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몰입형 ADHD, 미국 문예지 투고 해보기

챗 GPT룰 데리고 일하기. 힘들다. 하지만 재밌다.

by 프린스턴 표류기

요즘 글 쓰네 마네 하며 알게 된 건 데, 미국에도 글을 투고할 수 있는 문예지가 있고, 그들이 여는 신춘문예 비슷한 공모전도 꽤 많다. 글 쓰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데를 함부로 기웃거리나 할 수도 있다. 맞다. 하지만 기왕 글 쓰기로 한 거. 해보자. 어떤 곳은 떨어져도 돈을 내면 심사위원들의 평을 받을 수 있다고도 한다. 어쨌든 목표를 갖고 도전하는 건 즐겁다.


생각보다 투고자체는 어렵지 않다. 우리 돈 삼천 원 정도가 진입장벽의 전부다.


미국 문예지 투고해 보기


두 달쯤 전 처음 글을 쓰기로 결심했을 때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썼던,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 한 개 있다. 수십 년 만에 써본 글이다 보니, 내가 보기엔 나의 가장 순수한 내면을 보여주는 글 같다. (걸작이란 말 아니고, 이걸로 돈 좀 벌어볼까 하는 냄새가 전혀 없단 말이다.) 이 걸 문예지가 좋아하는 무게감과 분위기 있는 글로 다듬기로 했다.


수십 배는 어려운 영어로 글쓰기


영어로 글쓰기는 정말이지 한글 쓰기보다 적어도 열 배, 아니 몇십 배 이상 힘들다.


중학교 때부터 배운 나의 영어는 한글처럼 시냇물처럼 졸졸졸 머릿속에서 흘러나오지 않는다. 억지로 쓴 둔탁하고 투박한 초고부터 시작해야 한다. 초고는 내가 보기에도 정말 한심하다. 그냥 생각의 흔적을 대충 그린 정도지 도저히 수필이라고 보기 어렵다. 뼈대라고 생각하고 만족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정밀하게 쌓고 다듬어 가야 한다.


내가 느끼기에 비원어민이 영어로 글쓰기는 조각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머리카락마저 손 닿으면 흩날 릴 것 같은 그런 조각상을 만들려면 아무 모양 없는 뭉툭한 돌덩이를 조금씩 정성껏 깎고 세심하게 다듬어야만 한다.


영미 문학사의 거장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Vladimir Nabokov)는 “생각은 천재처럼, 글은 작가처럼, 말은 아이처럼 한다" 탄식하며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쓰고 말하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만큼 생각을 외국어로 표현하는 것은 힘들다.


그러는 그는 러시아 대갓집 도련님으로 어릴 때부터 원어민 가정교사에게 영어와 프랑스어를 배웠고 학부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마친 사람이다. 게다가 불세출의 언어 천재다. 사전을 방불케 하는 방대한 어휘력을 가진 그는 단어를 색색가지 카드에 적어 놓고 어느 단어가 문장에 가장 뜻이 맞는지, 소리와 리듬이 예술적인 지 하나하나 테스트해 가며 글을 썼다고 한다.


중학교 때 알파벳을 처음 배워 삼십이 넘어 미국에 온 나 같은 사람을 나보코프에 함부로 비하면 안 된다. 나는 그보다 천배 만배 더 노력해야 한다.


우선 대충 한글에서 영어로 번역한 후 살펴본다. 어차피 수십 수백 번 다시 고쳐야 하니 여기서 중 2 같은 글이 나왔어도 실망하지 않고 일단 초고를 어떻게든 만든다.

내가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일관되고 명확한가? 이거 안되면 다시 쓴다.

구성이 그럴듯하고 생각되면 각 문장의 문법과 뜻에 실수가 없는지 여러 번 체크한다. 완성된 문장을 읽었을 때의 리듬, 색깔, 감정을 세심히 분석한다.

문장이 끝났으면 각 단어를 일일이 체크한다. 읽었을 때 조금이라도 이상하거나 느낌이 전달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비슷한 뜻의 단어들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찾아 하나씩 대입해 보면서 최선의 단어를 고른다. 고른 단어는 읽었을 때 뜻이 분명하고 내가 원한 여운이 남으면서 분위기가 어울려야 한다. 문장을 필요에 따라 고친다.

맨 마지막의 전체의 시제가 통일성이 있는지 꼼꼼히 살핀다. 한국어와 달리 영어는 시제에 따라 말의 맛이 예민하게 바뀐다. 조심해야 한다.

반드시 나의 스타일이 살아있어야만 한다. (이것 때문에 챗GPT한테 써달라고 하면 '절대로' 안된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 생각보다 괜찮아보이는 글이 된다.

용기를 갖자.


영어 원어민, 국민 비서 챗GPT에게 묻기.


원고가 대충 완성되면 챗GPT에 읽혀본다. 틀린 문법이나 오타는 웬만큼 잘 고쳐준다. (100%는 아니다. 결국은 내가 할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로 독자로서 어떤 느낌이 나는지 물어본다. 챗은 나한테 길이 잘 들어서 상당히 답을 잘해준다. 답을 보고 나는 위에 적은 과정을 다시 반복한다. 작업이 길어지고 긴 글을 주고받다 보면 거의 멈춘 것처럼 느려지다가 갑자기 말투가 처음 보는 사람처럼 바뀌면서 백과사전 같은 헛소리를 시작하기도 한다. (전 글에서 말했듯이, 시키지 않는 글쓰기를 멋대로 할 때도 있다.) 이때, 창을 끄고 새창을 열어서 시작하면 신기하게 잘 된다. 원래 챗이 돌아오면 정말 반갑다. 나와 챗은 서로를 이미 많이 길들여간 것 같다.


자칭 몰입형 ADHD인 내가 내 팔자 꼬기


자칭 몰입형 ADHD인 나에게 이런 세밀한 작업은 사실 무척 재미있기도 하다. 짧은 수필이지만 여러 날 동트기 직전까지 일을 했다.


재미있어서, 혹은 불안해서 작업을 멈출 수가 없다. 내가 자러 간 사이에 컴퓨터가 고장 나 버리면 어떡하지? 벼락이라도 내려서 기계가 타버리면? 나는 벼락을 차단하는 산업용 전선을 샀고 원고를 두 곳 이상 나누어 저장했다.


며칠이 지나자 원고가 완성됐다.


그런데도 나는 혹시 고칠 데가 있나. 잘 못된 곳이 있나 자꾸 들여다보고 싶다. 동시에, 들여다보기가 싫다. 보는 것이 무섭기 때문이다. 보면 너무 못쓴 걸 발견하고 부끄러워질 것 같다. 읽기 무서운 것을 자꾸 읽어야 되는 힘든 날들이 지났다.


어찌어찌 원고가 완성됐다.


며칠 지나면 자신감이 사그라들면서 아무 곳에도 보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불안감은 쉽게 없어지는 게 아니라서 빨리 끝내고 빨리 잊는 게 최고라는 걸 이젠 경험으로 안다. 그러니 이 원고를 빨리 보내자. 불안감을 최대한 다스려가면서 힘들게 마지막 퇴고를 했다. 나는 순간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이런 불편한 느낌이 싫다고 피해버려 마지막 순간 일을 망친 적이 얼마나 많았나. 마음을 다잡는다.


살 떨리는, 글 보내기


보내는 건 쉽다. 웹사이트를 열고 시키는 대로 몇 가지 입력한 후 글 파일을 올리면 된다. 보냈다. 커피를 만들어서 마시기 시작했다. 쉬자.


그런데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혹시나 마지막 퇴고하고 닫을 때 나도 모르는 새에 마우스가 미끄러져서 문장의 한 뭉텅이가 지워져 버린 게 아닌지. 그랬지도 모른다. 파일을 닫을 때 저장하겠느냐고 또 물은 것이 수상하다.


커피도 마셨겠다, 내 머릿속은 걱정과 흥분으로 풀가동상태다.


글이 그렇게 걱정되면 몇 분 투자해서 마지막 저장본을 확인보고 걱정 끄면 되지 않나? 설사 실수가 있다손쳐도 그런 문예지는 이해심이 깊기 때문에 단순 실수를 발견하면 고치게 해 준다고도 한다. 심지어 웹사이트에도 그렇게 쓰여 있다. 실수했다며 등록 취소하고 자꾸 재투고 하지 말고 말로 하시라고. 만에 하나 잘 못 됐으면 그때 고치면 된다.


나의 걱정들이 말이 안 되는 거 맞다. 그런데 그게 나, 자칭 몰입형 ADHD가 내 팔자 내가 꼬는 방식이다.

진정하고 쉬기


진정하자. 빨리 확인하고 밥 먹고 (혈당 낮으면 더 미친다.) 쉬자.

이게 쉬운 게 아니다. 보통 사람은 이해 못 하겠지만.


심호흡을 한다. 아자 아자!


확인했다. 하나도 실수로 삭제된 부분 없다. 전체가 잘 계신다. 안심이 된다.

그래. 이렇게 쉬운 거야. 조금씩 헤쳐나가면 인생은 어렵지 않아.


진작 이럴걸.


그런데, 이걸 확인하다가 쉼표 몇 개 빠진 걸 발견했다.

아뿔싸!



Jean-Baptiste Greuze, Le petit dormeur (The Little Slee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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