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를 떠올리며 끄적끄적
왜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잠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싸한 기분이 찾아오며 왠지 오늘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예감을 받는 때가. 만약 그런 적이 없다면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당신의 미래가 늘 순탄하길. 아쉽게도 나는 며칠 전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면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순간 설명할 길 없는 찝찝함과 불안함이 나를 덮치는 경험을 했다. 이유는 뭐냐고? 없다! 그저 갑자기 그랬을 뿐이다.
처음에는 요 며칠 이어진 폭염 때문에 컨디션이 떨어져 신경이 곤두선 탓이라 생각했다. 나는 평소 작은 것 하나에도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고 고민하는 성향이다 보니, 이번에도 괜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라 여기며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별 다른 효과는 없었다. 스스로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할수록 집중력은 떨어지고, 몸이 무거워졌으며, 기분이 안 좋아졌다. 아무리 걷어내도 계속 나오는 찌개 속 거품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초조함은 조금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멍하니 마음속 거품을 떠내길 반복하며 오전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러 보냈다.
오전을 허무하게 낭비한 탓일까? 오후 한 시 삼십 분, 차로 여동생을 병원까지 데려다주는 동안 내 기분은 더욱 안 좋아졌다. 위의 짤방 속 문구처럼 '고구마 100개 삼킨 듯 갑갑한' 마음에 괜히 입술이 근질근질하고 뭐라도 말을 내뱉고 싶었다. 나는 차가 신호에 걸릴 때마다 "아 뭔가 불길한데... 이상한데... 일 터질 것 같아."라고 연신 중얼거렸다.
"... 언니 무슨 일 있어? 왜 아까부터 무섭게 계속 그런 말을 해. 그러다가 진짜 안 좋은 일 생겨, 하지 마."
결국 여동생이 불안한 듯 한 마디 했다. 뭐라고 되받아치려는 순간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고,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액셀을 밟았다. 운전 경력이 일 년을 조금 넘은 초보 운전자이자 후방 카메라도 없는 20년 된 올드카를 모는 입장에서, 동생에게 내 상태를 일일이 설명하면서 능숙하게 운전할 자신은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같은 감정 상태로는 좋은 말이 안 나올 것 같았다. 이럴 땐 그냥 갈 길에 집중하는 게 차라리 나은 선택지였다.
처음 가보는 병원은 그리 크지 않은 소형 건물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건물 바로 뒤편에 차를 댈 수 있는 야외 주차장이 있었는데, 많아야 세 대에서 네 대 정도를 간신히 세울 수 있을만한 공간이 전부였다. 주차장 입구는 오르막길이로, 두터운 과속 방지턱을 촘촘히 설치해 놓은 데다가 경사도 가파른 탓에 그 길을 지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하필 유일하게 남은 자리가 영 주차 각도를 잡기 힘든 이상한 코너임을 알았을 땐, 정말 깊은 한숨이 절로 새어 나오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고생할 바엔 차라리 돈을 내서라도 다른 주차장에 갔어야만 했다. 아니 애초에 차를 끌고 오는 게 아니었을지도...
힘들게 주차를 마친 뒤 나는 동생과 함께 병원에 들어갔다. 오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걸로 내 역할은 거의 끝난단 생각에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나는 머릿속으로 동생을 집에 데려다준 뒤, 원래 계획한 오후 일정을 어떻게 진행할지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게 웬걸! 병원에선 동생이 약 두 시간가량 걸리는 검사를 받아야 하며, 검사가 끝난 뒤에야 의사 선생님과 보호자의 면담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그리고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뭐?! 두 시간? 지금이 두 시가 넘었는데 그러면 네 시까지 여기서 죽치고 있어야 되는 거야? 기존의 내 일정은 어떻게 하고? 조금 있다가 저녁 모임 갈 때 길 엄청나게 막힐 텐데? 하, 어쩐지 뭔가 불길하더라. 아침부터 시작해서 계속 꼬이는구먼.'
나는 융통성이 없고 꽉 막힌 성격이라,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나 예상치 못한 사건을 접하면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이 점을 개선하려고 노력도 많이 했고 어느 정도 성과도 보았지만, 이렇게 감정이 격양되고 지친 상태에선 아무래도 스트레스 조절이 힘들다.
'아, 몰라, 몰라! 다이어트고 뭐고, 일단은 동생이 검사를 받는 동안 미친 듯이 달고 맛있는 것을 먹어야겠어. 그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지 안 그러면 너무 짜증 날 것 같아. 먹고 나서 죄책감에 다시 기분이 안 좋아질 수도 있지만, 그건 그때 가서 보도록 하자.'
나는 최대한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와 함께 동생을 검사실로 집어넣으며 생각했다. 문이 닫히고 동생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나는 이 날 하루 중 가장 기민하고 빠른 움직임으로 병원을 뛰쳐나왔다. 내 영혼의 생존(?)을 위해선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카페에서 카페인과 당분을 내 몸속에 공급해야만 했다. 입 안에서 녹아내릴 디저트와 커피의 조화를 생각하니 없던 힘도 났다. 그러나 설레는 마음으로 건물을 나서는 그 순간, 달콤한 순간을 향한 내 열망은 순식간에 증발했다.
찌는 듯한 더위, 길 위의 모든 것을 태울 것처럼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 그리고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습기까지. 이 모든 게 삼위일체를 이루며 최악의 날씨를 완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집에서, 차에서, 그리고 병원에서 원 없이 에어컨 바람을 쐬느라 잠시 이 살인적인 더위를 망각하고 만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병원 근처에 카페가 없다는 점이었다. 한 길 건너 한길마다 카페가 있는, 대카페시대인 이 2025년의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카페를 찾기 힘든 경우가 다 있다고?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나마 지도상에 나오는 가장 가까운 카페도 10분가량을 걸어가야만 했다. 물론 10분 거리는 먼 게 아니다. 하지만 서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고 1분만 걸어도 온몸이 땀으로 젖어드는 이런 날씨 속에서, 그늘도 없는 길을 10분이나 걷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다시 진료실로 들어가 두 시간을 멍하니 낭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난 움직이지 않는 발걸음을 간신히 옮기며 이 찜통 같은 더위를 헤쳐 걷기 시작했다. '도대체 오늘 왜 이렇게 다 별로지?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파트 2에서 계속. 쓰다가 지쳤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