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져버린 베갯속
여름동안 베고 있던 메밀 베개 속통을 꺼냈다.
베갯닛은 벗겨서 세탁을 하고,
베개 속통은 살균 소독을 하려고 세탁기에 넣고, 에어살균 코스를 돌렸다.
내 방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나는
삐삐삐~하는 세탁기 종료음에,
'다 됐군' 하면서 세탁실을 향했다.
뽀송뽀송하게 소독되었을 베개속통을 생각하며 세탁기 문을 연 순간.
아뿔싸!
이게 웬일이람!
세탁기 안은 온통 메밀껍질로 가득했다.
기겁을 해서 만져보니,
베개 속통의 지퍼가 열려서
안의 것들을 전부 토해냈던 것이다.
남편 것과 내 것, 두 개의 베개 안에서 나온 메밀껍질의 양이 세탁기 안에 산이 되었다.
베갯속 주머니와 메밀껍질이 축축했다.
나는 분명 에어살균 코스를 눌렀는데
웬일인지 세탁기는, 세탁-헹굼-탈수 기능으로 작동을 한 것이다.
코스대로 수많은 회전을 하면서
베갯속통의 지퍼가 열리고 이 어마어마한 참사가 일어난 것!
'아! 이것을 어떡한담.'
얼마 전부터 세탁 중 스스로 멈추기를 하더니 세탁기가 완전히 제 기능을 잃은 것인가?
그 와중에도 세탁기 안에 가득 찬 메밀껍질들이 정오의 햇빚을 받아 빛나는데 실로 아름답기까지 하다!
살다 보면 그렇다.
뭐 하나 간단히 정리하고 싶은데, 되려 원래 있던 것보다 더 많이 쏟아지고 스며든 채로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오래된 감정도, 누군가의 한마디도, 잊은 줄 알았던 기억도 그렇다.
처음엔 귀찮고 버겁다가도
손으로 하나씩 건져내다 보면
불현듯 알게 되는 것.
어떤 일은 흩어진 조각들을 통해서만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살균보다 중요한 건
내 안의 먼지를 기꺼이 들여다보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끔은 그 속을 열어 먼지와 허물을
털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삶의 순환이고,
늙어가면서 배우는 마음 청소의 지혜다.
사흘 동안이나 세탁 앞에 쪼그리고 앉아 메밀껍질 산을 치우며 되새긴 깨달음이다.
PS:
세탁기 속 메밀껍질을 제거하는데 사흘의 시간이 흘렀고,
결국 모터 타는 냄새가 나면서 새 세탁기로의
교체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살림살이의 순환은 끝을 맺었다.
<상큼 발랄 해피마망의 인생철학>을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저에게는,
제 글을 읽어주시는 작가님들이 저의 글쓰기 선생님이십니다.
댓글로 남겨주시는 말씀들이 저에게는 소중한 가르침이 되고 있어요.
읽어주시고,
가르쳐주시고,
배움을 주셔서 진심을 다해
인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