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휴식을 위한 방어
원래 루틴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고 하였으나 지금까지 달려오면서 넘쳐나는 아이디어들과 생각들을 넘치게 생각하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 하는 강박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매주 내 삶을 지키기 위한 미션을 정해놓고 새로운 것들을 삶 속에 적용해 나가는 것에 대한 피로가 누적되어 와서 그런지 과부하가 다시 찾아오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의식적으로만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다 보니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시간을 마련하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달려온 것들을 정리해서 내 하루의 삶 속에 모두 정착시켜야겠다는 루틴의 부담감은 커져만 갔다.
그럴수록 폭식도 심해지고 운동도 안 하게 되고 소비욕구도 늘어만 갔기에 불안해서 잠을 자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만 더 쌓여갔다. 그렇다고 해서 원래대로 루틴과 관련된 삶을 정착시켰다고 떳떳하게 말하는 가식적인 글은 내가 원하는 글의 방향과 다르기에 이를 반영하여 이번 주의 미션을 삶의 변화를 위한 회복의 쉬는 시간을 주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로 수정하였다.
지금까지는 삶의 더 나은 방향을 위해 나는 양의 정수를 만들어가는 공식만을 생각해 냈다. 그것을 적용하기 위해 음의 정수인 상태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으나 양의 정수를 모두 적용해야 하는 시점이 오자, 나 자신이 아무것도 방해받지 않고 평온한 상태인 0이 되지 않으면 음의 정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평온하고 지루함에서 오는 안정적인 행복을 느끼는 0인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 나를 아무리 발버둥 쳐도 0 이상으로 도달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을 정리해야 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음의 정수인 상태에서 0으로 가는 에너지를 쓰느라 양의 정수로 가는 길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나를 음의 정수로 만드는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평온한 상태에서의 에너지를 쓰면 같은 강도의 에너지를 써도 양의 정수를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초연결사회를 휴대폰으로 살아내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아파서 강제적으로 모든 연결이 끊어진 충격을 받아보니 다시 회복하는 것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강제적으로 연결이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도 좋은 것들과의 연결에 힘을 들이는 것보다는 내가 소중하게 키워내고 있는 사랑의 정원을 지켜내기 위해 방어해야만 하는 것들로부터 확실한 정리가 필요했다. 애매하게 정리하니 애매하게 선을 넘어 감정은 소모받는데 그걸 드러낼 수 없어 나 자신의 에너지가 사라지고 있다는 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다. 눈에 보이도록 나 자신을 생각해 주는 운동과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즐기고 싶은 것들을 즐겨보는 시간들이 이를 깨닫고 다시 돌아오게 해주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내 정원에서의 사랑을 들려주는 것에 행복을 느끼니 그 시간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졌다.
그렇지만 난 타인과 세상에 상처를 주는 것이 두려웠다. 상처를 받으면 티를 안내는 성격이기도 하고, 이를 드러내면 상대도 상처받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신중했다.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의 세계관에서의 경험들이 쌓여서 생긴 말과 행동들이 쌓여 만들어진 충돌이기에 이를 이해하고 있었으며 존중해서 멀어지는 쪽을 택하는 것을 선택했다. 또한, 세게 말할수록 내 영혼에도 타격을 받는 느낌이었다. 역시나 내가 세게 말한 그 순간이 나중에 똑같은 행동을 하는 나에게 똑같이 돌아왔다는 것을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가족 이외에 상처받았다고 시원하게 말해도 관계의 안정성을 느낄 수 있던 경험이 없었기에 불안해서 그랬기도 했다. 그 불안이 커질수록 큰 상처를 가족에게도 말하기 힘들어했다. 그만큼 내 고질적인 내면의 고독을 채워주는 인연은 없었기에 믿을 수 없었다. 만나서는 좋은 에너지만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이 장기적인 인연으로 닿고 결국은 내 시점에서 살아가는 인생 속에 그들을 초대하면서까지 나의 어둠을 버텨내 달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 다 부딪히면서 앞에 주어진 내면의 과제들을 외면하지 않고 이겨내고자 했고, 에너지가 전파되는 것에 대한 불안보다는 내가 그를 다룰 수 있다는 믿음을 더 갖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을 강하게 훈련하고 싶었다. 아파봐서 강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 이 힘으로 내 인생의 반려자의 어둠에서도 같이 손잡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내 반려자도 이러한 종류의 아픔을 겪었어도 두려워하지 않거나 방법을 아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이러한 인연이 아니라면 내 세계에 초대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감정을 잘 다스려 이성을 키워냈기에 현실의 보상을 받은 사람이 좋았다. 현실의 보상 그 자체에 매몰되어 커온 사람을 만나려면 만날 수는 있으나 충족되지 않는 아픔 속에서 난 헤엄치며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속에서 날개를 펼치는 방법을 알지만, 그 과정에는 수많은 눈물과 못 이겨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담겨있기에 그 지점을 원망하고 나약하다고 비난하는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를 더 아프게 만든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내 세계에서의 상처와 선을 드러내는 것이 나를 지켜내는 수단이라면 이제는 드러내고 싶어졌다. 드러내지 않았기에 계속해서 영향을 받는 내가 너무 소중해져서 선을 확실하게 긋는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세계관을 존중하지 않으려는 것들과 확실하게 거리를 두는 것이 양의 정수로 가는 길이라는 정답지가 생겨났다. 피하는 것이 더 한 사람의 감정을 키워내고, 그 키워낸 감정을 상대하기 위해 나도 더 큰 감정을 소모해야만 사그라든다는 점을 내 세계관 속 감정과 이성의 다툼 사이에서 응용하여 발견해 냈다.
내 세계관을 지켜주지 않는 것에 이제는 비로소 화가 났다. 그러나, 이를 세게 드러내고 그 사람을 탓할수록 다시 나에게 적용되기에 현 상황에서 나에게 타격을 받는 지점에 선을 넘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의 세계관을 존중하기에 그를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라고 말할 수 있게 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삶 속의 사랑을 지켜내면서도 떠오르는 사랑이 아니라면 들이지 않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나는 양의 정수로 가기 위한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게 되었다. 0의 상태로 유지하는 삶의 감각을 깨닫게 되었기에 앞으로의 삶이 더욱 기대되었다. 이 기대가 부서져도 두렵지 않다. 다시 쌓아 올리는 방법을 이제는 아니까. 그냥 겪어내면 되는 일이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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