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첫날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엄마에게서 그날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활달한 성격의 엄마였지만, 엄마의 첫날밤 이야기를 하는 건 아마도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그날은 나의 큰딸 결혼식을 앞두고 함을 받는 날이었다.
큰딸은 엄마의 첫 손주였다.
오 형제 중의 셋째였던 내가 언니와 오빠보다 먼저 아기를 낳았던 터에 엄마는 나이 오십이 세에 할머니가 되었다.
엄마는 첫 손주를 얼마나 예뻐하고 귀여워했는지 손에서 아기를 내려놓지 않을 정도였다.
그랬던 아이가 커서 시집을 간다니 얼마나 좋았을까.
엄마는 매일 전화를 해서는,
"그래, 궁금해서 전화했다. 오늘은 뭐 좀 했냐?" 하며 물어보곤 했다.
드디어 함을 받는 날.
우리 집에서 손녀사위의 얼굴을 처음 본 엄마는 손녀사위의 손을 맞잡고 오래오래 쓰다듬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함을 받고, 사람들이 돌아가고 식구들만 남게 되자 엄마는 문득 쓸쓸한 표정이 되었다.
엄마는, 입술을 몇 번 빨더니, 오래 묵은 상자를 여는 사람처럼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가마를 든 하인 두 사람과 심부름을 돕는 계집아이 하나를 데리고 열여덟 살의 여자가 시집을 왔어.
부잣집 막내딸로 자란 여자는 친구들과 웃고 얘기하며 노는 걸 좋아하던, 햇볕처럼 환한 성격이었지.
신랑은 사진으로만 봤을 뿐 얼굴 한번 본 적이 없었어.
그저, 나이는 동갑이며, '부잣집 3대 독자, 귀한 도련님'이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야.
첫 대면은, 혼례를 올리는 그날이었어.
신랑은 키가 훤칠했고 호리호리한 미남형이었어.
저 사람이 내 신랑이라는 실감은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잘생겨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혼례식이 어떻게 끝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없이 지나가고, 이윽고 밤이 되었어.
첫날밤.
밤이 깊은 방안에는 등잔불이 반짝이고, 고요한 침묵이 잠자리 날개처럼 폴락거렸지.
여자는 살짝 얼굴을 들고 앞에 앉은 신랑을 바라보았어. 신랑은 소리 없이 싱글벙글 웃고 있었어.
선하게 생긴 인상이, 낮에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잘 생겨 보였어.
만족한 여자는 살며시 웃었지.
여자의 웃음을 보았는지 신랑은 살짝 가까이 다가왔어.
여자는 살짝 뒤로 물러나 앉았어.
다시 신랑이 가까이 다가왔어.
가까이 다가 온 신랑이 웃으면서 머리에 손을 대려는 순간, 여자는 방문 틈사이로 들어오는 날카로운 빛 한 줄기를 보았어. 그리고 이내 등골을 타고 흐르는 서늘한 한기를 느꼈어.
그것은 느닷없이, 굵은 고드름 하나가 옷 속으로 떨어져 맨살을 찌르는 날카로운 오싹함이었어. 여자는 자기도 모르게 진저리를 치며 신랑을 올려다보았어.
방금 전 보았던 선하고 온화한 표정의 신랑은 사라지고, 웃고 있는 신랑의 입꼬리가 갑자기 비틀리며 기묘한 형상이 되어 온 방안을 빙빙 맴돌았어.
순식간에 방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고, 여자는 어지럽고 숨이 가빠졌어.
그날 밤,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두려움에 여자는 기절을 하고 말았어.
그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어.
낮에는 그렇게 다정하고 사분사분한 도련님인데, 밤이 되면 이상한 그림자가 신랑을 덮었거든.
그런 일이 한 사흘 밤 계속되었다가 슬그머니 사라졌어.
그러나 그 그림자는 여자의 마음속에 깊은 두려움을 남겼고 , 여자는 밤이 오는 게 무서웠어. 그렇다고 그런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는 없었어.
신랑은 여자를 좋아했어.
여자도 신랑을 좋아했지.
늘 함께하면서 책을 읽어주거나 지난 얘기들을 자분자분 들려주곤 했어.
여자도 신랑과 함께 얘기를 하고 손을 잡고 산책을 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
모든 게 꿈결같이 나른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지.
여자는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생각했어.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여자는 손녀의 결혼을 앞두고 이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잠깐 이야기를 그친 후 이렇게 말했다.
"혼인날 귀신이 우리 사이를 질투해서 갈라놓으려고 농간을 부린 거야."
그 말을 하던 엄마의 표정에는 오래된 쓸쓸함과 분노가 함께 스쳤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엄마의 결혼은 사랑의 시작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과 맞닿아 있었음을.
"소중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