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바람이 불었다

- 동건이

by 해피마망

누군가 우는 듯한 소리에 설핏 잠이 깼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귀를 기울였다.

옆에서는 형이의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의 주인은 엄마였다.

엄마는 최대한 소리를 안 내려는 듯 입을 손으로 막고는 숨을 죽인 채로 간혹 '흐흑'하고 숨이 받치는 소리를 내었다.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몸이 얼어붙은 듯 손가락도 까딱할 수가 없었다. 숨소리가 너무 커서 엄마가 들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엄마가 우는 모습도 처음이었다.

일어나서 '엄마 울지 마'하고 엄마를 달래야 할지, 이대로 자는 척하고 있어야 할 지도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저 자는 척 눈을 감고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엄마의 숨소리가 끊어지고 방에서 부엌으로 드나드는 방문이 열리더니 엄마가 나가고 다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휴우~'하는 아버지의 깊은 한숨소리가 들려서 나는 다시 한번 깜짝 놀라 숨을 멈추고 말았다.


아침이 오자, 식탁에는 여전히 도시락 두 개가 놓였고 엄마는 말없이 진이와 철이의 도시락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얼핏 본 엄마는, 눈이 부어 있는 거 같았고 얼굴도 좀 부어있었다.

아버지는 아침밥도 거르고 말없이 집을 나갔다.

휑한 마루 위로 시월의 아침공기가 차갑게 지나갔다.

방에서 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엄마는 후다닥 방으로 들어갔다.

"이리 내~, 내 거야~~"

현이에게서 뭔가를 빼앗는 날카로운 형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장난감 권총을 든 형이가 부다다다다다~소리를 내며 마루로 뛰쳐나왔다.

엄마의 부은 얼굴과 아버지의 말없는 출근만 아니라면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아침이었다.


형이와 현이는 낮잠을 자고, 나는 진이 방에서 혼자 인형놀이를 하며 놀았다.

엄마는 이방 저 방을 다니며 빨랫감을 모으고 이불 홑청을 뜯었다.

그리고는 마당의 수돗가에서 빨래를 했다.

나는 갑자기 왜 엄마가 이불빨래를 하는지 의아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엄마가 진이방에 들어와 이불 홑청을 뜯을 때도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엄마를 쳐다보지 않았다. 어쩐지 엄마를 보는 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아버지는 열 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는 여전히 말이 없었으나 아버지에게선 포마드 냄새보다 술냄새가 나는 듯했다.

'응? 우리 아버지도 술을 먹나?'

아버지에게서 나는 술 냄새에 나는 갑자기 아버지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

진이와 철이가 학교를 가고 난 후에도 아버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는 형이와 현이를 데리고 마루로 나왔다.

나는 엄마랑 함께 있는 게 어색해서 진이방으로 건너가서 동화책을 읽었다.

엄마는 어제 빨았던 이불홑청을 다렸다.

그걸 보고 나는 슬그머니 현이를 진이방으로 데리고 와서 함께 놀았다.


한시가 되자 아버지는 마당으로 나와서 세수를 하고 좀 더 있자 철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엄마는 사과와 연시, 빵등을 쟁반에 담아

식탁 위에 올려놓고는,

"얘들아~엄마, 아버지랑 함께 나갔다 올게.

이거 먹고 놀고 있어~"

"철이는 형이랑 놀고, 선이야 현이 좀 부탁할게~" 라며 철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도 갈래~~"

형이가 권총을 팽개치며 엄마의 옷을 붙잡았지만 곧 철이가 형이의 손을 잡으며 말렸다.

"형이야~ 형이랑 스파이 놀이 하자~"

"아버지! 엄마랑 어디 가는데?

나도 갈 거야~"

아버지가 나오자 형이는 재빠르게 아버지에게 매달리며 물었다.

아버지는 그런 형이를 번쩍 안아서 무등을 태워주며 말했다.

"엄마 아버지는 오랜만에 영화 보고 올게.

형이랑 잘 놀고 있어. 아버지가 올 때 맛있는 거 사 올게. 알았지?"

나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한편으로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아버지와 엄마가 함께 외출을 하고 영화를 본다는 게 나를 안심하게 했다.

그리고, 그날밤 내가 본 건 별일이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는 대문까지 엄마랑 아버지를 배웅했다.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현이의 손을 잡고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엄마와 아버지가 영화를 보러 갔다 온 후,

집안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듯했다.

아버지는 퇴근 때마다 먹을 것을 사 왔고, 형이나 현이에게 고기나 생선등의 살점을 입에 넣어 주었다.

그런데도 나는 뭔가가 불편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생긴 건, 어느 날 아침에

엄마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진이와 철이가 차례로 학교를 가고, 출근하는 아버지를 배웅하러 나간 엄마는 대문 간에서 오래 서있었다.

그리고 한참 후 대문을 닫고 들어온 엄마는 아무 말도 없이 마루로 들어섰는데, 난 그때 엄마가 울었다는 걸 알았다.

엄마의 코가 빨갛고 눈가에는 아직도 눈물방울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얼른 형이와 현이를 데리고 진이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형이와 함께 스파이 놀이를 하며 큰 소리로 '부다다다~'입술을 부딪치며 총소리를 내질렀다.


그날 오후, 형이와 현이는 낮잠을 자고

엄마는 마루에 앉아서 현이가 돐때 입을

한복을 만들고 있었다.

다음 주 토요일, 시월 십이일이 현이 이었다.

나는 엄마 옆에서 색색의 실패들을 갖고 놀았다.

시월의 햇살이 따스하게 마루 깊이 들어와

실패에 머물렀다. 노란색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그때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바느질하던 손을 놓고 마당 쪽을 바라보았다.

나도 덩달아 마당으로 얼굴을 돌리고 "누구지? 떡장수 아줌만가?" 하고 쳐다봤다.

잠시 후, 분홍 한복을 입은 여자가,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마당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손을 놓은 채 꼼짝도 않고 앉아서

멍하니 바라볼 뿐 누구냐고 묻지도 않았다.

여자는 마루 가까이 오더니,

"저... 여기가 이현우 씨 댁이..."

몹시 어려운 부탁을 하듯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엄마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여자를 바라보더니

올라오라며 바느질하던 것들을 한쪽으로 치웠다. 나는 얼른 엄마 등뒤로 가서 앉았다.

여자는 아이를 먼저 올리고 마루로 올라왔다.

분홍치마 밑으로 하얀 버선발이 보였다.


마루로 올라선 여자는 아이의 손을 잡고 엄마 앞에 서서는 마치 세배를 하듯이 큰절을 올렸다. 아이도 함께 절을 했다.

절을 올린 여자가 다시 일어서 어쩔 줄 모르고 서있자 엄마는 앉으라고 했다.

"얘가 동건이에요. 세 살이고요."

"형님,.. 너무, 죄송합니다.."

여자는 거의 울 듯한 소리로 아주 자그맣게 말했다. 엄마는 아뭇소리도 하지 않았다.

"여기.. 동건이 태어난 날을.. 적어왔어요.

죄송.. 합니다.."

여자는 핸드백에서 작은 색동 주머니를 꺼내 엄마 앞으로 놓았다.

"동건이 아버지는 이제.. 만나지.. 않기로 했어요. 죄송해요.."

"후유~~~"

엄마는 큰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는 않았다.

여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았는데 조금씩 어깨가 들썩이고 옅게 우는 소리를 냈다.

눈물 한 방울이 마루 위로 툭 떨어지는 걸 나는 보았다.

동건이란 아이는 여자의 치마 끝을 잡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알았으니 이제 가보게나.

"아이는 내가 키우겠네 "

엄마의 말은 몹시 차가웠다.

그 낯선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나는 엄마 얼굴을 쳐다보았다. 화가 난 듯 굳어있는 표정과는 달리 엄마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여자는 일어나서 다시 한번 엄마에게 큰절을 했다. 이번엔 동건이라는 남자애는 절하지 않고 여자 옆에 서서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이 광경이 나는 몹시 불편하고 불쾌했다.

여자는 절을 하고 나서 동건이를 꼭 안았다.

"동건아.. 큰어머니 말씀 ... 잘 듣고 ..."

기어이 여자는 동건이를 붙잡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더 이상 부를 일도 없겠지만,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지 말게"

엄마는 벌떡 일어서서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혼자 남은 나는 어쩔 바를 몰라하다가 슬그머니 진이 방으로 건너와 버렸다.

우리가 없어져서인지 두 사람의 울음소리는 길게 이어졌다.

나는 문득,

'윗채 아줌마가 이걸 보면 어떡하지...'

혼자서 애간장을 태웠다.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책상 위에 펼쳐있던 진이의 영어 공책이 휘리릭하고 한꺼번에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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