 미래를 상상하는 불안 때문에 잠을 못 잔다. 그렇지만 내가 먹고 싶은 것들도 먹어주고, 사고 싶었던 것들도 사주고, 식욕과 소비욕이 생긴 마음들을 스스로가 무시하지 않아 주고 달래주면서 상대에게 바랬던 마음들을 내가 알아봐 주고 예뻐해 주며 불안을 재워주고 있다.

운동만 해서 겉으로만 건강해 보이도록 몸을 만드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마음의 상처를 외면해 왔다면 아직도 혼자 있을 때 가라앉아있는 것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운동의 목적이 몸과 마음의 건강에 있었기에 그 둘다를 회복하는 것에 중점을 두니 치유가 되어가고 있는 내가 너무 신기하다. 다이어리에 쓰인 마음들도 예뻐지고 밝아지며 안 좋은 마음들도 숨김없이 자유롭게 드러내고 느껴주는 지금의 상태가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 상태를 파악해 가며 운동 강도를 조절하듯이, 인생의 속도도 내 상태를 파악해 가며 조절하면 된다는 말로 느리게 걷고 있는 나를 위로해주고 있다.

사실은 내가 행동하고 있는 것들이 겉으로는 바뀌는 게 없어 보여서 절망스럽고 그만둬야 하나 싶은 여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선생님께 배운 것이 있다. ’너무 쉬면 퍼진다‘ 와 ’마무리 세트는 힘들 때 하고 끝내야 후련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운 새로운 목표는 내가 낭만을 쫓아 키워가고 있는 현실이 힘들어진 올해의 여름을 하고 있는 일들을 놓지 않고 겨울까지 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평화와 안정의 겨울을 맞이하는 그날을 기다리며 올해의 여름을 바친다.


Time changes and we with time.


천국의 계단을 1시간 반 찍었었는데 그만하라고 혼나서 사진 못찍은게 한이다 …
더이상 나와의 데이트도 사치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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