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우연히 흥미로운 포스터를 발견했다. 내향인 마을이라는 제목에 몹시 끌린 건 내성적 인간이기도 하지만 이사를 고민하고 있는 상태에서 집주인의 자기 결정권 침해로 스트레스를 받던 상황이 떠올라 와닿았다. 그런 마을이 있다면 당장 이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행정복지센터에서 마을 주민증 발급과 내향인 곤란상황 민원처리, 외향인 입장 시 경찰이 출동한다는 부분이 몹시 흥미로웠다. 혼자가도 불편하지 않겠다 싶어 신청하고 이틀 뒤 주말에 행사장에 갔다.
제복 차림의 경찰이 순찰을 도는 마을 입구에서 플라스틱 주민증을 발급받고, 민원처리과 벽면에 내향인들이 민원메모를 붙이면 민원처리과 직원이 그 아래 답변을 달아놓는다. ‘이런 마을이 생겨서 너무 좋다, 바바리맨이 자꾸 와서 말을 건다, 외향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출몰했다.’ 같은 민원과 “내향인과 친해지고 싶은 외향인인데 있으면 안 되나요?”라는 민원에 “원칙은 안되지만 경찰을 조심하세요.”라는 답이 달려있다.
역사박물관에 명화를 오마주한 작품이 걸려있고 도슨트 투어가 있는데 내향인 특성에 맞게 비대면 도슨트란다. QR로 오픈채팅방에 접속해 궁금한 작품의 사진을 찍어 보내면 도슨트가 설명을 보내준다. 여러 작품 중 뭉크의 ‘<절규>를 오마주한 작품의 제목이 <외향인의 침입>이었는데 제목이 너무 찰떡이어서 감격스러웠다. 다만 마을잔치가 현장에서 다 채워져 예약이 의미 없고 안내가 없어 혼자 뻘쭘하고 어색해서 그냥 갈까 갈등하게 했다.
기 빨리는 내향인을 위해 행사는 30분의 짧은 시간이었고 다과와 함께 추첨이 진행됐는데 경품이 전시된 작품들이다. 추첨운 없는 사람인데 웬일로 당첨이 되었다. <외향인의 침입>이 탐났으나 고흐의 <자화상>을 오마주한 그림이 당첨되었다. 참신한 기획은 너무 맘에 드는데 첫 행사여서 준비가 덜 된 부분이 좀 아쉬웠다. 실내여서 마을이라는 느낌이 없고 공간이 넓지 않아 돌아볼 만한 곳이 없었다. 공간이 넓다면 거리감을 중요시하는 내향인들이 더 편할 텐데…. 마을에 모여 살지만 떼 지어 다니지 않고 각자 자기만의 여가를 보내는 조용한 잔치가 되면 평화롭고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향인 마을이 있으면 정말 이사하고 싶다. 침해받지 않고 내 영역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