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선물

#12

by 마릴라 Marilla

상담이 예상보다 일찍 끝나 다음 일정까지 시간이 떴다. 시간도 보낼 겸 한참을 걸었다. 지나가다 카페처럼 보이는 곳의 유리창에 써진 간판글자를 보았다. 언젠가 시간 되면 가야겠다고 생각한 독립서점이었다. 시간도 남았으니 잘 됐다 싶어 들어갔다. 손님 없이 고요한 공간에 드문드문 전시된 책을 보고 있는데 책방지기가 처음 방문이냐며 말을 걸었다. 가끔 지나치는 길목인데 서점인 줄 몰랐다며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지 물었다. 비정기적으로 북토크를 한다기에 다음에 참석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다 자연스레 책과 관련된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상대방의 말을 끌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처음 본 사람임에도 자연스럽게 말이 이어졌다.


“베스트셀러로 진열된 건 읽으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서 싫더라고요. 발견되지 않은 게 더 많잖아요. 전 서가에서 제목을 보다가 맘에 들면 몇 장 읽어보고 괜찮으면 전체를 다 읽어요. 그렇게 읽은 책 중에 좋은 게 많았어요. 보물 발견이죠.”라고 말하자 그녀가 맞장구쳤다.

“저도 그런데 선생님 저랑 책 취향이 비슷하신 거 같아요.”


“편식하는 다독가죠. 이 도시는 작가 초청 강연이 참 많아요. 서울보다 유명한 작가를 여기서 더 많이 보고 있어요. 한쪽만 말하는 강연보다는 독서가들 토론이 많으면 좋겠어요. 소소하게 책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라고 하자 책방지기가 진열장 서랍에서 책을 한 권 꺼낸다.

“제가 여기서 산 소설집인데 맘에 드는 구절이 많아 여러 곳을 접어 뒀어요. 괜찮으시면 빌려가서 읽어보실래요?”


“책 추천 좋네요. 제가 읽고 선생님이 공감하신 문장을 유추해 보는 것도 재밌겠네요.”

“너무 좋아요. 선생님이 맘에 드는 문장에 밑줄 그으셔도 돼요. 그럼 다음 분이 또 참고할 수 있겠죠.”


“다른 분도 읽으실 책이라면 밑줄 말고 포스트잇으로 메모를 붙일게요. 저 숙제 잘하는 사람이니까 열심히 할 수 있어요. 맘에 드는 문장이 없을까 걱정이죠. 같은 책도 읽을 당시의 상태와 기분에 따라 다르니까요. 근데 저 믿으시는 거죠? 빌려가서 안 가져오면 어쩌시려고. 하하.”

“인스타 아이디 알려주실래요?”


“필요해서 하긴 합니다만 0 팔로워 0 팔로잉 이라서요. 누가 팔로우하면 다 끊어요.”

“저도 유령계정이에요. 카톡도 하기 싫어서 고민이에요.”


“저도요.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카톡 안 해요. 저는 약속을 잘 지키지만 혹시 모르니 연락처를 남길게요. 재방문 이유를 만드는 거죠.”

“괜찮으시면 책이 나오게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저희 홈페이지에 오늘의 일상을 올리는 부분에 넣으려고요.”


“개인정보가 나오지 않으면 괜찮아요. 제가 지명수배 중이라 얼굴이 나오면 곤란해요. SNS 위치 무섭잖아요.”

“하하 그 말 저도 써먹어야겠네요.”

가방에 있던 육포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제가 give & take를 중요하게 생각해서요. 전 대여료로 육포를 드릴게요. 전 먹을 거 주는 사람 좋아하거든요. 제 마음상태를 표현한 겁니다.”

“먹을 거 받으니 너무 좋네요. 이것도 같이 사진 찍어야겠네요.”

“그럼 다 읽고 다음 달에 다시 방문하도록 할게요. 그때 이 책에 대한 소감을 나누면 즐거울 것 같아요.”


공허하고 쓸쓸한 마음에 우연히 들어간 서점에서 티키타카가 되는 사람과의 대화, 공통의 관심사인 책에 관한 얘기여서 잠시나마 즐겁고 기분이 환기됨을 느꼈다. 그래 나쁘기만 한 건 없다. 이렇게 위안받았으니 그걸로 족하다.

화, 목 연재
이전 11화내가 물려받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