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제2회 차의 시작
마지막 교대 근무실 문을 닫으며, 나는 간호조무사라는 이름표를 소리 없이 떼어냈다.
그 이름표를 내려놓는 순간, 나는 오래전부터 가슴 깊이 숨겨둔 소망의 불씨를 꺼낼 용기를 얻었다. 10년 동안 병동 복도에서 절망의 파도에 휩쓸렸던 내가, 이제는 요가 매트 위에서 내 몸과 마음의 파도를 가다듬을 차례였다.
때려치울 결심을 한 첫 주말.
나는 간호조무사로서의 무거운 근무복 대신 트레이닝복을 입고 동네 요가 스튜디오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바닥에 펼쳐진 매트 위에서 처음 맞이한 선생님의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상처를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바람 같았다.
‘숨을 들이마시고, 온몸에 차오르는 에너지를 느껴보세요.’
그 말이 귀와 폐 속에서 몇 번 굴러가다 그대로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첫 동작은 정말 너무나 단순했지만, 내 몸은 꿋꿋이 반항을 이어갔다. 허리와 어깨는 말라붙은 갈대처럼 부러질 듯 위태로웠고, 나는 그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를 내듯 소리에 집중했다. 들숨과 날숨 사이, 내 안에 고였던 무수한 긴장과 불안이 조금씩 부서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마치 10년간 병동 복도에서 멈춰 있던 물이, 누군가 수문을 열어주자 한꺼번에 흘러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매트 위에 멍하니 주저앉아 있을 때, 문득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아프지 않은 척, 강한 척’ 살아오느라 정작 자기 몸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것을. 환자의 맥박을 짚어주며 한순간도 놓칠 수 없다고 다그치던 손가락이, 정작 내 허리 부위의 통증조차 외면하고 있었다. 그 외면은 곧 자기 방치였고, 자기부정이었다.
그날 밤, 요가 센터를 나서면서 생각했다.
내가 간호조무사로서 억지로 연명해 온 단 하나의 이유는,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였다. 환자들에겐 미안하지만, 솔직히 이 이유가 제일 컸다. 평범하게 돈 벌고, 평범하게 일하고. 그런데 과연, 평범하다는 게 뭘까? 그게 맞나? 의문이 든 순간. 10년의 세월이 갑자기 무색해질 만큼, 그 의문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내 안을 파고들었다.
다음 수업부터 나는 매일 조금씩 아침 일찍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차트와 볼펜 대신 요가 블록과 스트랩을 들고, 병동 대신 햇살 가득한 거울 앞에 섰다. 호흡을 흉내 내는 내 숨소리가 처음엔 꽤나 어색했지만, 다른 회원들의 눈빛 속에서 반짝임을 발견하자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아 졌다.
아마도 병원의 피폐한 공기와는 치원이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매일매일 아프고, 짜증 내고, 배고픈 사람들만 보다가 막상 의욕 넘치는 에너지들을 접하려니 처음엔 적응하기 어렵기도 했다. 허공에 팔을 뻗으며 내디딘 한 걸음 한 걸음은, 병원 복도에서 내뱉었던 몇 천 번의 한숨보다 더 힘이 있었다.
지병 이슈로 인해, 넘어지길 수천 번. 다시 일어나는 것도 수천 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상 위의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은, 나를 기적으로 인도했다.
그 모든 일련의 과정들 이후에 어느덧 나는 요가 자격증을 손에 넣었고, 곧 취직한 센터의 한편에 ‘간호조무사 출신 요가 강사’라는 작은 소개 문구를 붙여 놓게 되었다. 그 문구를 볼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차가운 수면 아래 숨겨두었던 내 가능성이, 드디어 표면 위로 떠오른 느낌이었다.
지금도 가끔 병동 호출 벨이 귀에서 맴도는 날이 있다.
환자의 고통 앞에서는 여전히 심장이 철렁 내려앉지만, 요가 매트 위에서는 그 소리를 숨을 고르는 리듬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 할 따름이다. ‘참아내기만 한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다’라는 사실을, 나 자신과 회원들에게 매 순간 증명해 보이고 싶다.
간호조무사에서 요가 강사로의 전환은, 나에게 단순한 직업 변경이 아니었다.
‘나를 돌보는 법’을 배워 다른 이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길이었다. 절망 속에서 발견한 한 줄기 빛을 결국 놓쳐 버렸다면, 요가 매트 위에서 만난 나만의 평온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침내 나는, 두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되었다. 병동의 절망과 요가의 희망을 하나로 꿰어 내일도 누군가의 몸과 마음에 닿을 손길을 준비한다. 그 손길이 작은 위로가 되고, 나 자신에게 주었던 용기가 그대로 누군가에게 전해지기를, 그저 간절히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