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 끝내 멈추지 않은 울음

- 이런 모습 처음이야

by 해피마망


그즈음, 엄마의 외출이 잦아졌다.

‘회당’이라는 곳에 다녀온다고 했고,

가끔 나도 데리고 갔다.

그곳은 기름 냄새와 향 냄새가 섞여 있었고,

아무것도 없이 휑한 마룻바닥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다 같이 눈을 감고 무언가를 읊조렸다.

나는 그 사이에 앉아, 사람들이 앉은 채 마룻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는 모습과

엄마의 옆모습을 몰래 올려다보았다.

엄마의 얼굴은 낯설 정도로 평온했지만,

이상하게도 무표정했다.


사람들은 모두 두 손을 모은 채,

“옴마니 밤메훔”을 천천히, 끝없이 되뇌었다.

그 소리는 처음엔 낮은 물결처럼 들리다가

점점 커져서 회당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그 울림이 마치 바람이 없는 날의 파도 같다고 생각했다.

멈추지 않고, 끝나지 않는 소리.


엄마는 그 사이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가느다란 목선을 따라 땀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렸고,

입술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게 움직였다.

나는 엄마가 기도하는 얼굴을 그때 처음 보았다.

그 얼굴은 엄마의 얼굴 같지 않았다.

부드럽고 따뜻하던 엄마가 아니라, 딱딱하게 굳은 채 아득한 곳을 바라보는 어떤 낯선 사람 이었다.


기도가 끝나면, 사람들은 서로에게 합장하며 인사를 했다.

엄마도 그랬다.

“수고하셨습니다.”

낯선 웃음이 얼굴에 번졌다.

나는 그 웃음이 싫었다.

집에서의 엄마 웃음과는 달랐다.

그곳의 웃음은 빛이 없고, 무언가에 홀린 듯 허망해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좋았어? 조용하고, 마음이 편해지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신발끈이 풀린 척, 고개를 숙였다.

엄마의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끝이 따뜻한데, 왜인지 나는 울고 싶었다.


그날 밤,

부엌 쪽에서 다시 그 주문이 들렸다.

“옴마니 밤메훔… 옴마니 밤메훔…”

방안의 창문으로 희미한 달빛이 비치었다.

나는 현이 옆에 누워서, 한숨처럼 낮게 들려오는 엄마의 "옴마니 밤메훔"을 들었다.

이렇게 듣는 엄마의 옴마니 밤메훔은, 아버지가 없는 오늘밤 만큼이나 공허하게 느껴젔다.

아버지는 집안에 없었다.

출장을 가셨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가 호두과자나 장난감 같은 선물을 사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아버지의 귀갓길은 빈 손일 때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2학년이 되고, 5월의 어느 날.

그날은 내가 오후반이어서, 다섯 시가 채 안돼서 집에 돌아왔다.

웬 여자가 진이방에 앉아있다가 내가 마루로

들어서자 방문 사이로 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언니방에 있는 사람이 누구야?" 하고 물었다. 그러나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현이의 머리만 빗겨주었다.

나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며 진이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자 여자는 재빨리 문을 닫고는

내 손을 잡아끌며 자기 앞에 나를 앉혔다.

나는 앉은 채 엉덩이를 움직여 뒤로 물러나 앉으며 여자를 바라보았다.

하얀 블라우스에 검정치마를 입은 여자의 허벅지가 눈에 띄었다.

"얘, 니 이름이 선이니?"

여자는 내 손을 잡으며 물었다.

"근데 누구세요?"

여자는 내 물음엔 대답도 하지 않고는 방안을 휘 둘러보며 또 물었다.

"여기는 진이 방이구나.

진이 언니는 공부 잘해?"

나는 여자의 말에 몹시 기분이 나빴다.

뭔데 이런 질문을 하는 거야.

내가 묻는 말엔 대답도 안 하면서.

여자의 붉은 입술이 더 싫었다.


우리 집엔 현이를 봐주거나 집안일을 해주는

식모가 몇 번 있었다.

대개는 진이보다 나이가 다섯 살 정도 많았지만 어떨 땐 엄마 또래의 아줌마도 있었다.

나는 이 여자도 필시 우리 집 일을 도와주러 온 식모인가 생각했다. 근데 식모치고는 꽤

말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안방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문이 닫혀 있었지만,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아버지의 낮은 음성이 엉켜 흘러나왔다.

나는 마루에서 책가방을 챙기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들고있던 책을 놓쳐버렸다.

그때 진이방 문이 열리고

그 여자가 내 쪽으로 다가와 내 귀에 대고 말했다.

“가서, 엄마 아버지 사랑싸움 그만하세요~

그렇게 말해.”

나는 깜짝 놀라서 여자를 바라보았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

식모 주제에, 감히 우리 엄마 아버지 일에 끼어들다니.

“뭐라고요? 식모 주제에 무슨 말이야?”

나는 그렇게 내뱉고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엄마가 방에서 뛰쳐나왔다.

엄마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고,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엄마는 여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네가 감히 여길 왜 와!”

엄마의 외침에

그 여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진정하세요, 사모님.”

“사모님은 무슨 사모님이야~~”


둘은 순식간에 머리채를 잡고 뒤엉켰다.

싸움은 마루를 넘어 마당까지 번졌다.

"이거 놓으세요~"

"니가 뭔데, 니가 뭔데 감히~~"

엄마는 거의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나는 내 앞에 벌어진 광경을 보면서

몸이 얼어붙은 듯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나는 도무지 현실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뛰어나왔다.

“그만해! 이게 무슨 꼴이야!”

아버지가 뜯어말렸지만

엉겨 붙은 두 사람은 서로에게 집요했다.


갑자기 엄마는 마당 한가운데에 퍼질러

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나를 치다니… 하늘같이 믿었던 서방이 나를 때리다니!

왜 나를 쳐, 왜 나를 말려어~!”

그 울음은 마당을 가득 메웠다.

문간방 아줌마가 놀란 얼굴로 뛰쳐나와 엄마 옆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서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저렇게 마당을 뒹굴며 악을 쓰며 울고 있는 엄마도, "그만해, 그만해~!" 하면서 두 여자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아버지도.

이런 상황이 내 앞에서, 우리 집에서 벌어졌다는 것도...


귀에서는 엄마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어른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 몸이 먼저 굳어버리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무너진 건 집 안의 평온만이 아니었다.

나는 '어른의 싸움’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마음속 어딘가가 꺼멓게 타버린 것 같았다.

내 안에서 믿고 있던 세계도, 그날 함께 무너져 내렸다.


어른들의 싸움은 끝났지만,

그날의 울음은 아직도 내 안에서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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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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