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움 문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잘못은 없지만, 책임은 내 몫

by 라온




사건은 늘 사소한 데서 시작됐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아침부터 체감 온도가 영하였고, 출근길 버스는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어김없이 귀는 울렸고, 심장은 마치 다른 박자로 뛰는 것처럼 불규칙하게 쿵쾅거렸다. 매우 막히는 출근길. 그 와중 지각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몇 정거장 앞에서 내려 나름대로 빠르게 걸었더랬다.


손끝이 얼어붙은 채로 출근 카드를 찍었다. 다행히 제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은, 늦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칭찬을 건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 아침, 내가 깨닫지 못한 사실 하나. 그날은, 태움의 불길이 조용히 내게 번져오는 날이었다.








“저거, 왜 이렇게 정리해 놨어요?”


한마디로 시작된 공격은, 줄줄이 꼬리를 물었다. 사실 그 정리는 어제, 그 선배가 시켜서 그대로 한 거였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나 익숙한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고, 익숙한 목소리로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다. 입꼬리를 내리지 않고,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최대한 자극하지 않게, 내가 배운 ‘생존자세’를 유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유난히 날카로웠다.


“도대체 왜 말을 못 알아들어요?”
“이해력이 부족한 건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네 진짜.”


그런 말들을 들을 때면, 가슴속 어딘가에서 ‘지금 당장 뛰쳐나가야 해’라는 신호가 빨간 불처럼 반짝였지만 나는 한 번도 뛰지 않았다.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도 내 잘못이 될 거라는 걸 이미 수차례의 경험으로 학습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설명’이 아니라 ‘발산’이었다. 그날의 피로, 짜증, 감정 쓰레기통. 그걸 받아주는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내가 진짜 잘못을 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어쩌다 그날, 그 시간에, 그들의 기분을 건드렸을 뿐이다. 이상하게도, 그들이 나를 혼낸 뒤엔 어쩐지 개운 해 보이고 기분도 좋아 보였다. 웃고, 농담도 하고, 다른 동료들과는 다시 평소처럼 지냈다.


그게 더 힘들었다. 나는 마치 정리된 물건처럼, 잠깐의 사용 후에 다시 원위치로 버려진 느낌이었다. 혼날 이유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나를 자책했다.


‘혹시 내가 너무 무표정했나?’
‘눈을 피한 게 더 기분 나빴나?’
‘내가 말을 헷갈리게 했나?’


어떻게든 그 상황의 책임을 나에게서 찾으려 했다. 그래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반복되면, 사람은 점점 자기자신을 없애기 시작한다. 그랬기에 나는 존재감을 줄이기 위해, 점심시간에도 혼자 있는걸 선택했다. 눈치 주는 사람도 없고, 불필요한 질문도 없으니까. 혼자 있는 건 외롭지만, ‘타깃’이 되지 않는 법이었다.


한 번은 정말 용기 내어 말했다.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돌아온 말은 이랬다.


“그게 문제예요.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른다는 거.”


만약 그들 말대로, 그런 이유로 신경질을 냈던 거라면 제대로 가르쳐주면 될 일 아닌가. 황담함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더 이상은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정말로, 하루에도 몇 번씩 사직서를 쓰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그 상상은 늘 책상 서랍 앞에서 멈췄다. 내 이름이 적힌 봉투 하나를 손에 쥐는 순간, ‘그다음’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두면 어디로 가야 할까. 또다시 몇 개월을 집에 틀어박혀야 할까. 그 모든 불안과 두려움은, 선배의 꾸짖음보다 더 날카롭게 나를 찔러댔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렇게 힘들면 그만둬야지.”


하지만 그 말엔 아무런 맥락도 없다. 가진 것도, 쌓아둔 경력도 별로 없던 스물다섯의 나는, ‘그만둔다’는 선택이 곧 ‘아무것도 되지 못한 실패자’로 낙인찍히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또다시 엄마의 한숨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다. 사직서를 던지는 대신 꾸역꾸역 참고, 어거지로 버티었다.


오늘만 넘기면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 섞인 자기 위로로 하루를 지우고,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착각으로 일주일을 지웠다. 그렇게 나를 ‘지우는 방식’으로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날이 길어질수록, 나는 나 자신과도 싸울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고칠 힘이 없어서.


그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지 않기 위해, 말없이 웃는 법만 배웠다.


슬픈 건, 그게 꽤 능숙해졌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내 병을 한층 더 키워 버렸다. 아마도 90%의 확률로 그 모든 스트레스가 원인인 듯싶다.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고, 마음은 점점 침묵을 배워 갔으니까.


아무도 내 편이 아니라는 절망감 속에서, 겨우 붙잡고 있던 '평범'의 일상이 또다시 무너져갔다.


그렇게 내 20대의 병원 인생 5년 만에, 큰 전환점이 찾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