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용기
스물아홉.
하다 하다 이젠 직장 내 따돌림까지 당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치과에서 병원코디네이터로써 새로이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병원에서 일하게 된 지 어언 9년여. 그쯤 되면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나에게 병원은 여전히 지옥 같은 공간이었다. 정말 꾸준히도 적응 못한 채 20대 후반이 되어 버린 나는, 일생일대의 사건을 겪게 된다.
장담하는데. 그곳에서 지낸 1년이, 내 직업을 바꾸는 데에 한몫했을 것이다.
6개월쯤 지났을 때였을까. 과도한 업무와, 의사의 돼먹지 못한 갑질로 인해 직원이 수시로 바뀌는 와중에도 나는 부득불 살아남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껏 다닌 다른 그 어느 곳과 비교해도 이 정도면 양호 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눈치채 보니, 불과 6개월 만에 나는 어느새 그 치과에서 제일 오래 일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젊은 직원이 구해지지 않는 곳에서 남은 방도는, 40대 이후에 나이 많은 직원들을 뽑는 일이었고. 채용된 직원 4명은 모두 중년의 나잇대였다.(나까지 직원 총 5명)
거기서부터다. 새로운 지옥이 열린 것이.
제일 오래 일했어도 아직 20대였던 나는, 코디네이터 특성상 늘 앉아서 상담 위주의 업무를 했고. 그분들은 모두 진료실에서 왔다 갔다 바삐 움직여야 하는 일을 맡아 왔다. 개인병원인지라 직원들이 청소며 정리를 모두 해야 했는데, 그 부분에서 드디어 사달이 난 거다.
자연스레 쓰레기를 정리하는 나 보란 듯이, 넷은 말이라도 맞춘 듯 의자에 기대어 앉아 다과를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에 당연히 나는, 같이 정리하자고. 지금까지도 그래 왔다고. 해야 될 말을 전달했다. 그때쯤부터였다.
그들은 똘똘 뭉쳐서, 철저하게 날 없는 사람 취급을 시작한다.
불러도 대답 없는 건 고사하고, 내가 등장하는 순간에는 입을 딱 다물며 자리를 옮기는 일이 빈번했다. 점심시간에도 자기네들끼리 깔깔 거리며 나가서 먹고 오고, 병원을 지키는 건 나 혼자가 되어 버렸다. 아, 저 사람들이 나잇값도 못하고 어린애를 왕따 시키는 거구나. 깨달은 찰나, 참 억울하고 서러워서 눈물이 다 났더랬다.
스무 살 때부터 힘들게 힘들게 여기까지 온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내가 왜 스물아홉의 나이에 직장에서 따돌림을 당하는지 영문도 모르겠고, 이 병원 속에 속한 그 모든 것들이 끔찍하게 역겨워졌다.
그날 이후로 병원 문을 열 때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치과라는 얼음집 안에는 딱딱한 의자와 반질거리는 바닥 타일, 그리고 네 사람의 서늘한 시선만이 남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뒤에서 훑고 지나가는 시선이 느껴진다. 입구부터 진료실까지 이어지는 그 길 위에서, 나는 나를 찾는 손길 대신 날 부르는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출근부에 이름을 다시 적고 나면 한숨이 새처럼 날아갔다. 손끝이 떨려 환자 차트조차 제대로 펼칠 수 없었다. 환자가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해도, 그 말을 듣는 내 귀는 이미 먹먹해져 있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은 초점 없는 눈빛과 꾹 다문 입술뿐이었다.
“오늘도 살아냈구나”라는 사소한 칭찬조차, 나는 스스로에게 건넬 수 없었다.
점심시간, 휴게실 문을 열면 네 사람의 웃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 안에 나는 없었다. 식판 위에 놓인 밥과 반찬은 어느새 무미건조한 시험지 조각이 되어 있었다. 한 숟갈 뜰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꺼져내리는 걸 느꼈다. “같이 먹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술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결국 나는 문 앞에 놓인 휴지곽만 끌어안고 돌아섰다.
오후 근무 때는 콜벨이 쉴 새 없이 울렸지만, 나는 온몸이 무거워져 발을 떼기조차 어려웠다. 드디어 한계가 온 거다. 가슴 한복판에서 피가 스며 나오는 듯했고, 나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얼어붙어 있었다.
스물아홉까지 버텨왔던 모든 날들이, 어느새 사소한 방어 기제가 되어 내 무너진 마음을 더 깊이 가두고 있었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이 병원의 벽이 나를 가두는 것도, 네 사람의 냉담함이 나를 외면하는 것도 모두 외부의 힘이 아닌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감옥이라는 것을. 벗어나면 그만이라는 것을.
‘나는 왜 여기에서 일하는가?’
‘과연 이 상황을 견디는 것이 옳은 일인가?’
머릿속 질문은 이제 멈출 줄 몰랐다.
다음 날 아침, 출근복을 꺼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약속했다. 이제 더는 버티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허락된 자리로 돌아가겠다고, 말이다.
아, 한 가지 더. 확신을 가지게 해 준 그들에게 차암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수많은 직원이 거쳐 간 6개월. 이후 투명인간이 된 6개월. 그 1년은 내 존재를 지워가며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이제는 지워진 나를 다시 꺼내어 완전한 나로 서게 할 시간이었다.
사직서를 쥔 손이, 다부진 용기를 낸다.
그렇게 나는, 내 나이 서른에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