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볶고 지금은 버무린다, 쭈꾸미

쭈꾸미 봄나물 샐러드

by 굳데이


나는 어린 시절 바다 가까이에서 자랐지만, 이상하게도 쭈꾸미를 먹어 본 기억이 없다. 그 흔한 해산물 중 하나였을 텐데, 우리 집 식탁에는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쭈꾸미를 처음 먹게 된 건 결혼을 하고 나서였다. 그전까지는 이름만 알고 있던 음식이, 어느 순간부터는 계절이 되면 떠오르는 메뉴가 되었다.


일산 신도시에서 잠깐 머물렀던 젊은 시절, 매년 봄이 오면 외곽에 있던 ‘솔향기’라는 식당을 자주 찾곤 했다. 그곳은 특별히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유명한 곳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해마다 그 계절이 되면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향하던 곳이었다.


식당의 쭈꾸미 볶음은 늘 보리밥과 함께였다. 그냥 먹기보다는 넉넉한 양의 보리밥에 비벼 먹는 게 더 익숙했다. 나는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그 매운맛을 포기하지 못하고 끝까지 숟가락을 놓지 않았다.


지금까지 또렷하게 남아 있는 건,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던 사람들이다. 형님네 가족과 우리 가족이 마주 앉아 아이들 이야기를 하고, 직장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잔을 기울이던 시간이었다.

그 식당에서는 이름처럼 은은한 솔 향이 도는 막걸리를 팔았는데, 그 맛은 지금도 불쑥 떠오르곤 한다.


당 문을 나서면 오른쪽 모퉁이에, 고구마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작은 방갈로가 있었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고구마를 손에 들고 오래 서성이다가 돌아오던 기억. 그 모든 장면이 하나로 이어져, 그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하나의 계절처럼 남아 있다.


10년 전쯤, 문득 그 식당이 생각나 집사람과 함께 찾아가 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더 이상 ‘솔향기’가 없었다. 식당이 있던 자리와 주변 일대는 한창 개발 중이었고, 기억 속 풍경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조금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서려다 일산 인근 원당에 같은 이름의 식당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다.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닮아 있었다. 그곳에서 다시 쭈꾸미 볶음에 밥을 비벼 먹으며 잊고 있던 시간을 잠시 꺼내 보았다.


쭈꾸미는 다양한 방식으로 먹을 수 있는 식재료다. 매콤한 양념에 볶아 먹기도 하고, 데쳐서 초장에 찍어 담백하게 즐기기도 한다. 삼겹살과 함께 볶으면 또 다른 풍성한 맛이 된다. 대개는 불 위에서 뜨겁게 익혀 먹는 음식으로 기억된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먹어보고 싶었다. 쭈꾸미를 조금 더 가볍게, 조금은 담백하게, 천천히 맛볼 수 있는 방법으로. 그래서 '쭈꾸미 봄나물 샐러드'를 만들기로 했다.


쭈꾸미는 손질이 중요하다. 먼저 쭈꾸미의 눈, 입, 내장을 제거한다. 손질한 쭈꾸미를 볼에 담고 밀가루를 넉넉히 뿌려 조물조물 힘 있게 문지른다. 빨판 사이에 남아 있던 갯벌의 흔적과 불순물이 밀가루에 흡착되어 깔끔하게 떨어져 나간다. 여러 번 헹궈 물이 맑아질 때까지 씻어낸다.


끓는 물에 소금 한 꼬집을 넣고 쭈꾸미를 넣는다. 뜨거운 열기에 닿는 순간, 쭈꾸미 다리가 꽃처럼 동그랗게 말려 올라간다. 30초에서 1분 사이, 그 짧은 순간에 건져내 찬물에 담가 남은 열기를 빠르게 식힌다. 이 과정을 거쳐야 쫄깃한 식감이 살아난다. 물기를 뺀 쭈꾸미는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쭈꾸미를 샐러드로 만들 때, 어떤 나물을 곁들일지 고르는 일은 작은 봄을 고르는 것과 같다. 아삭한 돌나물로 식감에 산뜻함을 더하고, 향긋한 참나물을 곁들인다. 미나리는 줄기가 부드럽고 향이 좋아, 쫄깃한 쭈꾸미와 특히 잘 어울린다.


초록의 나물 위에 쭈꾸미를 올리고, 유자나 레몬을 베이스로 한 상큼한 드레싱을 가볍게 더한다. 자극적인 양념에 기대지 않아도, 재료들은 각자의 맛을 내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이렇게 바다와 육지가 한 접시에 담긴, 싱그러운 봄의 한 끼가 완성된다.






# 재료


쭈꾸미, 봄나물(침나물, 돌나물, 미나리), 제철 과일(딸기, 방울 토마토), 오이

•드레싱 1 : 진간장 2T, 식초 2T, 유자청 2T,

다진마늘 1t, 후추 약간

•드레싱 2 : 다진 청.홍고추 2T, 다진양파 2T,

다진마늘 1개. 소금 1/2t, 꿀 1T,

식초 2T, 매실청 1T, 레몬즙 1T,

아보카도유 1T



# 요리 과정


쭈꾸미를 준비한다


쭈꾸미의 입, 눈, 내장을 제거한다


볼에 손질한 쭈꾸미를 담고 밀가루를 넉넉히 뿌려 조물조물 힘 있게 문지른다


손질이 완성된 쭈꾸미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쭈꾸미를 넣는다 (30초~1분)


건져낸 쭈꾸미를 바로 찬물에 넣어 식힌다


찬물에서 건져낸 쭈꾸미


봄나물을 10분간 식초물에 담가 두고, 깨끗이 씻는다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오이, 과일을 준비한다


오이, 과일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유자청으로 드레싱을 만든다


레몬으로 드레싱을 만든다


완성된 '쭈꾸미 봄나물 샐러드'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쭈꾸미 봄나물 샐러드'

* 쭈꾸미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드세요







완성된 쭈꾸미 샐러드는 생각보다 훨씬 산뜻하다. 쫄깃한 식감은 그대로인데, 매콤함은 한결 부드러워지고 봄나물과 어우러지면서 입안이 가볍게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


쭈꾸미는 타우린이 풍부해 피로 회복에 도움을 주고, 지방이 적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식재료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샐러드로 먹으니 몸도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예전에는 쭈꾸미를 볶아 먹는 음식이라고만 생각했다. 여럿이 둘러앉아, 뜨겁게, 조금은 정신없이 먹던 음식.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조금은 천천히, 조금은 덜어내고,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먹게 된다.


그때는 볶아 먹었고, 지금은 버무려 먹는다.


같은 쭈꾸미인데도 먹는 방식이 달라지니 그때와 지금이 다르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렇게 우리의 식탁도 조금씩 변해간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