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들리지 말았어야 할 소리

조현병을 앓는 사람의 일상

by 코알코알

처음에는 단순한 오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내 뒷담화를 하고 있다고 믿었고, CCTV로 감시당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렇게 조현병은 조용히, 그러나 깊게 나를 파고들었다. 처음에는, 이게 병이라는 걸 몰랐다. 나는 그저 평화롭게, 고요히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며 가며 인사만 했던 옆집 사람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분명 내 이름이었고, 생활 소음을 일으키는 나에 대한 말들이었다. 그게 환청이라는 것도, 병이라는 것도 전혀 몰랐다. 나는 단지, 누군가 진짜로 나를 흉보고 있다고 믿었다.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해 부모님 몰래 원룸에서 자취 중이었기 때문에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나를 욕하는 소리와 시끄럽다는 소리, 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시멘트벽을 뚫고 시끄럽다는 소리를 귀에 직접 한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똑똑히 그 소리를 들었다.


너무나도 혼란스러운 마음에 주인 아주머니께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혹시 제가 너무 시끄럽게 지내는 건 아닌지, 옆집에 한번 물어봐 달라고. 아주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그런 말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끄럽다는 말은 멈추지 않았다. 세탁기를 돌릴 때도,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자도,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더 이상 혼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나를 흉보는 말들이 나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로 옆집 사람이 불만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생각해 보면 그때가 조현병 초기 증상이 시작된 시점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는 환청을 넘어서, 망상이 찾아왔다.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CCTV를 설치해 나를 지켜보고 있고, 몰래카메라로 내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CCTV는 방 안에, 욕실에, 그리고 망상이 더 심해져서 언젠가부터는 핸드폰에 몸 안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럴 리 없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려 했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내 현재 상태가 어떤지, 과거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렇게 잘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누군가 나에게 나쁜 감정을 가졌다고 확신을 하며, 나는 무너져갔다.


목욕을 해도,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가장 사적인 순간조차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 전부 발가벗겨진 것 같은 수치심. 감당하기 힘든 무게였다. 몰래카메라와 도청장치가 내 몸에, 내 주변에, 곳곳에 숨어있다고 생각했다.


고통을 끝내고 싶어 달려가는 기차를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생을 끝내기보다는 부모님께 마지막으로 의지하고 싶어졌다. 나는 용기를 내어 부모님께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부모님은 날 탓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전보다 많은 것을 해주려고 했다.


“그랬니? 아주 힘들면 내려와도 돼. 뭐가 그렇게 힘들었었니? 너무 힘들면 휴학하고, 학교 자퇴해도 된단다. 자퇴하고 나서 무슨 일을 할지 천천히 찾아보자. 자퇴해도 엄마 아빠는 너 사랑하는 거 알지?” 하고 말하셨다.

그 한마디에 눈물이 터졌다. 그리고 나는 본가로 돌아갔다. 부모님의 과보호가 싫어 일부러 먼 학교에 진학했다. 어른들의 간섭이 싫어 기숙사에 살기보다 자취를 했다. 기숙사가 답답하고 집이 답답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부모님의 보호 덕에 살고 있다.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자습해서 원래대로라면 A를 받아야 했을 과목이 많았다. 그러나 그해 나는 거의 모든 과목에서 C를 받았고, 간신히 기말고사를 본 한 과목에서만 B0를 받았다. 시험을 보는 동안도, 나는 내가 감시당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기분의 변화도 엄청나서 많이 울기도 했다. 알몸으로 거리를 행진해야 이 감시당하는 일상을 끝내준다는 소리가 들려 부모님께 진지하게 상담했더니 두 분 다 심각한 표정을 지으셨다. 나는 계속되는 말소리와 나를 헐뜯는 소리가 들려 자해를 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기행으로 결국 정신병원에 가게 되었다. 의사에게 증상을 모두 이야기했지만, 병원에 있는 나를 인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정신병원을 평소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 측에서는 내 상태를 심각하게 보고, 대학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부모님께 따로 말씀드렸다. 대학병원에 전화로 초진 예약을 하고 며칠 뒤에 와도 좋다는 약속을 부모님께서 잡으셨다. 그리고 부모님께서는 내가 자해를 다시는 못하게끔 지켜보기 위해 휴가를 내시고 여행을 가기로 하셨다. 여행을 가서도 굉장히 힘들었다. 철저히 내 위주로 이루어진 여행이었음에도 계속해서 헐뜯는 소리만 들렸다.


며칠 뒤, 대학병원에 가게 되었다. 병원에 가는 일조차 나에게는 두려움과 분노로 다가왔다. 정신병원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내가 봐도 나는 이상했지만, 그게 병원에 가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었다. 설문지를 건네받았을 때, 나는 그것을 입에 넣어 오물오물 씹고 변기에 버렸다.


'신문지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건가?‘


그때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증상이 심했기 때문에 가능한 사고였다. 다행히 부모님은 설문지를 못 쓰고 버리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설문지를 미리 복사해 두셨고, 나는 진료를 무사히 받을 수 있었다.


입원한 후에도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음식에 독이 들어있다는 망상 때문에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내가 자해하고 나서 더더욱 기행을 저지르는 나를 일시적으로 막고, 대학병원에 갈 시간을 벌기 위해 부모님이 여행을 데리고 갔었다. 국내여행이 끝나고 난 뒤, 뉴스로 용산에 북한이 띄운 드론을 보고 나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라가 전쟁 중인데, 병원에 와서 간신히 피한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병원은 피격당할 확률이 낮아 괜찮다지만, 그렇지 않은 가족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하루 종일 폐쇄병동의 공중전화를 붙들고 있었다.



퇴원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꾸준한 치료를 받으며 일상을 되찾아 가고 있다. 만약 내가 기차를 보며 죽으려고 했을 때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만약 이렇게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도 부모님께서 편견이 있어 병원에 보내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조현병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다. 전문가의 치료와 주변의 지지가 필요하다. 치료를 받으면서 느낀 점은 정신건강 문제가 개인의 의지력이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마치 당뇨환자가 인슐린이 필요하듯, 고혈압 환자가 혈압약이 필요하듯 나에게는 약물 치료와 정기적인 상담이 필요했다.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회복의 첫걸음이었다.


가족들의 역할도 생각보다 컸다. 처음에는 가족들도 당황하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지만, 병을 이해하고 나서는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혼자였으면 포기했을 순간을 버텨낼 수 있던 것도 이들의 존재 덕이었다. 지금도 완전히 나았다고 할 수는 없다. 여전히 약을 먹고 있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현병도 치료받으면 충분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