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이상한 것들

- 사라진 돌잔치

by 해피마망


저녁에 아버지가 돌아오고 집에는 긴장감이 자욱했다.

진이는 자기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고, 철이는 엉거주춤한 모양새로 자기 방 문 앞에 서있었다.

형이는 언제 동건이에게 자동차를 주었는지 동건이와 똑같은 자동차를 들고 자꾸만 동건이를 툭툭 건드렸다.

동건이는 얼굴이 굳은 채로 형이의 장난에도 거의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동건이를 쳐다보며,

"오느라 애썼다."

"밥은 먹었어?"

물었지만 대답은 듣지 않고 그냥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버지가 들어가자 나도 재빨리 진이방으로 건너갔다.

"야~ 들어오지 마! 나가 빨리~"

진이는 나를 보더니 매우 신경질적으로 손을 내저었다.

"조용히 동화책만 볼게 언니~"

나는 한층 기가 죽어서 개미소리만 하게 말했으나 진이는 단번에 거절했다.

"안돼! 나 지금 화났단 말이야. 빨리 나가!"


진이는 학교에서 돌아온 후부터 내내 기분이 안 좋았다.

"얜 누구야? 야, 너 누구냐?"

진이는 동시에 물었다.

엄마는 잠시 진이의 손을 잡더니 안방으로

진이를 데리고 들어갔다.

"뭐라고? 그게 말이 돼 엄마!"

진이의 날카로운 소리가 크게 울렸다.

"난 싫어!, 당장 가라고 해!"

진이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 나왔다.

"아버진 미쳤어, 엄만 어떻게 그걸 받아들여?"

진이는 울었다.

아주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진이가 오기 전, 엄마는 철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나와 형이를 철이와 함께 불러 앉혔다.

동건이도 앉으라 하고, 기침을 한번 한 후에

우리들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그리고 난 후.

"얘 이름은 동건이야. 이 동건.

너희들 동생이야. 그동안 다른 데서 살았는데 이제부턴 여기서 우리랑 같이 살 거야.

세 살이니까 형이가 형이 됐네. 잘 데리고 놀아~"

동건이는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형이는 자기가 형이 됐다는 소리에 소리 없이 입을 헤~벌리며 좋아했다.

우리는 엄마의 말에 아뭇소리도 못하고 그저, "네..."하고 힘없이 대답할 뿐이었는데,

진이가 이렇게 거세게 나오자, 뭔 일인가 싶어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

진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간 후에는 책상에 엎드려 엉엉 소리를 내며 큰소리로 울었다.

그런 진이의 기분은 아버지가 왔는데도 풀어지지 않아서 나와보지도 않고 나도 들어오지 못하게 신경질을 부린 것이다.


집안의 공기가 싸늘해진 것은 시월이 깊어가는 탓 만은 아닐 것이다.

엄마는 동건이를 철이 방에서 자게 했다.

철이는 좋은지 싫은지 큰 내색 없이 그저 엄마가 하라는 대로 동건이를 자기 방으로 들였다.

동건이는 말이 없고 조용했다.

철이방의 아랫목이 동건이의 자리였다. 동건이는, 양반다리를 하고 두 손을 허벅지 밑에 끼워 넣은 자세로 늘 아랫목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 애의 그런 앉은 자세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볼 때는 꼭 할아버지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나 아버지는 동건이에게 말을 하는 때가 거의 없었다. 아니, 아버지와 엄마도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집에 오면 엄마는 말없이 아버지 밥을 차려주고, 아버지는 말없이 밥만 먹었다. 우리에게 반찬을 입에 넣어주는 일도 없어졌다.

큰소리는 한 번도 없었지만 나는 이런 집안 분위기가 몹시도 불편했다. 그래서 진이와 철이가 학교를 가고 아버지가 출근하고 나면 나도 아침밥을 먹은 뒤 집을 나왔다.

골목에서 또래 아이들과 놀다가 하릴없이 동네를 돌아다녔다. 어떤 때는 동네를 한참 벗어나 연흥극장이 있는 곳까지 가기도 했다.

연흥극장은, 영등포 로타리에 있는 꽤 큰 극장이었다. 가는 길에는, 엄청 큰 뱀을 유리병에 넣은, 뱀술을 파는 가게도 있고, 의족 의수라는 간판이 있는 이상한 가게들이 즐비했다. 나는 이 가게 앞을 지나가는 것이 좀 겁이 나기도 했지만, 저런 건 누가 어디에 쓰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러 가게 유리창에 눈을 가까이하고 들여다보면서 천천히 걸었다. 극장 앞에 와서는 상영 포스터 등을 보면서 한참을 혼자 놀았다.


저녁이 되면 우리는 저녁밥을 먹고 철이 방에 모였다.

역시 동건이는 양반다리에 손을 집어넣은 자세로 아랫목에 앉아있었다.

우리는 동건이 주변으로 모여서,

"야~ 너 몇 살이냐?"

"너 어디서 살다 왔는데?"

"니네 엄마는 누구야?" 등의 질문을 퍼부었다. 그러나 동건이는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매일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 그러면 동건이는 소리 없이 울면서 눈물을 닦았는데 그의 손은 손등이 두꺼비처럼 매우 두툼했다. 나는 그 애가 그렇게 울어도 전혀 불쌍하지도 않고, 어린애가 소리 없이 우는 게 청승맞아 보여서 싫었다.

동건이가 우리 집에 온 지 한 달도 채 안 돼서 그 애는 사라져 버렸다.

지난번 분홍 한복을 입었던 그 아줌마가, 이번에는 투피스에 낮은 구두를 신고 와서는 동건이를 다시 데려갔기 때문이다.

동건이가 가버린 후, 우리 집은 다시 이전의 일상을 되찾은 듯했다. 진이의 신경질이 사라지고 엄마도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이는 돌이 되었지만 돌잔치는 하지도 못했다. 그저 엄마가 지은 한복을 입고는 사진관에 데려가 사진을 찍은 걸로 현이의 첫 생일을 지나가 버렸다.

나는 현이가 불쌍했다. 그러나 속이 상한 건 누구보다도 엄마였다.

엄마는 진작부터 현이의 한복을 직접 지으면서 현이의 첫돌을 준비했었다.

그리고 엄마가 쓰는 작은 공책에, 돌잔치에 초대할 사람들을 적어놓고, 만들 음식들도 적어놨었다.

집에 전화가 올 때마다 엄마는,

"네, 사정이 생겨서 현이 돌잔치는 못하게 됐어요. 네, 네. 다음에 오세요~" 힘 없이 말하다가 전화를 끊으면 "휴우~"하고 큰 한숨을 짓곤 했다.

우리들 역시 현이의 돌잔치를 기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돌잔치 때는 우리도 새 옷이 생기고, 손님들에게 선물도 받는 수지맞는 날이기 때문이다.

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잘 웃었지만 내 눈에는 그런 현이가 더 불쌍해서 현이에게 잘해줘야지 하고 결심을 했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봄이 오자, 나는 여덟살이 되었고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학교는 집에서 큰길을 두 번이나 건너야 했다.

나는 새 구두를 신고 가슴에는 손수건을 달고 입학식에 참석했다.

삼월의 운동장은 바람이 세찼고 몹시도 손과 발이 시렸다. 그래도 꼼짝 안 하고 서서 교장선생님 말씀을 들었다.

입학식이 끝나고 교문을 나설 때, 엄마는 손수건으로 내 코를 한번 닦아주고는 아무 말도 없이 손을 꼭 잡고 이층 중국집으로 데리고 가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켰다.

곱은 손으로 짜장면을 먹으면서도 맛이 좋은지 나쁜지도 몰랐다.

그저 말없이 짜장면을 먹는 엄마와 함께 있는 그 시간이 너무나 어색했을 뿐이었다.


그즈음 엄마는 '옴마니 밤메훔'이라는 이상한 말을 자주 중얼거렸다.

처음엔 그게 주문 같은 건 줄도 몰랐다. 밥을 지을 때도, 빨래를 널 때도, 엄마는 낮게 그 말을 되뇌었다.

"옴마니 밤메훔, 옴마니 밤메훔..."

그 소리는 기도처럼 들리기도 했고, 어떤 날은 한숨처럼 들리기도 했다.






해피마망의 연작 소설,

"소중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매주 월요일에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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