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함께 사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14

by 마릴라 Marilla

도서관 PC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옆자리 프린트 좌석에 누군가 오더니 모니터 버튼을 여기저기 누르고 있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지 않아도 바로 옆자리에 있으니 주변시로 상황파악이 된다. 너무 한참을 여기저기 누르면서 우왕좌왕하기에 집중이 안되기도 했고 정작 책상아래 본체 전원은 보지도 않아 “PC 본체에 전원버튼이 켜져 있는지 보세요.”라고 말해 줬다. “아! 예” 하더니 전원을 켰다. 로그인 화면 하단에 누군가의 예약이 걸려 있으니 나에게 묻는다.

“혹시 이거 예약된 건가요?”

“아… 좀 전에 누가 사용했는 데 사용종료를 안 누르고 그냥 전원을 꺼버린 거네요. 직원에게 기존 예약 삭제해 달라고 하면 됩니다.”

나갔다 온 그녀는 웬일인지 정지된 상태로 앉아 있다. 프린트 하려는 다른 이용자가 다가와 그녀에게 묻는다.

“혹시 사용 중이신가요?”

“앞사람이 예약 종료 안 하고 갔는데 식사하러 갔는지 직원이 없어서 기다리는 중이예요.”

“1층 직원에게 얘기하시면 돼요. 2층에 있는 분은 권한이 없어요.”라고 내가 말했다.

1층에 다녀온 그녀는 PC를 사용한 후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넘기고 떠났다. 조금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바라지 않았어도 ‘고맙다’는 인사는 기대한다. 그 말은 도움이 되었다는 확인이고 원치 않았는데 괜한 오지랖을 부렸나 싶은 고민을 막는 말이다. 아쉽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는데 왜 나서서 알려줬을까? 우리는 보편적으로 누군가 요청하지 않으면 눈으로 보고 있어도 남의 일에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그런데 왜 오지랖 넓게 굳이 나섰을까? 그녀가 도움을 구할 줄 모른다고 느껴서다. 모니터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이것저것 누르는 행동이 주변시로 너무 보여 내 작업에 방해가 되기도 했고, 어느 정도 헤매다 안되면 옆사람에게 물어볼 법도 한데 묻지도 않으니 답답한 마음에 나서서 알려준 거다. 나는 내향인이며 개인주의자다.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싫어하고 남도 나에게 폐 끼치지 않기를 바라며 사람사이 거리감을 중시한다. 그녀도 내향인이고 폐 끼치는 걸 싫어해서 그랬을 수 있다. 하지만 이용자 많은, 회전율이 중요한 자리에서 혼자 헤매고 있는 게 의도치 않게 폐가 될 수 있다는 건 모르는 것 같았다.


효율이 중요한 사람에겐 혼자 고민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건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필요하면 공손하게 물어보고 도움을 받으면 고맙다고 한다. 요즘의 1~20대는 SNS에 최적화되어 온라인상에서는 외향인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어찌할 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친구를 사귀거나 연애하거나 질문하는 방법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듣기도 했다.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시대와 사회의 문제일 것이다.

학교는 이름 있는 대학 가는 방법은 알려줘도 사회성이나 세상사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성인이 되어도 알려주지 않고 청년을 위한다며 정책을 만든다.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금전을 지원하는 정책은 그들을 자립하지 못하게 한다. 필요한 대상이 아니라 전국의 청년층을 모으는 수치화에 목적이 있다. 수도권으로 몰리는 청년을 잡기 위해 지역마다 교통비, 공공일자리, 공짜와 다름없는 임대주택 등 각종 지원에 경쟁적으로 예산을 쓴다. 한시적이라도 지역에 살라고 붙잡는다. 정작 중요한 일자리가 없는데 한시적인 지원으로 성과 지표를 만드는 건 대상자도, 대상 밖 시민도 불편하다.


전국 지자체의 공공 일자리는 대놓고 차별적이다. 실내에서 일하는, 몸이 편한 일은 모두 청년에게 할당한다. 도서관이나 청사의 행정보조처럼 이른바 ‘꿀알바’로 통하는 일은 모두 청년이 대상이다. 중장년과 노년층은 풀 뽑기나 공원 화장실 청소, 쓰레기 줍기처럼 외부 작업에 할당한다. 공공의 영역마저 연령대별로 일자리를 차별하는 건 단순히 업무 능력의 이유가 아니다. 공공일자리는 특별한 능력을 요하지 않는다.

20세기처럼 조부모와 함께 살고, 이웃과 음식을 나누던 시절이 아닌 지금은 핵가족을 지나 핵개인의 시대다. 1~3인의 소가족에 이웃과 교류 없이 살며 모든 세대가 또래만 만나는 세상이다. 공공 일자리라도 모든 세대가 섞여 일한다면 청년이 다양한 세대를 만나 사람 대하는 법을 알 수 있고 윗세대도 젊은 세대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국가가 나서서 세대를 가르고 끼리끼리를 부추기니 서로 만날 일 없는 세대 사이에 오해와 편견이 쌓이는 건 아닐까.


지금은 과거처럼 태어나서 줄곧 한 지역에서 사는 토박이 개념이 없다. 초중고 때부터 타지로 이동하는 일이 많고 취업이나 학업, 결혼 등의 사유로 사실상 원주민의 개념 없이 전 국민이 이주민 상태로 산다. 해외에 나가면 애국심이 생기고 내 나라 좋은 점을 알게 되듯이 기회가 있다면 타 지역에서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인생에 도움 되고 자기 고향을 사랑하는 계기도 된다. 전 국민이 이주하며 사는 시대에 이탈을 막는 행정이 좋은가. 기업과 공공기관이 고르게 분산되고 원하는 일자리를 찾아 누구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청년일 때는 자기중심으로 생각하지만 그 나이를 벗어나면 그것도 인생의 한때라는 것을 알게 되고 시야가 넓어진다. 특정 세대만 위한 정책이 아니라 세대가 연결되는 정책이 있으면 좋겠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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