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이별

- 내님은 서울로

by 해피마망

어릴 때, 우리 집은 일 년에 제사를 열두 번이나 지냈다.

제삿날이 다가오면 고모들과 집안의 친척들이 모두 서울 우리 집으로 올라왔다.

친척 아주머니들은 삼일 정도 더 일찍 와서 음식을 만들며 제사 준비를 했다.

대청마루에서 맷돌로 녹두를 갈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시루에서 서너 가지 종류의 떡을 차례로 쪄냈다.

아주머니들이 마루에 둘러앉아서 수십 가지의 부침개를 부치기 시작하면,

나는 마루 끝 방문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이불도 덮지 않고 누운 채로 아주머니들의 곁에서 조용히 얘기를 들었다.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는 밤이 깊도록 끝이 없이 이어졌다.

가령,

"우리 집 지붕에는 커다란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살고 있잖여. 근데 하루는 이 구렁이가 마당으로 툭 떨어졌지 뭐여. 다행히 죽지는 않았구만. 그려서 얼른 지붕으로 올려줬다니께. 얼매나 놀랐는지 몰러"라고 누군가 얘기를 하면,

다른 아주머니는 손까지 휘저으며 맞장구를 쳤다.

"어이구~ 그 큰 구렁이는 업이여, 죽으면 안 돼야~"

"정선이네는 봄에 산에 나물을 뜯으러 갔댜. 오줌이 마려서 시냇물 옆에서 오줌을 누었디야.

근데 자꾸 배가 불러오더니 어느 날 애기를 낳았는데 뱜을 낳디야."

"에구, 징그러워라."

"산에선 아무 데서나 오줌 누면 큰일난다잖여어"


시간이 지날수록 이야기는 더 흥미진진했다. 급기야는 호랑이에게 물려간 이야기까지 나왔다.

나는 이 이야기들이 진짠지 아닌지 알쏭달쏭했지만, 그걸 물어보면 이야기 판이 깨질까 봐 아뭇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누구 한 사람이 노래 한 자락을 부르면 다 같이 따라서 합창을 하는데 그 소리가 또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밤이 깊도록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옛날 얘기에 빠져 온갖 상상을 하며 듣던 나는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제삿날마다 이렇게 풍성하고 신기한 이야기 속에 빠져드는 게, 마치 길고 긴 영화를 보는 거 같았다. 그래서 나는 제삿날이 좋았다.

그리고 이 이야기 속에는 엄마의 이야기도 있었다. 이때 듣는 이야기로 나는 엄마의 젊은 날들을 그려볼 수가 있었는데,

이때 내 나이는 일곱 살이었다.





시집을 온 이듬해에 신랑은 고향을 떠났다.

서울의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여자는 시집오기 전, 신랑이 학생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막상 신랑과 헤어져 지낼 생각을 하니 겁이 나기도 했다.

사람 좋은 시부모님도 외동 며느리를 살뜰하게 여겼다.

생활하는데 불편하거나 마음이 상하는 건 전혀 없었다.

여자보다 네 살 어린 멋쟁이 시누이가 간혹 말을 쌀쌀하게 하는 바람에 마음이 상할 때도 있긴 했지만 천성이 나쁜 건 아니라 지나고 나면 다 풀어지곤 했다.

그렇다 해도 이제 겨우 일 년 정도 함께 살았는데 이젠 남편 없이 이들과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걱정이 되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런 아내의 마음을 아는지 남편은 더욱더 살뜰하게 아내를 대했다. 밥을 먹을 때도 부모님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생선을 발라 숟가락에 얹어준다거나, 빨래라도 널을라치면 얼른 나와서 그 큰 키로 빨랫줄에 빨래를 너울너울 널어주기도 했다.

손을 잡고 밤마실도 다니고, 나무 그늘에 의자를 나란히 놓고 앉아 시를 읊어주기도 했다.

신랑은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둘이 있을 때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여자를 웃게 만들었다.

그런 다정한 신랑이 여자는 고맙고도 좋았다. 워낙 활달한 성격에 놀기 좋아하는 밝은 성격의 여자였지만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자기가 요조숙녀가 된 듯 조신하게 행동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아직 아기가 없는 여자는 시댁에 남고, 신랑은 서울 종로에 있는 큰 시누이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남편이 짐을 싸는 저녁나절에, 여자는 방 안에 앉아서 그저 물끄러미 신랑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한편으로는, 아무리 공부를 한다고 쳐도 시집온 지 이제 일 년밖에 안된 아내를 두고 떠나는 신랑이 서운하기도 했다. 서러운 마음에 여자는 슬그머니 방을 나와 마루 끝에 걸터앉았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유난히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라보자니 문득 시집오기 전 생각이 났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친구들이랑 나란히 누워서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별 하나 나 하나, 별을 세던 시절이었다.


별빛은 따스했지만 마음은 시리도록 서러웠다.

여자의 눈망울에 별빛 같은 것이 반짝였다..







해피마망의 연작 소설 : 그리운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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