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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피는 꽃

by 메이옹

나는 항상 '변화의 시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끌렸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요건과 속도에 맞추지 못하거나,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이들을 만날 때, 그들이 어떤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에 관심이 많았다. 아마도 나 자신이 여러 번 진로와 삶의 방향을 전환해 오며,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향해 가는 데서 느낀 두려움과 기대를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스물두 살, 동갑의 나의 부모는 부모가 될 준비 없이 나를 낳았고,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대하는 조부모와 불안정한 가정환경이 무색하게 나는 똘똘하고, 꿈이 큰 소녀로 자라났다. 7살 때 전국미술대회에서 내 키만 한 유리관에 담긴 대상 트로피를 받아 제일 가운데에 섰어도 사진 찍어줄 사람 하나 없었고,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체신부장관 주관 편지 쓰기 대회에서 금상인가를 받아 ‘옹달샘’, ‘앞으로’ 등의 노래를 만드신 윤석중 작사가와 쭈뼛 사진을 찍긴 했는데, 받았던 메달도 잦은 이사를 하면서 하늘로 날아갔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확인할 수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한 번도 반장을 놓치지 않았는데, 임명장도 학업우수상도 그저 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우리 부모님은 최선을 다해 나를 사랑하셨겠지만, 사랑하는 방법은 잘 모르셨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영화‘ET’를 보고 난 후부터 나는 내가 우주에서 뚝 떨어진 외계인이라고 믿었다. 언젠가는 나를 알아주는 진짜 내 종족이 나를 찾아주리라 믿으면서 하루하루 잘 살아갔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언젠가는 고향인 별로 돌아갈 것에 대한 상상이 아니라 ET와 엘리엇과의 만남처럼 좋은 만남들, 즉 삶의 중요한 전환점마다 마주한 의미 있는 사람의 ‘사회적 지지’가 있어서였던 것 같다.


선생님께 제공되는 교재 2-3권씩을 교무실로 살짝 불러 내밀어주셨던 영어 선생님, 반장들에게 은근히 요구되는 역할(당시 88 올림픽을 앞두었다고, 반마다 TV를 설치해야 했는데, 그 몫이 반장인 나에게 주어졌다.)을 감당할 수도, 엄마에게 부담을 주기도 싫어서 집에는 전달도 안 하고는 얼굴이 벌게져서 못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나에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예쁜 편지지에 마음을 담아 주셨던 담임 선생님, 쉬는 시간에 내 책상에 라일락 꽃을 포도송이처럼 따다가 두었던 중2의 친구, 조덕배의 ‘꿈에’를 어른스러운 글씨체로 적어 주었던 외국인으로 오해받을 만큼 하얀 얼굴에 갈색 눈동자를 가진 고1 때의 친구, 당돌한 나의 생각을 사랑해 주셨던 대학교 때의 지도교수님, 그리고 고시생 시절의 나를 묵묵히 믿어주고, 뒷바라지해주면서도 더해주지 못해 미안해했던 지금의 내 남편….


결국, 사람을 바로 서게 하는 건 다양한 사건 속에 있는 사람들과의 의미 있는 만남 때문이리라. 그래서 나는 연구를 빙자해 그 누군가를 따스하게 바라보고 궁금해하고 싶다. 석사 때는 자립준비청년들이 어떻게 성인기를 맞이하고 있는지를 가까이서 들었고, 요즘은 다문화 청년과 중장년 성인 학습자의 진로 탐색을 돕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스스로를 소외된 존재, 외계인으로 느끼지 않도록 궁금해하고, 묻고, 듣고 싶다. 그리고 나도 만남들 속에서 내가 보지 못했던 의미를 찾아가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흔들린다. 그러면서도 햇빛과 바람만 알아차리게 조금씩 커나간다. 우리는 그것을 진로라고도 부르고, 인생이라고도 부른다. 나는 흔들리면서 꽃 피워나가는 그 순간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은 사진사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사진 속 누군가가, 내가 남긴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다시 피어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은 사진사이다.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

당신의 엘리엇은 누구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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