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새우전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얻은 가장 값진 수확은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맞이하는 여유다. 어느덧 산에 오르기 좋은 계절이 왔다. 그 여유로운 흐름을 타고 집사람과 함께 가끔 청계산으로 향한다.
봄날의 청계산은 등산 그 이상의 생동감이 있다. 진입로를 따라 늘어선 노점상들이 파릇파릇한 상추와 향긋한 봄나물을 내놓기 때문이다. 그 싱싱한 초록빛에 홀려 걷다 보면, 평소보다 발걸음이 더 잦아지곤 한다.
집에서 전철로 딱 네 정거장. 청계산입구역 개찰구 광장에 들어서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등산객들의 활기로 가득하다. 차를 가져가는 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주차 전쟁을 치러야 하지만, 그 수고로움조차 설레는 여정의 일부가 된다.
우리의 등산 코스는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진다. 가볍게는 원터로 쉼터까지, 조금 더 욕심을 내면 매봉이나 옥녀봉까지 발을 뻗는다. 어느 길을 택하든 왕복 3시간 이내면 충분하니, 우리 같은 '도심 속 산책가'들에게는 이만한 낙원이 없다. 무리하지 않아도 기분 좋은 땀이 배어 나오고, 하산할 즈음엔 기분 좋은 허기가 찾아온다.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점심 식사다. 산 아래 즐비한 식당들은 늘 인산인해라 웬만한 곳은 30분 대기가 기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단정한 외관의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점심시간이 되기 한참 전이라 운 좋게 대기 없이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에서 시선을 강탈한 이름은 '산전수전(山煎水煎)'. 산에서 나는 돌미나리와 바다에서 나는 보리새우로 부친 전이라니, 이름 한 번 기가 막히게 지었다 싶었다. 여기에 식당에서 추천한 '부안애서 막걸리' 한 병을 곁들였다.
잠시 후 등장한 미나리 새우전은 밀가루를 아주 얇게 코팅하듯 입혀 재료 본연의 색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간장에 살짝 찍어 한 입 베어 무니, 산뜻한 미나리 향이 입안 가득 퍼지고 뒤이어 보리새우의 바삭하고 고소한 식감이 따라붙는다. 부드러운 막걸리가 목을 타고 넘어가면 전이 생각나고, 전을 먹으면 다시 막걸리가 당기는 그야말로 '뫼비우스의 띠' 같은 맛의 굴레에 빠진다. 넉넉한 대용량 막걸리(900ml)를 아내와 나누다 보면, 어느덧 대낮의 취기가 얼굴에 발그레하게 머물기도 한다.
사실 우리 집 근처에도 보물 같은 막걸리 맛집이 있다. 집사람과 가끔 들러 해물 파전에 '무영 막걸리'를 마시는 곳이다. 이곳은 주인이 직접 빚은 수제 막걸리들도 함께 선보인다. 특히 무영 막걸리는 기분 좋은 산미와 섬세한 향을 품고 있어, 투박한 사발보다는 작은 잔에 따라 홀짝이게 된다. 마치 잘 숙성된 와인을 음미하는 듯한 우아한 경험이다.
청계산에서 맛본 그 강렬한 '산전수전'의 기억을 잊지 못해, 결국 집에서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미나리전에 올릴 수 있는 재료는 무궁무진하다. 새우가 바삭함의 정점을 보여준다면, 오징어나 바지락 살은 입안을 즐겁게 하는 쫄깃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가끔은 차돌박이를 얇게 썰어 넣어 고소한 기름기로 미나리의 쌉싸름함을 부드럽게 감싸기도 하고, 팽이버섯이나 감자채를 섞어 아작거리는 식감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어떤 부재료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매번 새로운 맛이 탄생하니, 주방에서의 실험은 등산만큼이나 즐거운 여정이 된다.
먼저 싱싱한 미나리를 5cm 길이로 가지런히 썰고, 새우는 마른 팬에 살짝 볶아 비린내를 날려 고소함만 남긴다. 미나리전의 핵심은 주객이 전도되지 않는 반죽에 있다. 튀김가루는 재료들이 서로를 겨우 붙들고 있을 정도로만 아주 적게 넣는다. 충분히 달궈진 팬 위에 반죽을 얇게 펼친 뒤 그 위로 새우를 아낌없이 올린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노릇하게 구워내면, 비로소 산과 바다의 풍미가 응축된 나만의 '산전수전'이 완성된다.
# 재료
미나리 200g, 두절새우 80g, 고추 2개, 튀김가루 120g, 물 160 ml, 빵가루 1Ts, 소스(진간장 1Ts, 물 1Ts, 식초 1/2Ts, 통깨 약간)
# 요리 과정
미나리를 식초 넣은 물에 10분 담가두고 깨끗이 씻는다
미나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3~5cm)
고추를 잘게 썬다
새우를 팬에 잠시 볶아 비린내를 제거한다
볶은 두절새우 (보리새우 대신에 식감 있는 두절새우를 사용했어요)
튀김가루를 볼에 넣는다.
물을 넣어 튀김가루와 반죽을 한다
볼에 미나리, 새우, 고추를 넣고 섞는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반죽물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반죽물을 올린다
반죽물 위에 빵가루를 뿌리고, 약간 노릇하게 익으면 뒤집는다.
완성된 미나리 새우전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미나리 새우전
소스를 만든다
미나리 새우전과 소스
막걸리 한잔
미나리 새우전과 막걸리
이번에는 청계산의 맛에 우리 동네 '무영 막걸리'의 우아함을 더해보기로 했다. 미나리 새우전 한 점에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니, 베란다 너머로 불어오는 봄바람이 청계산의 그것과 닮아있음을 느낀다. 산에 오르고, 맛있는 것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과 잔을 기울이는 일. 거창한 성공은 아닐지라도 퇴직 후 마주한 이 소박한 '산전수전'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의 맛이 아닐까.
기분 좋은 취기가 차오른다. 올해의 봄은 그렇게, 입안을 통해 먼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