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냥 버티는게 답인가.

다들 그렇게 산다고?

by 라온



“그래도 너보단 더한 사람들도 많아.”
“직장 생활은 원래 그런 거야.”
“다들 그렇게 살아가.”

누군가가 무심하게 내뱉은 이 한마디들이, 내 마음을 가장 깊게 찔렀다. 그 말들 속에는 내가 겪은 고통을 너무 ‘사소한 일’ 취급 한 무례가 들어 있었고, 나는 그 무례 앞에서 항상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그렇게’는 어떤 건데?
내가 감당하고 있는게 뭔지나 알고 떠드는건가? 왜

그걸 당연하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말에 반박하는 순간, 또다시 ‘예민한 사람’, ‘민감하게 굴지 말라’는 말이 되돌아올 게 뻔했다. 그래서 나는 늘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점점 내 감정이 옳은 건지 아닌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버티는 게 정답인 세상.
그렇지 못한 사람은 ‘루저’가 되는 사회.

나는 당연하게도 그 벽에 맞춰 내 몸을 접어야 했다.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심장은 여전히 거친 파동을 그렸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지만, 나는 계단을 택했다.
숨 하나하나가 목에 걸린 기분이었고, 온몸에서는 어젯밤 뒤척임의 흔적이 풀풀 피어올랐다.


집에 돌아와 문을 잠그는 순간, 세상은 더 조용해졌지만 내 안은 여전히 울음바다가 되어 있었다.


"어딜가나 똑같아."

"1년은 채우고 퇴직금 받자."

"그냥 무시하고 무조건 버텨."


앵무새처럼 비슷한 말만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 뒤엉켜서 들려 오는듯 했다.


이게 맞는건가.

내가 무조건 참는게 맞는건가. 싶었다.


눈치 채 보니 나도 모르는새에, 집도 일의 연장선이 되어 있었다. 병원 내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그렇게 끝없이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TV를 켰다.

어제 본 뉴스, 오늘도 계속 반복되는 광고. 리모컨이 너덜해지도록 쥐었지만, 어떤 화면도 내 마음의 노이즈를 덮어주지 못했다. 그제야 나는 무릎을 꿇듯 바닥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눈을 비집고 나와 볼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는, 곧 얼음처럼 차갑게 변했다.


뭐든 해야했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생활 에서까지 괴롭힘 당하는 스스로를 원망할 테니까.


그래서 노트를 폈고, 한자한자 또박또박 글을 써 내려갔다.


잘 참았어. 오늘도 너무 수고했어. 조금만 더 버티자.


버티기 싫었지만, 작은 염원을 담아 또박또박 적어보았다. 반복되는 문장들만이 빼곡히 채워졌다. 내 안에 갇힌 말을, 허공에라도 내뱉어놓아야 숨이라도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펜끝에서 흘러나오는 문장마다, 내 안의 분노와 좌절이 비릿한 향기를 띠었다.


얼마 전 다운로드해둔 마음돌봄 어플도 꺼내 보았다.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세요.’


화면 속 애니메이션은 친절했지만, 현실의 공기는 무겁기만 했다. 가만히 누워 버튼 하나 눌러본다.

‘5분 호흡 명상 시작’


타이머가 돌아가는 동안, 나는 또 다른 벽에 부딪히듯 숨을 들이켰다 토해냈다. 잔잔한 목소리는 곧 잦아들었지만, 내 안의 불안은 어째 더욱 커져만 갔다.


아무리 노력한들. 내 안에서는,


“이게 진짜 도움이 되는 거야?”


따위의 의심이 항상 자리잡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전해진 위로의 말은 다시 고요 속으로 흩어졌고, 돌아온 건 바로 이 침묵이었다.

나는 손에 든 모든것을 내려놓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손에 쥔 스마트폰의 잔상만이 남아 있었고, 무거운 현실은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내게 필요한 건. 바꾸고 싶다는, 혹은 바뀌어야 겠다는 움직임이었다는 걸,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즈음 나는 깨달았다.


버티는 것만이 답이라 여겼던 내가 오히려 나 자신을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넣고 있었다는 걸.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은
누군가의 부당함을 은폐하려는 말장난일 뿐이었다.

정말로 의문이 생겼다.

> “정말 그냥 버티는 게 답인가?”


슬슬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