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시간부터 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버스 시간 20분 전에 일어나 대충 씻은 후, 어젯밤 싸둔 가방을 챙기고 집을 나선다. 자취방에서 본가로 가는 길. 오늘은 그 사이에 서울에서의 일정들까지 모두 소화하고 가야 한다. 정류장까지 언덕길을 올라 버스를 타고 흔들리는 차창에 머리를 기대어 밀린 잠을 청한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고개 탓에 더욱 피로해 무거워진 것 같은 눈을 뜨면, 서울 시내 한복판에 도착해 있다.
버스 안에서 잠을 자면서 이동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 그러고도 지하철 환승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빠른 하차 칸을 찾아다니는 것.
그에 비하면 빈속은 견딜만한 것이었다.
내 자취방은 학교가 형성되면서 원룸들이 들어선 ‘원룸촌’의 형태로, 마치 섬처럼 시내와도 동떨어진 곳이다. 그 덕분에 한 번 서울에 나오면 괜히 여기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근처에선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을 사고, 병원에 들르고, 그렇게 서울에서 일정을 마치고 나니 오후 3시. 여기서 다시 집까지는 2시간이 조금 덜 걸린다. 앉을자리 하나 없는 지하철에서 눈치로 서 있을 자리를 잡고 기다린다. 어깨에 가방이라도 내려놓아야 쉽게 갈 수 있다. 이어폰으로 지하철 소음을 덮고, 오른팔 왼팔 번갈아 가며 몸을 지탱한다. 그때 엄마에게 얼마나 남았냐는 연락을 받았다. 집에 오면 맛있는 거 많이 있다고. 빨리 오라고.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2호선으로 한 번의 환승 후에 7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또 한 번 걸어간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얼마나 허기졌는지를 깨닫는다. 달콤한 델리만쥬의 향이 느껴지자 보상심리 같은 것이 작용했다. 소소한 반항심. 델리만쥬 12개를 사고 7호선 종점행을 기다린다. 그 10분이면 12개를 다 먹을 수 있다. 한 개를 입에 넣자마자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 들어 조금 실소가 나왔다. 12개의 델리만쥬를 음료나 물도 없이 잘도 먹는다. 슈크림은 분명 달콤한데 혀끝이, 마음 한구석이 쓰리다.
집에 가면 엄마가 맛있는 거 해놨는데..
이상한 죄책감 같은 것을 함께 삼켜낸다. 12개의 델리만쥬로도 무엇 때문인지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다시 달래며 지하철에 오른다. 다시 한 시간.
거의 종점 끝까지 다다른 후에 내린다. 어깨는 이미 빨간 자국이 남았을 것이라는 기분을 지니고 거기서도 도보로 15분을 걸으면 드디어 집에 도착이다. 간단히 세수만 하고, 밥을 먹는다. 즉석식품이 아닌 밥을 먹는다. 냉동식품이 아닌 갖가지 음식들을 먹는다. 누군가와 대화하며 밥을 먹는다. 그렇게 나는 델리만쥬 12개는 없었던 것처럼 음식을 먹는다. 위장이 아닌 마음을 가득 채우며.
며칠 간의 요양 같은 여행이 끝나고 다시 작은방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돌아가려는 길에 엄마가 말했다.
왔다 갔다 길 위에서 버리는 시간이 너무 많잖아.
다음 달부터는 집에 덜 와도 돼.
…응.
나는 차마 안 그러겠다고 말하지 못하고, 돌아서서 집을 나왔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세 걸음만 떼어내도 돌아가고 싶은 곳이 거기다. 마음속으로 나는 따져 물었다.
나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그 집으로 나는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다고. 왜 내가 집에만 가면 굳이 내 입맛에만 맞는 맛있는 것들을 준비하는지. 왜 근무 시간을 조정하면서까지 나와 함께 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 왜 나한텐 좀 더 어린 동생 같은 것이 없는지. 그 공간을 나보다 더 살가운 것으로 채울 것이 없는지. 왜 내가 집을 나설 때면 어릴 때 내가 했던 것처럼 어린아이 같은 눈으로 잘 가라고 인사하는지.
빨랫감만 반겨주는 나의 작은 집으로 돌아와 생각했다. 또다시 나는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델리만쥬가 먹고 싶어서 가겠다고. 그 길을 감수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