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웃음과 아버지의 출장
오월의 햇살처럼 밝고 따스하던 나의 유년시절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네 살 때, 세 살 차이의 남동생 형이가(亨怡)가 태어나고, 그다음 해 우리는 영등포로 이사를 했다.
영등포의 집은 효자동 집보다 훨씬 컸다.
대문을 열면 윗채가 있는데, 윗채에는 세를 든 사람이 살았고, 우리는 방이 세개에 가운데 마루가 엄청 넓은 본채에서 살았다.
효자동집 마당의 세배가 넘는 큰 마당의 한쪽으로는 창고와 화단이 있었고, 화단에는 포도나무, 감나무, 칸나와 글라디올라스, 맨드라미등 온갖 화초가 자라고 있었다.
여름이 오면 언니인 진이와 나는 포도나무 밑에 큰 대야를 놓고 물을 받아서 물놀이를 하곤 했다.
우리는 그것을 포도나무 풀장이라고 불렀다. 풀장에서 놀다가, 그중에서도 색깔 있게 익은 포도를 한알씩 따먹기도 했는데 대개는 덜 익어서 신맛이 강했다. 그래도 까르르르 웃으며 신포도를 서로 먹여주면서 우리들은 여름날을 보냈다.
형이가 네 살 때 또 여자 아기가 태어났다. 무더위가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한기가 느껴지는 시월 초였다.
이때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라서 아버지가 현이(晛怡)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현이는 태어날 때부터 얼굴이 뽀얗고 눈이 크고 아주 예뻤다.
"아휴~우리 현이 눈은 어쩌면 이렇게 아버지를 꼭 닮았을까!"
엄마는 현이를 안고 젖을 먹일 때면 꼭 손가락으로 현이의 볼을 문지르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면서 또 콧대를 두 손가락으로 꼭꼭 누르기도 했다.
"엄마. 애기 코는 왜 눌러어~?"
옆에서 내가 물으면 엄마는,
"요렇게 콧대를 꼭꼭 눌러서 세워주면 애기 코가 더 오똑해진단다~"
"그러면 우리 현이가 더 이뻐지지~"
"우리 선이도 해줄까?" 하면서 내 코도 꼭꼭 눌러주었다.
영등포로 이사한 후 우리 집은 늘 시끄럽고 활기가 넘쳤다.
여름에는 포도나무 풀장이 재잘거리는 딸들의 소리로 가득 찼고, 겨울에는 아버지가 마당에 물을 뿌려 빙판을 만들었다.
아버지는 빙판이 된 마당을 스케이트장이라며, 진이에게는 피겨 스케이트를 사주고, 철이에게는 스피드 스케이트를 사주었다.
진이와 철이가 마당의 빨랫줄을 잡고 스케이트 연습을 하더니 제법 걸음을 떼고 앞으로 나가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여의도 스케이트장으로 우리 형제들을 데리고 다녔다.
"이~사사 오~팔사사 사사사사삼~~"
육 학년이 된 진이는 과외를 하며 중학교 입시 공부에 열중했다.
집에는 진이가 음표를 숫자로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그런 언니의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진이가 사대부중에 합격하자 아버지는 다음날 휴가를 내고 진이를 데리고 나갔다.
저녁 어스름에 집에 돌아온 진이는, 아버지와 택시를 타고 남산 드라이브를 하고 경양식 집에서 함박스텤을 먹었다고 아주 자랑이 대단했다.
무언가 가슴에 한아름 안고왔는데 그건 보여주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진이가 중학교에 입학을 하자 아버지는 매일 아침마다 택시를 타고 진이를 중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
아침마다 엄마는 식탁 위에 도시락 두 개를 늘어놓았다.
계란말이, 멸치볶음, 콩자반.
그 작은 반찬들 속에는 진이를 향한 엄마의 사랑이 들어있었다.
진이의 중학교 생활은 화려해 보였다.
오월이 되자 진이는 대학 축제 준비를 했다.
마스게임 연습을 하고, 메이퀸 행사에 등장할 노랑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고 맵시를 내기도 했다.
엄마는 진이에게 한복을 입혀주면서 연신,
"우리 진이가 학교에서 제일 이쁘겠다! " 며 리본모양으로 맸다 풀었다를 계속하며 옷고름을 매주었다.
단발머리에 핀도 이리저리 꽂아주며,
"아유~ 우리딸 이쁘다!"를 연발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때 언니는 마치 백설 공주처럼 예뻤다.
그 시절 진이는, 엄마의 말에 의하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키운 귀한 딸'이었다.
언제부턴가 아버지의 출장은 더 잦아졌다.
출장은 늘 며칠로 시작해 한 주, 열흘로 길어졌다.
아버지가 떠나는 날이면
엄마는 새 손수건을 다려서 아버지의 셔츠 위에 얹어두곤 했다.
“여기다 싸서 넣어요. 먼지 앉을까 봐.”
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현관 앞에서 구두를 신는 아버지를 둘러싸며 손을 흔들었다.
“아버지, 선물 사 오세요!”
“그래, 약속할게.”
대문이 닫히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엄마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앉는 걸 나는 느꼈다.
그해 여름,
엄마는 처음으로 아이들을 두고 외출을 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다며 새 치마를 꺼내 입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단정히 빗던 엄마의 뒷모습이 어쩐지 낯설었다.
나는 아직 걸음마가 서툰 현이를 돌보며 하루종일 마루에서 놀았다.
그날 저녁, 엄마는 돌아오자마자 나와 현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애기들, 잘 있었어?”
엄마의 웃음 속엔 잠깐의 기쁨과 묘한 허기가 섞여 있었다.
우리는 밤마다 아버지를 기다렸다.
나는 안방에 누워서 문 쪽을 바라보며
“이번엔 어떤 선물을 사 오실까?”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턴가 아버지의 선물이 줄어들었다.
호두과자 봉지 대신 신문이,
색색의 초콜릿 대신 서류봉투가 들려 있었다.
아버지는 피곤하다며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엄마는 부엌에서 소리 없이 그릇을 닦았다.
물소리만 길게 이어졌다.
나는 방문 틈으로 그 모습을 보았다.
엄마의 등에 작은 떨림이 있었다.
그 무렵 엄마는 자주 부엌에서 시간을 보냈다.
현이가 먹을 밥을 만든다고 했지만
뭘 만드는지는 몰랐다. 다만 이따금 하늘을
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요즘은 날이 너무 길다.”
그 말의 뜻을 그땐 몰랐다.
해가 길면 더 오래 웃을 수 있어서 좋은
줄로만 알았다.
가끔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놀러 와
차를 마시며 웃음소리를 내뿜었다.
엄마의 웃음도 그들과 섞여 흘렀지만,
사람들이 돌아가고 문이 닫히면
그 웃음은 금세 사라졌다.
팔월의 무더위가 지나고 구월이 다가올 무렵.
그날따라, 부엌의 유리병에 든 햇살이 유난히 흐려 보였다.
부엌에 들어선 엄마는 유리병을 높이 쳐들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햇빛 탓인지 엄마는 한쪽 눈을 찡그렸다.
단지 햇빛 때문이었을까,
찡그린 엄마의 눈을 보며 괜히 내 마음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