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려치울 결심

참는 것만이 답은 아님을.

by 라온




자그마치 10년. 그 모든 괄시와 멸시를 버틴 시간이었다.

처음엔 견디면 언젠가 나아질 거라 믿었다. 하루하루가 폭풍 전야 같아도, 언제 지나갈지 모르는 비바람 앞에서 몸을 숙이고 있으면 언젠가는 숨 통로가 열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10년쯤 지나자, 그 비바람은 점점 더 거세졌고 내 몸은 절망 속에서 갈가리 나뉘었다. 체온계는 영하로 떨어졌고, 심장은 폭염 속 얼음덩어리처럼 무겁게 뛰었다.


어쩌면 나답게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꾹 참았을지 모른다.






간호조무사로서 환자의 손을 맞잡고 따뜻한 위로를 전하던 순간들이 있기에, 눈앞에 놓인 쓰레기봉투 하나 정리하는 일조차 당연한 업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당연함’은 독처럼 내 안을 갉아먹었다. 아프다는 것을 감추고, 무능하다는 평가를 삼키며, 그저 ‘버티기’만이 나의 역할이라는 늪에 빠졌다.


솔직히, 10년쯤 병원에 찌들었으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갈수록 힘만 드는 현실에 현타가 왔더랬다.


처음엔 환자 한 분을 살려냈다는 보람으로 버텼건만, 나중엔 사소한 실수 한 번에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복도 끝의 호출 벨 소리는 죽음의 심벌처럼 들렸고, 동료의 이름 모를 수군거림은 끊임없이 귓속을 맴돌았다. 그 ‘관심’ 앞에서는, 매일이 전투였다.


더 이상의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음을. 꽤 한계가 왔음을 뼈저리게 느끼고서야 비로소 결심했다.

‘이러다 죽는다.’

그 단순한 문장이 떠오르는 순간, 나는 오래도록 숨을 멈춘 듯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그동안은 너무 오래 참아왔다고. 이제는 내 인생이 좀 달라져도 괜찮지 않겠냐고 끝없이 외쳐댔다.


아, 그러고 보니 얻은 게 있긴 있었다.


이제 어지간한 상처 앞에서, 크게 낙심하지 않는 멘털 갑옷. 그만큼 단단해진 마음. 그리고. 흔들리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서게 만든 회복탄력성. 이건 분명 나의 큰 자산으로 남아 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생각했다.

“내가 이런 것도 버텼는데, 못할 이유가 뭐야?”


그즈음 시작한 것이 요가였다.






처음 매트 위에 서자마자 허리와 어깨가 뻣뻣하게 굳어있는 걸 느꼈다. 숨을 크게 들이켰다가 내쉴 때마다, 온몸 구석구석에 갇혀 있던 긴장이 하나둘 풀려 나갔다. 워밍업 동작에서 발끝을 쭉 뻗는데, 마치 수십 겹의 껍질이 벗겨지는 듯한 생경한 해방감이 밀려왔다. 첫 수업이 끝나고 나서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눈가에 맺힌 땀방울이 달빛처럼 반짝였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제까지 너무 오래 내 몸을 잊고 살았구나.’

선배들 눈치만 보느라, 병동을 뛰어다니느라, 마음을 숨기느라. 정작 내가 살아 있다는 존재감을 내 몸에 새기지도 못했다. 꾸준히 요가를 하면서, 나는 조금씩 변해갔다. 처음에는 간단한 코브라 자세도 허리 통증 때문에 서있기 버거웠지만, 몇 주가 지나자 허리가 풀리며 고개가 자연스레 하늘을 향했다.


호흡을 가다듬을 때마다 머릿속 잡음이 한 줄기 바람 소리로 바뀌었고, 어느 날 문득, 나는 병원 복도 한가운데서도 그 평온함을 떠올릴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몸이 유연해지자, 마음도 함께 유연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묻어나는 쓴웃음과 무심한 수군거림이 이제는 칼날이 아닌, 지나가는 나뭇잎 소리처럼 가벼웠다.


물론 여전히 아픈 순간은 있었다. 마음 구석 어딘가에서 ‘나는 왜 그토록 힘겹게 버텨야 했나’라는 목소리가 간간이 새어 나왔기 때문이다. 후회해 봤자 어쩔 수 없지만. 허무하게 흘러간 내 지난날들이 너무너무 아까워서.


하지만 요가는 그 질문을 부드럽게 막아주었다.

“이제 너 자신에게도 관대해져도 괜찮아”

매 동작마다 내 안의 작은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였다. 그 말은 마치 오래된 그림자를 몰아내는 등불 같았고, 나는 그 빛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요가와 함께 작은 목표도 세웠다. 오늘은 차트 정리를 맡지 않고, 신입 간호조무사에게 자리를 양보해 보기. 내가 먼저 “도와줄까요?”라고 말해보기. 그 사소한 변화들이 쌓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어졌다. 버티기의 끝은 포기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는 시작이라는 걸 배웠다.






10년 동안 병원에서 주입된 ‘참아내야 한다’는 메시지는 이제 더는 나를 묶어두지 못했다. 나는 단순히 ‘버티는 사람’이 아닌, 내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설정하는 존재가 되었다. 요가 매트 위에서 내려온 나는, 바로 그 자리에 서서 스물아홉의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내가 진짜로 꿈꾸던 일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어떤 불편함보다도 ‘내가 나에게 해준 용기’가 더 크게 다가왔다.


딱 서른. 인생의 전환점이 된 시기에 최대 고민은, 두 개의 길 중에 하나를 고르는 일이었다. 그 와중에 분명한 건. 10년간의 버팀목이, 이제는 나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줄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