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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하나의 마음,[빈] 접시의 대답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가 된다

by GOLDRAGON

"기분이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많이 듣는 말이다. 나 역시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려 애쓴다.
예절, 에티켓, 그리고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
그것만은 지키며 살아온 삶이라, 내 행동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겐 진심 어린 마음으로 닿았기를 바란다.

나는 종종 이웃에게 작은 선의를 건넨다.
예를 들면 사과 하나를 접시에 담아 드리면, 그 접시는 빈 채로 돌아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
작은 정성이라도 담겨 돌아오는 그 마음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라 믿기 때문이다.
'당신의 정성, 잘 받았어요. 나도 마음을 보탭니다.'
이 교환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살아간다는 증거 아닐까.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은 주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공 커뮤니티 센터다.
이곳에선 다양한 분들과 호흡하며 일한다. 특히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자주 오신다.
운동 중 휴대폰 사용법을 묻는 분도 많고, 전자 기기를 어려워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회원가입, 은행거래, 인증서 문제 등 나름 복잡한 일들을 묻는 분들도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공적인 일은 잠시 미뤄두고 기꺼이 도와드린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때론 내 시간과 에너지를 꽤나 들여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두 부류의 반응을 경험한다.

한 분은, 다음 날 조심스레 커피 한 잔을 내밀며 말하셨다.
"어제 너무 고마웠어요."
나는 웃으며 말씀드린다. "별거 아니에요. 언제든지요."

말 한마디, 커피 한 잔.
그 순간 마음 깊숙한 곳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그분은 단지 '고마움'을 돌려준 게 아니라,
내 시간을, 수고를, 인간적인 친절을 [가볍지 않게 여겨줬다]는 그 마음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분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운동을 하셨고
며칠 뒤, 아무렇지 않게 또 다른 문제를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고마움도, 미안함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그 순간 나는 인간적인 실망을 느낀다.
도움이 의무가 된 것처럼 행동하는 태도에 마음 한 켠이 불편했다.
심지어 다음날엔 먼저 인사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마음을 갖게 된 내가 치사한 걸까?

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처음엔 선의였다.
두 번째는 친절이었다.
하지만 그게 세 번째, 네 번째에도 아무렇지 않게 반복되면
상대는 어느 순간 그것을 [당연함]으로 받아들이고,
나의 호의는 [의무]로 변해버린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호의는 당연하지 않다.
그건 언제나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야 할 특별한 선물이다.

나는 내가 받은 만큼 돌려주는 사람이다.
오히려 더 돌려주고 싶어 병적으로 무엇인가를 다시 건넨다.
그게 배워온 방식이었고, 내가 지키고 싶은 내 마음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이 모두 그렇진 않다는 걸,
요즘은 자주 배운다.
그 배움이 서운함으로 다가올 때도 있고,
나를 지키기 위한 선을 고민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은 꼭 크고 대단할 필요가 없다.
그저 "고마웠어요."
그 한마디면 된다.
그 말 안에는
"나는 당신의 시간을 가볍게 여기지 않아요."
"나는 당신의 마음을 알아요."
라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꼭 필요한 감정이 들어 있으니까.

사과 하나를 접시에 담아 건넨 그 마음처럼,
우리의 관계도 그렇게 따뜻하게 순환되면 좋겠다.
서로의 호의를 권리가 아닌 '선물'로 여길 수 있는 사회.
그런 마음이 모여,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한 곳에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의 따뜻한 마음이 누군가에겐 너무 큰 선물일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선물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아는 사람과만 오래도록 관계 맺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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