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를 들지 않는 이유가 있다
시장에서 사 온 물건들을 정리하다 보면, 비닐봉지의 단단한 매듭을 풀면서 문득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는 절대 비닐봉지 매듭을 가위로 싹둑 자르는 법이 없었다.
힘겹게 풀어낸 봉지를 정성스레 씻어 빨랫줄에 널고, 날아가지 않도록 빨래집게로 하나하나 고정해두곤 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그 모습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꽁꽁 묶인 봉지의 매듭을 풀 때마다 기억 속의 엄마가 어김없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도 이젠 엄마처럼 가위를 들지 않는다.
손톱에 힘을 꾹 주고, 느긋하게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낸다.
언젠가부터 봉지의 매듭이 인생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쉽게 끊어내기보다는, 시간이 걸려도 애써 풀어보려 한다.
그래서일까. 오늘도 나는 가위 대신 손끝을 꺼내든다.
삶을 살다 보면, 엉킨 실타래처럼 인생도 얽히고 설킬 때가 있다.
가끔은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고, 새로 시작하고 싶을 때도 많다.
하지만 나는 차분히 엉킨 실을 풀어보려 한다.
이 실타래 하나 제대로 풀지 못하면,
앞으로 나에게 닥쳐올 문제들 역시 헤쳐 나가지 못할 것만 같은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한다.
실이 어디서부터 엉켰는지 더듬어가다 보면,
자연스레 내 삶의 어려움이 시작된 지점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게 실을 푸는 일이 곧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된다.
가위를 드는 일은 쉬울지 모르지만,
나는 오늘도 천천히, 손끝으로 삶을 어루만진다.
비닐봉지의 매듭을 풀고 엉킨 실을 푸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