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재가 전통이 되는 시간
미국의 달력은 맛으로 넘어갑니다.
미국맛 시즌3은
시간이 맛으로 유통되는 순간을 관찰합니다.
장조림은 고행의 음식이다.
해본 사람은 안다.
이건 고기와의 기싸움이라는 걸.
1단계, 냄새.
후드를 풀파워로 돌려도 소용없다.
집안 모든 패브릭에 냄새가 스며든다.
2단계, 번거로움.
삶고, 식히고(를 생략하면 화상은 옵션),
지문이 닳도록 고기를 찢는 지난한 과정.
마지막... 시간의 배신.
약불에 올려두고 잠깐 졸았을 뿐인데
왜 이놈은 냄비 바닥이랑 한 몸이 되어 있냐고.
그래서 장조림은 사 먹는 게 맞다.
아무튼 내 말이 맞다.
그런데 미국엔 이런 고행을 해마다 반복하는 날이 있다. 평소엔 잘 쳐다보지도 않던 질긴 양지머리 덩어리를 들고 와 몇 시간씩 냄비 앞을 지키는 날.
매년 3월 17일, 아일랜드 수호성인 성 패트릭을 기리는 날. 성 패트릭 데이(Saint Patrick’s Day)다. 사실 미국인들에게 이 날은 신앙의 날이라기보단 '합법적으로 낮술 마시는 거대한 파티의 날'이다. 그리고 그 낮술의 곁엔 늘 푹 삶은 소고기 한 덩이가 함께 한다. 이게 미국의 장조림 콘비프(corned beef)다.
여기서 '콘'은 옥수수의 콘이 아니다. corn of salt(소금 알갱이)에서 온 말로, 콘비프는 굵은 소금에 절인 소고기를 뜻한다. 이름부터 벌써 오래갈 것 같은 느낌이다.
근데 이상하지 않은가. 왜 하필 축제날, 몇 시간을 삶아야 하는 질긴 고기가 주인공이 됐을까?
사실 아일랜드 본토의 성 패트릭 데이 메뉴는 소고기가 아니다. 베이컨과 양배추다. 하지만 150여 년 전 뉴욕에 막 도착한 이민자들에게 돼지고기는 꿈의 단백질이었다. 월세 내기도 벅찬데 베이컨이라니?
그때 그들의 레이더에 걸린 게 유대인 정육점의 콘비프였다. 소 가슴살인 브리스킷의 염장 버전. 돼지를 먹지 않는 유대인들에겐 처치 곤란한 저렴한 부위였고, 이민자들에겐 베이컨의 빈자리를 채울 짭짤한 구원투수였다.
그렇게 전통은 가성비에 맞춰 번역되었고, 미국식 성 패트릭 데이의 식탁이 조립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원한 사치재는 없었다. 19세기말, 냉장 화차(Refrigerated Railcars)와 대규모 도축 시스템이라는 자본주의의 날개가 육류 유통을 바꿔놓았다. 그때부터 미국에서 돼지고기는 공산품처럼 흔한 고기가 되어갔다.
그리고 20세기 초, 마케팅 천재들이 베이컨과 달걀을 미국식 아침식사의 국룰로 고정하면서 베이컨은 공기 같은 존재가 됐다. 도넛 위, 심지어 밀크셰이크 위에도 올라가는 '시스템의 인프라'가 된 거다.
다시 질문. 그렇게 싸고 흔해졌다면, 오리지널 전통인 베이컨으로 돌아가 성 패트릭 데이를 즐겨도 되지 않았을까? 조리법도 훨씬 간편한데.
중요한 건 가격이 아니었다. 돼지가 당시 조롱과 편견이 덧씌워진 상징이었다는 점이다.
한때 미국은 'Paddy with his pig(돼지랑 사는 촌놈들)' 같은 말로 아이리시를 조롱했다. 베이컨은 분명 그들에게 익숙한 음식이었지만, 그 익숙함에는 당시 사회가 씌운 낙인도 함께 묻어 있었다. 축제의 중심에 올리기엔 너무 많은 의미가 달라붙은 재료였다.
반면 유대인 정육점에서 건너온 콘비프는 달랐다. 미국 안에서 아이리시의 정체성을 '번듯하게' 리브랜딩하기엔 훨씬 도시적이고 깔끔한 선택지였다.
다시 말해 콘비프가 베이컨보다 더 낯설고, 더 그럴듯했다는 것. 하나 더 있다.
베이컨은 너무 잘 팔렸다.
그래서 축제의 주인공은 될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문제는 베이컨이 이미 미국의 일상이었다는 거다. 일상은 축제가 되기 어렵다. 마트가 3월 17일에 맞춰 밀어낼 이유도 없다. 이미 충분히 잘 팔리니까. 콘비프는 정반대다. 평소엔 샌드위치 속에 얇게 들어가거나 해시(Hash)로 조용히 소비되다가, 딱 이맘때만 '거대한 덩어리'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한다.
특이한 건 그들이 소비하는 게 맛이 아니라 번거로움 그 자체라는 점이다. 통조림 콘비프가 축제상에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통조림은 너무 효율적이다. 하지만 성 패트릭 데이에 필요한 건 효율이 아니라, 냄비에 이 고기를 4시간씩 익히는 비효율적인 퍼포먼스다.
콘비프를 삶는 행위는 나도 리추얼을 완수했다는 안도감을 사는 일이다. 남들 다 하는 그 '사서 고생'을 우리 집 부엌에서도 재현했다는 확인. 자본주의는 이 노동을 경험으로 포장해, 거대한 재고를 미국의 위장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것도 평소의 몇 배나 되는 가격표를 붙여서!
이 재고처리 미션을 위해 3월의 마트는 거대한 세트장으로 변신한다. 콘비프를 산더미처럼 쌓고, 그 옆에 양배추와 감자를 붙여 놓는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안 삶고 뭐 해? 너 빼고 다 사서 고생 중인데.
한국의 사과나 배도 명절엔 몸값이 뛴다. 하지만 명절이 지나도 잘 팔린다. 콘비프의 시간표는 다르다. 이 고기의 가치는 오직 3월 17일이라는 데드라인을 향해 폭주한다.
데이터를 보면 이 광기는 더 선명해진다. 미국 콘비프 연간 판매량의 67%가 성 패트릭 데이 전후 4주에 몰리고, 2월에서 3월로 넘어가는 순간 판매 중량은 13배까지 뛴다(Beef Research, 2024). 이 고기는 맛보다 날짜를 먼저 부여받는다.
가격도 문제 되지 않는다. 평균 가격이 꾸준히 오르지만 사람들은 홀린 듯 장바구니에 던져 넣는다. 2025년 한 해 매출만 2억 달러 돌파. 통계자료가 콘비프를 두고 '이벤트가 가격 저항을 이겨버리는(event-driven and price resistant)' 품목이라 부르는 이유다.
이건 행동경제학 교과서에 실어도 될 설계다. 한정판에 끌리고, 소외될까 불안해하고, 남들 다 하는 일에 안도하는 심리를 한꺼번에 건드리니까. 자본주의는 그 불안과 욕망을 엮어, 4시간의 노동을 '놓치면 아쉬운 시즌 경험'으로 바꿔 놓는다.
그러나 3월 18일 해가 뜨는 순간 마법은 끝난다. 고기 질이 달라져서가 아니다. 리추얼의 유통기한이 끝났을 뿐이다. 어제까진 반드시 삶아야 했던 고기가 오늘은 다시 냉장고 자리만 차지하는 크고 짠 양지머리로 돌아간다. 사회적 용도를 잃은 음식은 이토록 빠르게 평범해진다.
미국 식문화는 효율 중심이다. 일 분이면 익는 베이컨이 표준인 땅에서 냄비 하나를 몇 시간씩 붙들고 있는 일은 거의 사건이다.
사실 콘비프의 시간은 처음부터 효율과는 거리가 멀었다. 생존을 위한 대체재였고, 낙인을 피해 새 얼굴을 찾으려는 선택이었고, 시장이 '4시간짜리 퍼포먼스'로 굳혀놓은 리추얼이었으니까.
비록 콘비프가 변형된 전통일지라도 사람들은 매년 그 냄비 앞에서 시간을 태운다. 처음엔 필요였고, 나중엔 기호였고, 이제는 기억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전통은 진짜여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었기 때문에 진짜가 된다.
빌려온 것은 그렇게
진짜 기억으로 익는다.
시간은 무엇이 처음이었는지 묻지 않는다.
그저 오래 머문 것들을
우리라는 이름으로 남길 뿐이다.
이 글은 미국맛 시즌3의 아홉 번째 맛입니다.
처음부터 먹고 싶다면 프롤로그로.
지난 맛은 시즌1·시즌2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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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고기는 아주 이븐하게 익었습니다.
The pot did its noble work.
Onward to the next taste ✈️
※ 참고한 자료
[Salon] St. Patrick’s Day controversy
[Wikipedia] Corned beef
[USDA] Corned Beef and Food Safety
[Beef Research] A Look at Retail Corned Beef Sales During the St. Patrick's Day
[Beef Research] Corned Beef: A Highlight of St. Patrick's Day
[Beef Research] St. Patrick’s Day: Expectations for Corned Beef Sales in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