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근육통 진단을 받기까지
마침내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였다.
깊은 우울의 터널을 지나, 오롯이 공부만 하던 재수 시절을 견뎌낸 끝이었다.
모든 게 이제야 겨우 괜찮아지려는 찰나였다.
그러나 몸이 점점 고장나고 있었다.
머리, 관절, 근육…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날이 갈수록, 이유 없이 피곤한 날이 많아졌고 통증은 예고 없이 수시로 찾아왔다.
처음엔 이 모든 증상에 각각 다른 이유와 치료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새내기라 학교에서 긴장을 많이 해서 두통이 왔겠지.
공부하는 동안 너무 오래 앉아 있었다보니 허리도, 무릎도 아픈거야.
환절기라 몸살이 자주 오는 걸거야.
내가 너무 말라서 체력이 부족한 거니까, 운동하고 살을 찌우면 돼.
식습관이 잘못되었으니, 좋은 음식을 먹으면 배가 안 아플거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신체 증상들은 사라지기는 커녕 점점 심해져만 갔고,
날마다 달라지는 통증의 종류와 강도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건, 아프다는 걸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통증은 분명히 실재했다.
그러나 어느 장비로도 잡히지 않았고, 검사 결과는 언제나 ‘정상’이었다.
나는 분명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팠는데, 세상은 나에게 괜찮다고, 멀쩡하다고 말하는 듯했다.
나 자신조차 나를 의심하게 됐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남들도 다 이정도는 참고 사는데 내가 유난인 걸까?'
학교에 가지 못한 날은 늘 죄책감이 따라붙었다.
'혹시 오늘은 참고 다녀올 수도 있었던 건 아닐까?'
‘사실은 게으름으로 인한 꾀병이 아닐까?’
그 죄책감과 무기력 속에서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니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어쩔 수 없이 휴학을 선택했지만 진단명이 없다는 이유로 질병휴학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교수님들과 학우들에게도 내가 휴학하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그냥, 도피하듯이 학교를 벗어난 사람이 되었다.
주변 어른들은
"젊은데 왜 아프냐"
"바깥 공기를 안 쐬고 틀어박혀 있으니 아픈 거다"
"자꾸 아프다고 생각하니까 아픈 거다"
같은 말을 했다.
나는 점점 혼자였다.
가족들과 같이 있는 집에서도, 친척 어른들의 한숨과 시선 속에서도.
내 아픔을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 그건 고립의 시작이었다.
헬스 트레이너에게 1:1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래도 아팠다.
몸에 좋다는 온갖 건강즙과 한약을 몸에 들이부었다.
더 아팠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드러누워 버렸다.
여전히 아팠다.
나는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무수한 증상들의 근원을 찾아야 했다.
내 증상들을 하나하나 인터넷에서 검색해가며, 검색결과에 나오는 모든 질환들을 의심해보았다.
만성피로증후군, 자율신경실조증, 신체화장애, CRPS…
그러다 찾아가게 된 대학병원 류마티스내과.
나는 마침내 '섬유근육통'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현재로서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는 난치성 질환이라는 말과 함께.
놀랍게도 그 순간,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뻤다.
“이건 정말 존재하는 병이었구나.”
“나는 미친 게 아니었구나.”
이제 나는 누군가에게 내 고통을 말할 수 있었다.
그저 위로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나와 같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으니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들과 연대하며 복잡한 미로같은 병으로부터 빠져나가는 길을 함께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