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요즘 나는 요리학원에서 퓨전 한식 디저트, 그러니까 떡 수업을 듣고 있다. 그동안 반찬과 국은 많이 만들어 보았지만, 후식은 여전히 낯선 영역이다. 이번 수업에서 배운 음식 중 하나가 ‘곶감단지’였다.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곶감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업 다음 날, 냉동실에서 꺼낸 곶감단지를 집사람과 나누어 먹으며 생각이 달라졌다. 칼로 자른 단면을 들여다보던 집사람이 말했다.
“이렇게 고소하고, 자른 단면이 이렇게 예쁠 수가…”
겉은 단단히 여며져 있었고, 자른 단면에는 빈틈없이 채운 속이 고르게 드러났다. 붉은빛 속에 견과와 씨앗이 또렷하게 박혀 있어 작은 정원을 들여다보는 듯 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곶감에 대한 인식이 조용히 바뀌었다.
나는 감나무가 있는 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당 한가운데 제법 큰 감나무가 서 있었다. 여름이면 잎이 무성해 짙은 그늘을 만들었지만, 나는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가족 중 유독 나만 쐐기벌레에 자주 쏘였기 때문이다. 팔이 화끈거리고 붓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래서 더위가 가실 때까지는 나무 가까이 갈 수 없었다.
늦가을이 되면 감이 하나둘 마당에 떨어졌다. 아침마다 그 감을 주워 깨끗이 씻어 쌀 뒤주 속 깊숙이 묻어두었다. 며칠 뒤 몰래 꺼내 보던 설렘. 단단하던 감이 어느새 부드럽게 익어 있었다. 차가운 과육이 혀에 닿는 순간, 달음이 천천히 퍼지던 기억. 그 맛은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겨울이 오면 감나무 주위에 물을 부어 얼려 썰매를 타기도 했다. 한 그루 나무가 사계절을 통째로 품고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우리는 그 집을 떠났다. 몇 해 뒤 큰 홍수가 나서 그 동네가 잠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연히 그 감나무도 함께 사라졌다. 그러나 쌀 뒤주에서 꺼내 먹던 홍시의 단맛은 아직 남아 있다. 어떤 맛은 장소가 사라져도 기억 속에서 계속 익는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며 명절이면 곶감을 선물로 받곤 했다. 우리가 모시는 제사가 있어 모양이 고운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주변에 나누어 주었다. 곶감은 단맛이 농축되어 있어 우리 부부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웠다. 수분이 많아 부드럽게 퍼지던 홍시와 달리, 곶감의 단맛은 쫀득하고 묵직하게 오래 머물렀다. 그래서 요리학원에서 곶감단지를 만든다고 했을 때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곶감단지를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꼭지를 떼고 씨를 제거한 곶감을 조심스레 펼친 뒤, 좋아하는 속 재료(잘게 썬 대추와 견과류등)를 고루 섞고 여기에 유자청이나 꿀등을 약간 더해 속을 만든다. 유자청이나 꿀등은 과하지 않게, 재료들을 묶어 줄 만큼만 넣는다.
곶감이 터지지 않을 정도로 속을 빵빵하게 채운 뒤 랩으로 단단히 말아 냉동실에 둔다. 차갑게 굳은 후 단면이 보이도록 썰면 알알이 박힌 견과와 씨앗들이 곶감의 짙은 주황빛과 또렷이 대비된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은 아니지만, 속을 채우는 순간만큼은 묘하게 집중하게 된다.
# 재료
반건조 곶감 6개, 호두 30g, 깐 땅콩 70g, 잣 30g, 대추 60g, 크렌베리 30g, 해바라기씨 40g, 호박씨 40g, 유자청 50g, 랩 적당량
# 요리과정
곶감을 준비한다.
곶감의 꼭지를 잘라낸 후 씨를 제거한다
깐 땅콩을 준비한다
호두를 준비한다
잣을 준비한다
깐 땅콩, 호두, 잣을 굵게 다져 섞는다.
다진 견과류를 마른 팬에 볶아 수분을 날린다
대추를 준비한다
대추씨를 제거하고 채 썬다.
크렌베리를 준비한다
크렌베리를 채 썬다
해바라기씨와 호박씨를 준비한다
유자청을 준비한다
견과류, 대추, 크렌베리, 씨를 섞고 유자청으로 농도를 맞춘다
완성한 '속 재료'
곶감 안쪽에 속을 빵빵하게 채운다
속을 채운 곶감을 랩으로 감싸고 냉동실에 보관한다
냉동실에서 꺼낸 곶감단지
곶감단지 외면과 속 단면
곶감단지 속 단면
맛은 생각보다 깔끔하다. 곶감 특유의 농축된 단맛이 먼저 오지만, 곧바로 대추의 깊은 향과 견과의 고소함이 받쳐 준다. 해바라기씨와 호박씨는 가볍게 톡톡 씹히고, 유자청은 뒤에서 은은한 산뜻함을 남긴다. 단맛이 앞서지 않고, 여러 재료가 서로를 누르지 않으며 어울린다.
곶감단지는 오래된 궁중 음식이라기보다는 전통 재료를 오늘의 방식으로 다시 빚은 현대적인 한식 디저트에 가깝다. 전통 재료가 지금의 식탁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동그랗게 ‘단지’ 모양으로 만들어 단면을 즐기는 방식은 분명 지금의 감각이다.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식탁에 맞게 다듬는 일, 어쩌면 그 또한 또 다른 전통이 되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사라진 감나무를 다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곶감단지를 한 조각 집어 들면 그 마당이 문득 떠오른다. 쌀 뒤주 속에서 천천히 익어 가던 홍시의 단맛도 함께 되살아난다.
어떤 맛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 속에서 오래도록 천천히 익어 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