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생선버거를 못 없애는 이유

잘 팔려서? 빠지면 곤란해서

by 한이람
미국의 달력은 맛으로 넘어갑니다.
미국맛 시즌3은
시간이 맛으로 유통되는 순간을 관찰합니다.




억까란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다.

급식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대표적인 피해자가 바로 생선가스다.


다들 돈가스엔 환장하면서,

왜 생선가스 앞에선 세상 엄격해지는 건데?


친구들이 남긴 생선가스를 넙죽 받아먹던 시절,

난 알아버린 거다.

생선가스와 타르타르소스의 케미를.


그리고 훗날,

그 취향은 날 두 번 울린 버거로 이어진다.


필레 오 피쉬(Filet-O-Fish).

나만 진심이었던 네모난 버거 이야기다.




주님, 생선은 괜찮은 거 맞죠?

이렇게 생긴 애들이 은근 오래 버틴다.


필레 오 피쉬는 맥도날드의 생선버거다.


외모만 봐도 센터형 버거는 아니다. 빅맥처럼 상징적이지도, 쿼터파운더처럼 팬덤이 두텁지도 않다. 한국에서의 생선가스처럼, 미국에서 이 녀석은 처음부터 주인공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었다. 사실 이 버거의 등판은 취향이 아니라 니즈에서 왔다.


미국 가톨릭 신자들은 사순절, 그러니까 부활절 전 약 40일 동안의 금요일엔 고기를 멀리한다. 1962년, 신시내티의 맥도날드 점주는 이 시기만 되면 텅 비는 매장을 보며 고민에 빠졌고, 생선 샌드위치를 고안했다. (미국에선 소고기 패티가 아니면 '샌드위치'라 불러야 하는 엄격한 룰 때문에, 이 녀석도 버거 아닌 샌드위치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그렇게 나온 메뉴가 필레 오 피쉬다. 맥도날드의 첫 비(非) 햄버거 메뉴. 이 '금요일 타협안'은 곧바로 의외의 효자 메뉴가 됐다. 2015년엔 필레 오 피쉬 연간 판매량의 25%가 사순절 기간에만 팔려 나갔을 정도다(McDonald's, 2016).


특정 금요일을 위한 비상구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 메뉴는 더 넓은 역할을 맡게 된다. 종교적 대안이자, 어떤 사람들에겐 유일한 선택지로. 이 버거는 시작부터 타협의 결과물이었고, 그 흔적은 재료 배치에도 남아 있다.



튀기고, 찌고, 반 장만

This is not a burger. It is a system.


한 번 뜯어보자. 생각보다 수상할 정도로 정교하다.


이 메뉴엔 맥도날드 특유의 '그릴'이 등장하지 않는다. 생선 패티는 바삭하게 튀긴다. 번도 굽지 않고, 뜨거운 스팀으로 찐다. 타르타르는 차갑고 시큼해야 한다. 마지막 킥이 치즈다.


필레 오 피쉬엔 치즈가 딱 반 장 들어간다. 그게 글로벌 스탠더드다. 원가 절감 때문이냐고? 그럴 리가. 이 반 장도 조율의 일부다. 치즈는 많이 넣을수록 좋은 게 아니라, 딱 거기서 멈춰야 한다. 생선의 섬세한 풍미를 치즈의 짠맛이 덮지 않도록 의도된 균형.


생선을 위해 번의 존재감을 줄이고,
타르타르로 튀김의 느끼함을 덜고,
치즈는 접합층으로만 남긴다.


이 메뉴의 본질은 생선을 끝까지 생선답게 남겨 두는 조정의 기술에 있다.


그래서 다음 질문은 맛이 아니다.

왜 미국은 이 까다로운 메뉴를 굳이 남겨두는 걸까?



모두의 최애는 아니어도

들여오는 것과 남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 버거의 생존을 설명하려면 이제 주방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한국에선 두 번 단종됐지만, 미국에선 단 한 번도 센터에 선 적 없이 살아남았다. 그 이유는 사순절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결국 이건 미국이라는 사회가 돌아가는 운영 알고리즘의 문제다.


누군가는 신앙 때문에, 누군가는 식습관 때문에, 또 누군가는 그냥 소고기가 싫어서 메뉴판 앞에서 멈춘다.


그럴 거면 햄버거 가게에 왜 왔어?

그 질문이 미국에선 통하지 않는다.


미국은 애초에 취향의 통일이 불가능한 나라다. 인종과 종교, 정치적 신념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에서 '표준'을 강요한다는 건 곧 고객 포기를 의미한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대접받는 것을 소비자로서 당연한 권리라 믿는 사회에서, 거대 체인의 미션은 모두의 만족이 아니다. 이탈 방지다.


이런 곳에선 대박 신메뉴 하나보다, "여기 먹을 게 없네" 하며 돌아서는 손님을 붙잡는 메뉴 하나가 더 중요해진다. 다양한 선택지가 배려가 아니라, 시스템을 굴리기 위한 인프라가 되는 이유다. 미국식 포용이 감성이 아니라 계산으로 읽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자본주의가 설계한 포용의 메뉴.



그런 압력이 약한 곳에선 결과도 달라진다. 그래서 한국 맥도날드에서 필레 오 피쉬가 두 번 사라졌던 건 그게 구조적으로 절실한 메뉴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생선버거가 없다고 해서 대규모 이탈이 일어날 만큼, 우리의 니즈가 절박하진 않았던 거다.


살아남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일본이 그렇다. 그곳에서 필레 오 피쉬는 종교나 다양성의 수혜자가 아니라, 초기부터 정규 메뉴로 안착한 기본값에 가깝다. 부드러운 흰살생선과 찐 번의 조합이, 일본에선 애매함이 아니라 익숙함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플랜 B라는 안전장치


이걸 시스템의 언어로 바꾸면 더 또렷해진다. 필레 오 피쉬는 맥도날드가 ‘반복되는 예외’를 흡수하기 위해 메뉴판에 내장해 둔 안전장치다.


거대 체인은 표준화를 지향하지만, 반복해서 등장하는 예외까지 지울 수는 없다. 고기를 못 먹는 금요일, 소고기를 피하는 손님, 비고기 옵션이 필요한 순간들. 맥도날드는 그 예외를 임시변통으로 처리하는 대신 메뉴판에 고정된 답을 박아 넣었다. 그게 바로 필레 오 피쉬라는 표준화된 예외다.


플랜 B는 메뉴판이 아니라 공정에 내장된다.


다른 버거들과는 재료도, 공정도 다르다. 전용 공급망을 거쳐 찜기에서 완성되는 이 버거는 소고기 라인 바깥에서 굴러가는 하나의 독립된 생태계다.


누군가에겐 "여기서도 먹을 수 있다"는 안도감, 맥도날드에겐 끝까지 작동하는 비고기 옵션. 그게 이 메뉴를 버티게 하는 힘이다. 잘 팔리는 메뉴가 시스템의 크기를 말해준다면, 플랜 B 메뉴는 시스템의 폭을 드러낸다. 어떤 성공은 센터의 화려함이 아니라 변두리에 남겨둔 완충지대에서 증명되기도 한다.


필레 오 피쉬는 그래서 취향이기 전에, 미국이 예외를 다루는 방식이다.






한국에선 두 번이나 차였지만, 미국 매장에서 그 네모난 패티를 보면 난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이걸 왜 먹어?"라는 반응 속에서도 꿋꿋이 식판을 지켰던 마이너들의 전우애 같은 것.


비인기 메뉴는 늘 조용하다.

좋아한다고 크게 티 내는 사람도 드물고, 없어져도 다수는 금방 잊는다. 그런데 꼭 누군가는 그 부재를 바로 알아챈다. 필레 오 피쉬가 메뉴판에서 사라진 날, 그 빈자리를 제일 먼저 알아챈 나처럼 말이다. 평소엔 당연했던 안전장치일수록 없어지고 나서야 무게가 커지는 법이다.





식탁의 센터는 빅맥에게 양보하고,

이 네모난 패티는 모서리를 지켜왔다.


메뉴판 구석의 이 플랜 B 덕에

오늘도 누군가는 그 테이블에 남는다.





이 글은 미국맛 시즌3의 열 번째 맛입니다.
처음부터 먹고 싶다면 프롤로그로.
지난 맛은 시즌1·시즌2에서 확인하세요.


댓글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주님, 한국 맥날에도 피쉬버거를 허하소서.
Lord, return the Filet.
Amen, and pass the tartar ⛴️


※ 참고한 자료

[Crux] Origins of the Filet-O-Fish

[McDonald’s] Filet-O-Fish Journey

[McDonald's] What Type of Fish do You use in the Filet-O-Fish?

[Tyla] McDonald's finally reveals why Filet-O-Fish only has half a cheese slice

목요일 연재
이전 10화미국이 장조림을 삶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